한국역사

[Why] "3·15 부정선거, 4·19혁명 다 제가 전했죠… 이승만 前대통령, 화술은 으뜸"

Shawn Chase 2017. 6. 18. 09:55

박돈규 기자


입력 : 2017.06.17 03:02

60~70년대 라디오 名DJ… '화법' 책 펴낸 전영우 前 아나운서

아나운서 박사 1호
국제스피치학회 처음 가입, 아나운서는 뉴스의 연주자… 화법·저널리즘 모두 알아야

지난 대선 TV토론 보니
유승민·심상정, 음성 좋아… 文대통령은 연설 토대 잡혀… 안철수는 가끔 격앙되더라

5분 안에 청중 사로잡아야
들려야 하고 쉬워야 하고 흥미롭고 또 유익해야… 녹음한 뉴스 매일 다시 체크

사실 작사도 했어요
패티 김 노래 '사랑의 계절'… 유행가 가사 쓴다는 게 창피해서 가명으로 활동도


또랑또랑한 발음, 깨끗한 음색, 억양의 높낮이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완급 조절도 적절했다. 방송국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아나운서다웠다.

전영우(83)씨는 50~60대 이상에게 라디오 방송 명사회자로 기억된다. KBS 아나운서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공개방송 MC로 명성을 날렸고 동아방송으로 옮겨 토크쇼 '유쾌한 응접실'로 정점을 찍었다. 언론 통폐합으로 KBS에 복귀해 9시 뉴스 앵커로 활약한 그는 1983년부터 학자의 길을 걷다 은퇴했다. 전영우씨가 최근 '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냈다. 부제가 '아나운서로 30년, 대학교수로 30년'이다. 회고담을 엮는 그는 "화법 체계를 세우고 국어 발음사전을 만든 게 큰 보람"이라며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게 바로 애청자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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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전 아나운서가 책을 확성기처럼 말아 쥐고 있다. 그는 “청취자나 독자에게 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질 때 참 기쁘다”며 “자신에게 야박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장련성 객원기자


"이 사람이 아낙군수요"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를 졸업한 그는 1954년 공보처 시행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전신) 1기 수습 아나운서 모집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이었다. 발음과 음색, 전달 속도가 적절해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언제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나요?

"국어 시간에 책 잘 읽는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청계국민학교 5학년 때 졸업식 송사를 낭독할 재학생 대표를 뽑는데 후보 세 명 중에 제가 제일 잘 읽었지요. 그런데 억울하게 떨어진 겁니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어요. 라디오 방송이 시대의 총아였던 시절이었고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를 지망했지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요?

"배달된 신문을 샅샅이 큰 소리로 읽으며 조음과 발음 연습을 했어요. 라디오 방송 청취에도 많은 시간을 들였지요. 'HLKA(호출부호)'를 발음하는 소리만 들어도 어느 아나운서인지 알 정도였어요."

―입사했을 때 외조모께서 주변에 '이 사람이 아낙군수요' 자랑하셨다고요?

"아나운서라는 영어를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국어사전에 '아낙군수'라는 단어가 있더라고요.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변변치 못한 남자를 일컫는 말입니다(웃음)."

―인기만큼 봉급도 넉넉했나요?

"첫해 월급은 교통비 쓰고 조금 남는 액수에 쌀 반 가마였어요.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이 컸지요."

―한국 현대사가 요동치던 시기라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1960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갑자기 서거한 조병옥 박사의 국민장 실황 중계를 제가 맡았어요. 여론이 들끓고 집권층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였죠. '자극하지 말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방송하라'는 당부가 내려왔어요. 힘들었습니다.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아나운서들의 방송 중립화 선언 등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었지요."

국영방송 KBS는 이 일 등을 계기로 공사(公社)가 됐다. 전영우는 "아나운서는 앵무새가 아니라 감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낭독하는 게 아니라 연주(演奏)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 기사를 '연주'하다

―기사를 연주한다고요?

"피아노 연주자에 따라 곡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잖아요.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약, 고저, 장단, 속도, 포즈(pause·잠시 멈춤)가 저마다 달라요."

―실제로 어떻게 구현했나요?

"원고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하는 뉴스와 모르고 전하는 뉴스는 다르니까. 그래서 서울신문학원에 등록해 저널리즘을 공부했지요."

―아나운서 박사 1호로 알고 있습니다.

"막연하지만 은퇴 후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저는 '구제(舊製)박사' 아니고 정규 코스 다 밟은 '신제박사'입니다.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공부해 석·박사를 마쳤어요. 수필 '은근과 끈기'로 유명한 조윤제 박사 아시나요? 박사 과정 들어갈 때 성균관대 대학원장이셨던 그분께 '스피치(화법)를 공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요."

―뭐라 하시던가요?

"놀라며 '난 스피치를 모르는데 왜 들어왔나' 물으셨어요. '선생님이 한국문학 개척하신 방법을 배워 우리나라에서 스피치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답했지요. 학문의 시발은 역사적 연구요 학문의 종결은 철학일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아나운서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느꼈나요?

"국어 발음이 그랬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의 내용에 의하면'을 읽었더니 실장이 '서울대학에선 발음 안 배워? 다시 읽어봐' 하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에 담화에 내용에 의하면'으로 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문제의 싹이 텄지요. (손뼉을 치며) 아, 국어 발음을 내가 정리해야겠다."

