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04 06:26
VVIP 관광 시장이 열렸다
지난 5월 27일 오전, 서울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 40대 중반 미국인 커플이 나타났다. 보글보글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갈치조림을 보더니 한 가게로 쑥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새빨간 갈치조림이 맵지도 않은지 반찬으로 나온김치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미 김밥, 만두까지 1차로 먹은 후였다. 이들은 남대문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며 빈대떡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파는 번데기도 먹었다.
남대문시장의 명물로 꼽히는 잡채호떡을 맛보더니 “이렇게 맛있는 걸 어떻게 1000원에 팔 수가 있느냐”면서 깜짝 놀랐다. 이들은 인사동서 비빔밥을 먹고 종로구 익선동 한옥골목에서 수제맥주를 마신 후 경동시장 투어에 나섰다. 왁자지껄 활기찬 시장이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한국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면서 신기해했다.
이들은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옷차림은 아주 허름했다. 평범한 배낭족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뉴욕에서 온 사업가 부부였다. 이른바 ‘수퍼리치’에 속하는 부류로 세계일주 미식여행 중이다. 수퍼리치는 상위 1% 이내의 초고액 자산가들을 이른다.
세계의 수퍼리치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수퍼리치들의 여행 리스트에 끼지도 못했다. 휴양지도 아니고 꼭 가봐야 할 관광국가도 아니었다. 한국에 온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나 홍콩에 오는 길에 ‘덤’으로 잠깐 들렀다 가는 곳에 불과했다. 혹은 사업상 오는 길에 가족을 동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한국을 목적지로 찍고 오는 수퍼리치 관광객이 늘고 있다. CEO 등 거물급 방한도 늘고 있다. 과거 아시아 비즈니스의 거점이 일본, 홍콩, 싱가포르였다면 이젠 무게중심이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서울 출발 1억5500만원짜리 세계일주
수퍼리치들의 한국행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 키워드는 한류와 음식이다. 중동 부호들의 경우 ‘한류’를 타고, 미주·유럽의 부호들은 ‘한식’에 빠져 오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한식은 가장 핫하고 ‘맛있는 건강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이 새로운 미식여행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퍼리치를 포함한 VVIP 관광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현장이 최근 있었다. 세계의 수퍼리치 수십 명이 한꺼번에 한국에 왔다. 포시즌스 호텔 앤 리조트의 ‘프라이빗 제트’ 투어 패키지의 출발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서울로 온 수퍼리치들은 호텔 전용 제트기를 타고 5월 27일부터 6월 14일까지 18박19일 동안 서울, 도쿄, 리스본 등 9개국 미식투어에 나섰다. 1인당 비용이 1억5500만원에 달하는 초호화 여행이다.
포시즌스의 전용기 투어 패키지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매년 투어 주제와 일정은 다르다. 올해는 3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은 미식투어인 ‘컬리너리 디스커버리(Culinary Discovery)’이다. 투어에 서울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포시즌스서울이 2015년 10월 오픈, 2년이 채 안 된 데다 최근 한식 열풍이 한몫했다는 것이 포시즌스서울 김민영 매니저의 말이다. 서울을 투어의 출발지로 잡은 것도 이례적이다.
포시즌스의 전용 제트기는 200석의 보잉 757기를 52석으로 개조한 것으로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급 시설에 셰프가 기내에서 직접 해주는 요리를 먹으면서 각 나라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 묵는다. 이번 투어 참가자는 총 33명. 국적은 중국, 미국, 스위스 등으로 알려졌지만 자세한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김민영 매니저는 “수퍼리치들의 경우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국적 등 고객 관련 정보는 일절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2박3일을 보낸 후 5월 29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도쿄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레페르베상스, 홍콩 미쉐린 스타 셰프와 함께하는 쿠킹 클래스, 치앙마이의 푸른 정글을 배경으로 한 프라이빗 디너 등을 즐기고 파리에서 일정을 마친다.
투어 일정을 기획한 팀은 덴마크 최고 레스토랑 ‘노마(Noma)’의 총주방장인 르네 레드제피와 팀원들이다. 르네 레드제피는 세계 톱3 셰프로 꼽힌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르네 레드제피는 사찰음식과 발효음식에 푹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수퍼리치들의 한국 방문 뒤에는 레드제피의 한식 사랑이 있었던 셈이다.
이들은 이종국 요리연구가의 한식을 맛보고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 있는 진관사를 찾아 사찰음식 만들기에 도전했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광주요 방문도 일정에 포함됐다. 일반에 미공개된 창경궁 가정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도 나섰다. 고급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일정이었지만 개중에는 개별적으로 한국의 속살을 보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사 앞부분에 소개한 미국인 커플은 일정 외에 특별한 시간을 원했다. “한국적인 음식과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반나절 동안 별도의 일정을 진행했다. 포시즌스 측의 부탁을 받아 이들의 투어를 맡은 곳은 음식관광 전문인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대표 최지아)이다. 투어매니저인 송자인씨는 처음 이들의 소탈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안전 문제를 생각해서 일부러 ‘서민 코스프레’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45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이번 투어 일행 중 가장 젊은 커플에 속한다고. 한국에 온 적은 없지만 이들은 비빔밥과 김치를 좋아하는 한식 매니아라고 했다.