―화법이군요.

"우리가 소리글을 등한시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학교에서 글만 가르치고 말을 안 가르친 거죠. 처녀 출판으로 '화술의 지식'이라는 번역서를 냈어요. 1962년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국제스피치학회에 가입했지요."

대통령 후보 연설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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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씨가 1960년대 라디오 방송을 하는 모습. / 춘하추동방송


스피치 분야를 개척한 전영우는 저술가 겸 강연가로 왕성히 활동했다. 저서가 40종에 이른다. 그가 자택에서 누렇게 바랜 '스피치 개론'(1964)을 꺼내 보여주는데 정가(定價)가 330원이었다. 여석기 고려대 교수는 신문 서평에서 '학술 서적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시무룩해지셨나요?

"웬걸요. 사람은 자극 없이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 평이 저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채찍질했지요."

―화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아나운서로 일했습니다. 양주동 박사가 고정 출연한 라디오 공개방송 '유쾌한 응접실'은 18년 넘게 진행한 인기 프로였지요.

"토크쇼인데 '교양적인 오락프로'라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간국보' 양주동 박사의 유머, 민속학자이자 언론인 이서구 선생의 구수한 재담, 김두희 서울대 교수의 날카로운 위트가 잘 어우러졌고 사이사이 가수의 유행가가 나왔어요. 방청객이 꽉꽉 들어찼고 그 인기 덕에 CF도 찍었지요."

―책에는 '양주동 박사가 말씀하기를 황해도·평안도 방언 쓰는 사람은 당신을 냥두돈 선생으로, 어떤 이는 양주둥 박사로, 다른 이는 양주장으로 호칭했는데 그것이 해학이다'라고 썼는데 그가 왜 인간국보로 불렸나요?

"전쟁이 터지고 1·4 후퇴 때 어느 신문사 사장실에서 양주동 박사와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이 우연히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손 선생이 '모두 피란 갔는데 우리나라 국보 둘만 남아 있으니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했대요."

―스피치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정치를 잘하려면 변론을 잘해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인사청문회를 보니 톤이 많이 낮아졌어요. 높으면 높을수록 불리합니다. 설득력이 없어지고 반발심이 생기니까요."

―지난 대선 후보 TV토론은 어떻게 보셨나요?

"내용은 그만두고 음성 표현으로만 보면 유승민·심상정씨가 잘했어요. 문재인씨는 연설의 토대가 잡혀 있더군요. 홍준표씨도 검사 출신답게 말을 잘하죠. 안철수씨는 저음으로 깔면 좋은 스타일인데 가끔 격앙돼 점수를 까먹었어요."

―정치인 화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도전적으로 말하면 누구도 환영 안 해요. 청중은 저마다 여과장치를 작동시킵니다. 지금 저 사람 말이 참인가 거짓인가, 참인가 과장인가, 참인가 가식인가. 참만 받아줍니다."

―역대 대통령 중 화술로 으뜸은 누구였나요?

"단연 이승만 박사였지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보면 아나운서가 잔뜩 힘주고 '슛~ 노골입니다' 할 때가 있지요. 그게 서투른 겁니다. 슛도 단지 패스의 일종이거든요. 부자연스러우면 설득력이 없고 연설이 아녜요."

"5분 안에 청중 사로잡아라"

화법에선 6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①들려야 하고 ②쉬워야 하고 ③흥미로워야 하고 ④유익해야 하고 ⑤감동을 줘야 하고 ⑥여운을 남겨야 한다. 전씨는 "어려운 걸 어렵게 말하기는 쉬워도, 어려운 걸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녹음된 자기 뉴스를 다시 들으며 결점을 점검했다고요?

"우리에겐 그게 거울이에요. 녹음을 재생해 들으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되니까요."

―배우에겐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는데 아나운서도 그런가요?

"마이크 공포증이 있어요. 자신감이 필요하죠. 충분한 연습과 경험 없이는 극복하기 어려워요. 아나운서는 5분 안에 청중 반응을 가져와야 합니다. 웃기려고 했는데 웃지 않으면 공포가 더 심해져요."

―좋은 음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뭔가요?

"목욕하고 나서 최고의 음성이 나옵니다. 따뜻한 오미자차나 꿀차, 박하사탕도 좋고요."

―30분 내리 방송하면 입이 타지 않았나요?

"말하는 사람은 타액의 분비가 적절해야 해요. 아나운서들은 새벽에 소금물을 마셨어요. 짜니까 침이 나오잖우. 그런데 침이 너무 많아도 안 돼요. 그래서 참 어려워요."

―눈여겨보는 후배 아나운서가 있나요?

"KB S 윤인구 아나운서가 잘해요. 자연스럽고 겸손하고 센스도 있고. 김동건 아나운서도 50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아나운서죠. 기교 안 부리고 구김살이 없어요."

그가 패티 김 히트곡 '사랑의 계절' 작사가인 줄은 몰랐다. 전씨는 "작곡가 길옥윤 선생께 부탁해 곡을 붙였다"며 "아나운서 실장이 유행가 가사 쓴다는 게 좀 창피해서 한동안 가명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16/20170616016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