VVIP 관광객은 늘고 있지만 그들을 맞을 준비는 아직 초보 단계다. 인프라조성·관광상품 개발 등 지원정책은 고사하고 각종 제재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중국 정부의 한한령으로 국내 여행업계가 위기에 몰리면서 외국인 관광객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값싼 단체 패키지 관광객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VVIP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VVIP 한 명이 쓰고 가는 돈은 패키지 관광객의 수백 배에 달하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서비스는 일반 관광객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외국인 의전관광 전문 여행사인 코스모진(대표 정명진)에는 VVIP 문의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중동 부호들의 방문이 최근 급증했다. 코스모진의 경우 작년보다 40%가 늘었다. 실제 이들이 쓰고 가는 돈은 엄청나다. 정명진 코스모진 대표는 “중동국가의 한 공주가 방문했는데 2억원어치 쇼핑을 하고도 가져온 현금이 부족해 우리 회사에서 1억원을 빌려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피부과 시술을 받고 ‘싹쓸이’ 쇼핑을 하고 가는 오만 석유 부호의 부인도 있다. 한번은 두바이 왕족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이 한꺼번에 온 적도 있다. 집사들을 대동하고 돈을 싸들고 와서 쇼핑 경쟁에 나섰다. 중동 부호들의 경우 쇼핑 목록 1위가 실크이다. 이들은 남대문으로 동대문으로 달려가 한국산 실크들을 쓸어 담기 바쁘다. 그 다음 달려가는 곳은 백화점이다. 차도르로 몸을 감싸고 있으면서도 보석은 무조건 커야 한다. 주먹만 한 보석들을 거침없이 사는 큰손들이다.
중국은 물론 중동 부호들 중에는 한류 스타와의 한 끼 식사라면 돈은 얼마든지 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홍콩 부호는 딸의 생일선물로 딸이 좋아하는 그룹 빅뱅의 태양을 만나게 해달라고 코스모진에 요청을 해왔다. 태양과의 일정을 못 잡아 대신 태양이 출연한 방송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셰프의 식당을 통째로 빌려 밥을 먹는 데 수백만원을 기꺼이 지불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수퍼리치 관광객의 요구는 산업시찰, 의료관광, 팬미팅 등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 관광 서비스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면서 아쉬워했다. 2년 전 아프리카 국가의 대통령이 레저를 목적으로 방한을 요청했는데 ‘국가의전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국이 불허된 적도 있다. 무슬림 부호들에게는 음식도 큰 문제이다. 할랄 인증 식당을 찾기가 힘들다 보니 먹을 것을 싸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다.
프리미엄 서비스가 필요하다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에는 개별적으로 숙소·투어 예약을 해서 찾아오는 수퍼리치가 많다. 이런 경우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김치·젓갈 등 한식에도 열광한다. 한국의 반찬 문화도 신기해한다.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진 한정식집에서는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가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대문시장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한옥과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에 감탄사를 쏟아낸다. 이들의 경우는 재방문율도 높다. 투어를 하고 돌아간 이들이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꼭 다시 찾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문화적인 수준도 높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백남준미술관을 기어코 찾아갔다 오는 이들에게 천편일률적인 고궁 투어만 권할 수는 없다.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이들을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퍼리치들의 경우 안전과 보안문제 때문에 일반 관광객을 피해 관람시간 외 입장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최 대표는 한옥 호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올 2월 러시아계 미국인으로 엘리베이터 회사를 운영하는 60대 부부가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이들은 직접 한옥을 예약하고 서울 시내 투어에 나섰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부부는 온돌에서 하룻밤 자고 오더니 “방바닥이 뜨거워 치킨구이가 되는 줄 알았다”면서 힘들어하더란다.
특급호텔은 비즈니스 VVIP가 많이 온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인터콘티넨탈서울 코엑스점의 김현중 지배인은 VVIP를 위한 서비스 정책이 아쉽다고 말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헬기 픽업이 가능하냐는 문의가 자주 옵니다. 유럽에선 일반적인 서비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적 규제가 많아 호텔 옥상에 헬리콥터가 내리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서비스가 어렵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고객이 많습니다.” 공항 입국 시 ‘패스트트랙’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투숙객도 많다고 한다. 외국 공항의 경우 비즈니스석만 타도 패스트트랙을 통과할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돼 있다.
일본 1400만원짜리 관광열차도
일본은 진즉부터 VVIP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도쿄 긴자 한복판에는 중국 관광객이 몰려오자 하룻밤 70만원이 넘는 고급 료칸이 문을 열었다. 교토, 나라에도 포시즌스 호텔 앤 리조트, JS 메리어트 호텔 등 최고급 호텔들이 새로 오픈을 하거나 추진 중이다. 나가노현 가루이자와가 운영하는 고급 료칸 호시노야 교토에는 한 끼에 60만원짜리 저녁 코스가 있다. 강에 배를 띄우고 일본 전통악기인 샤미센 연주를 들으면서 가이세키 요리를 먹는 코스로 하루에 딱 한 팀만 받는다.
1400만원짜리 관광열차 티켓도 있다. JR 규슈가 운행하는 침대열차 ‘나나츠보시 인 규슈’는 철로 위의 7성급 호텔이다. 1박2일, 2박3일 동안 규슈 내를 도는 열차의 객실은 단 14개에 정원은 30명이다. 히노키 샤워실, 최고급 도기 세면대 등 세계 최고의 호화열차로 꾸미기 위해 30억엔을 쏟아부었다. 열차 출발지인 하카타역에는 레드카펫이 깔린 전용 라운지가 있고 미쉐린 투 스타 셰프가 직접 요리를 서비스한다. 올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운행하는 여행상품 티켓 판매는 평균 경쟁률 37 대 1을 기록하며 이미 매진됐다.
VVIP 서비스가 시스템화된 곳은 호텔이다. 특급호텔은 VVIP 투숙객의 경우 예약부터 전담팀이 붙는다. 고객 성향 파악은 기본이다. 음식 취향부터 시작해 특정 꽃 알레르기는 없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생수 브랜드가 있는지, 계란 요리는 어느 정도로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등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한다. 객실 내에 운동기구를 들여놓아주는가 하면 아예 옆방에 체육관을 만들어줄 때도 있다. 과거에는 로비에 총지배인까지 나와 떠들썩한 접대를 했지만 요즘엔 ‘안 보이는 서비스’가 기본이다. ‘세컨 하우스’에 온 것처럼 익숙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뒤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미국의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묵었던 호텔은 원하는 색깔로 벽지까지 바꿔줬다. CEO의 경우는 경쟁 기업의 제품을 방에서 모두 치워야 하는 것도 서비스 팁이다. 예를 들어 일본 소니사 사장이 오는 경우는 방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소니사 것으로 바꾼다.
특혜가 아닌 관광산업 육성으로 바라봐야
VVIP 관광시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통한 한국의 이미지 제고와 홍보 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코스모진 여행사는 지난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때 한국을 찾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의전을 담당했다. 이때 슈미트 회장의 DMZ 관광을 안내했다. “VVIP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 DMZ이다. 안보 문제 때문에 한국 방문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유명인들이 DMZ를 방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다”라는 것이 정명진 코스모진 대표의 말이다.
세계의 수퍼리치를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 서비스와 전문가이드 육성 등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광정책 다변화가 필요하다. ‘특혜’가 아닌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코스모진여행사 정명진 대표
제시카 알바도 휴 잭맨도 한국 오면 찾는 곳
제시카 알바, 스티브 첸, 윌 아이 엠, 칼리드 알 팔리, 우디 앨런, 돌체 앤 가바나, 휴 잭맨, 셀돈 아델슨.
서울시 중구 을지로에 있는 코스모진여행사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세계적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코스모진여행사가 의전을 담당하거나 시티투어를 맡은 VVIP 고객들이다. 코스모진은 VIP 의전관광 전문 여행사이다. 정명진(46) 코스모진 대표는 의전관광 시장을 만든 개척자이다. 시장의 가능성을 일찍 알아본 것이다. 1인 여행사로 출발해 현재는 삼성그룹 100여개사를 포함, 2000여개의 국내외 기업에 바이어를 위한 의전과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코스모진의 성장은 연평균 30%, 우리나라 의전관광 시장의 확대와 같이하고 있다. 바이어들의 의전을 직원이 직접 맡았던 기업들도 이젠 전문업체를 찾고 있다.
정 대표가 이 시장을 주목한 것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외국인 컨벤션을 담당하면서다. 회의에 참석한 외국인들의 관광을 여행사에 맡겼더니, 깃발 들고 고궁 갔다 쇼핑센터 들르는 수준이었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맨손으로 출발한 것이 2001년이었다.
“초기만 해도 VVIP 일정의 카테고리가 비슷했는데 요즘엔 일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산업시찰, 바이어 가족의 메디컬 투어, 한류 스타 팬미팅까지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졌어요. 대형 여행사들도 VVIP 관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과 거래를 하다 보니 코스모진을 통해 오는 VVIP는 개인 관광을 오는 경우보다 비즈니스 관련이 많다. 의전을 맡은 경우는 공항 입국부터 출국까지 책임진다. 고객의 수준에 따라 벤틀리, 스타크래프트, 벤츠 등 차량 종류도 달라진다. 가이드는 일반 관광가이드와는 수준이 달라야 한다. “고객에게 비즈니스 조언을 하고 기업을 연결해주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을 원하지만 인적 인프라가 많지는 않습니다. 코스모진은 20여명의 전문가이드가 있는데 명퇴한 대기업, 글로벌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포진해 있어요. 우리나라 관광 수준을 높이려면 전문 인력을 양성할 프로그램이 시급합니다.”
미주·유럽과 중동 쪽 VVIP들은 성향도 쇼핑목록도 다르다. 중동이나 동남아 쪽은 기업시찰, 교육시설 등에 관심이 많고 한류와 연관된 쇼핑에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서울 중심에서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도 최근 눈에 띄는 트렌드이다. 미주와 유럽은 광장시장과 같은 한국 문화 체험을 좋아한다. 최근엔 인삼을 찾는 유럽인들도 부쩍 늘었다.
VVIP들이 관광에 소비하고 가는 돈이 얼마나 되나 물었더니 “1인당 1000만원 수준”이라고 답했다. 일본·중국의 경우 VVIP 서비스가 유연한데 아직 우리나라는 법적 규제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특별한 서비스에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는데 정작 우리는 문을 닫고 있다는 것. 정 대표는 모바일 서비스 등 사업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시장의 성장속도가 워낙 빨라 따라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한국의 발전 속도에 비해 여행업은 너무 뒤떨어져 있습니다. 여행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탓입니다. 여행사를 키우기보다 제재하기 바쁜 거죠. 여행업계 사람들은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들입니다. 그들을 제대로 활용해야지요.”
김현중 한국컨시어지협회 회장
“우리는 VVIP 전담 마크맨… 내년 4월 세계 컨시어지들 서울로”
호텔에서 어려움에 부닥칠 땐 컨시어지(Concierge)를 찾으면 된다. 컨시어지는 고객서비스 전담맨이다. 특급호텔은 대부분 컨시어지팀이 있고 로비에 별도의 데스크를 두고 있다. 그중 재킷에 골든키를 달고 있다면 최고 베테랑 컨시어지다. 그 사람을 통하면 안 풀리는 문제가 없다. 한국컨시어지협회 김현중 회장(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지배인) 의 재킷에도 골든키가 꽂혀 있었다. 골든키는 한국컨시어지협회의 심사를 거쳐 주어진다. 로비근무 5년 이상, 컨시어지 3년 이상, 협회활동 3년 이상의 조건을 모두 갖춰야 지원할 수 있다. 국내에는 골든키 컨시어지가 22명 있다. 한국을 방문한 수퍼리치들을 가장 가까이서 접촉하는 이들이 바로 컨시어지들이다.
“컨시어지는 호텔 예약, 교통 안내, 관광, 비즈니스 조언 등 도덕적이나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내에서는 컨시어지의 포지션에 대한 인정을 아직 못 받고 있지만 유럽 등은 진즉부터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만큼 고객들도 존중을 해줍니다.”
김현중 회장은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만 18년을 근무했다. 고객 걸음걸이만 봐도 무엇이 필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그도 매일이 새로울 만큼 VVIP들의 요구는 다양하다.
“과거엔 정보가 담긴 다이어리 하나 들고 추천만 해주면 끝났는데 요즘엔 넘쳐나는 정보를 분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 합니다. 때론 비즈니스 관련 업체를 알아봐주고 연결해주는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VVIP들의 요청은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가장 어려웠던 미션을 물었더니 외국 대통령 영부인이 투숙했을 때의 경험을 꼽았다. “쇼핑을 원해서 어렵게 한 백화점 면세점을 섭외했습니다. 통째로 홀 하나를 비우고 준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렵게 진행을 했는데 스케줄이 바뀌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습니다. 한류스타 공연 티켓 구하는 것이 요즘엔 제일 어려운 미션입니다.”
김 회장의 서비스 철칙은 ‘죽은 정보는 절대 고객에게 주지 마라’이다. 직접 맛보고 경험을 해야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새로운 정보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컨시어지협회는 매달 세미나를 열고 회원 교육을 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컨시어지는 VVIP 고객을 가장 가까이서 접촉하고 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만큼 민간외교의 최전선에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말이다.
70여개국의 컨시어지들이 내년 한국에 온다. 4월 5~10일까지 세계컨시어지협회 총회가 열린다.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행사로 450~6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
“총지배인급 등 컨시어지 대표들이 방문합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SNS를 능가합니다. 총회와 함께 관광일정을 진행하고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업, 정부 지원이 필요한데 컨시어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김 회장은 총회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다면서 “한국 브랜드를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거듭 관심을 부탁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02/20170602025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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