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족 살리려던 아버지만 홀로 남았다

Shawn Chase 2015. 9. 4. 22:55

 


 

입력 : 2015.09.04 19:35 | 수정 : 2015.09.04 20:05

아버지는 혼자가 됐다. 이틀 전 터키 해안을 출발했을 때만 해도 그의 곁에는 아내 레헨(35)과 두 아들 갈립(5)과 아일란(3)이 있었다. 이슬람국가(IS)의 잔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 시리아를 탈출하려고 시도했던 난민 쿠르디 가족 이야기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스웨덴이었다. 하지만 쿠르디 가족을 비롯한 난민 12명이 1인당 2050유로(약 270만원)씩 내고 탄 그리스행 고무보트는 터키 해안을 출발한 지 몇 분 만에 지옥선이 됐다.

시리아 난민 압둘라 쿠르디씨가 2일 터키 물라시의 한 시체 안치소에서 아내와 두 아들의 시신 확인을 기다리면서 벽에 기대 울고 있다./AP 뉴시스

작은 고무보트는 보기에도 불안해 보였다. 구명조끼도 없었고, 가족들은 수영할 줄도 몰랐다. “괜찮다” “안전을 장담한다”고 하던 브로커는 파도가 거세지자 승객을 버리고 홀로 바다로 뛰어내려 해안으로 도망쳤다. 배는 곧 뒤집혔다. 아버지 압둘라(40)는 가족들 손을 부여잡았지만 금세 놓쳤다. 다음 날 새벽 6시 그의 막내아들 아일란(3)은 터키의 휴양지 보드람의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큰아들과 부인도 시신으로 발견됐다.

가족들 시신을 확인하며 눈물을 쏟은 압둘라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시리아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꿈꿨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했다. 마지막 바라는 것은 아이들을 땅에 묻고 그 곁에서 죽을 때까지 코란(이슬람 경전)을 읽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쿠르디 가족이 시리아 땅을 탈출하려고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의 섬으로 가려고 두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압둘라의 누이 티마 쿠르디는 이날 현지 언론에 “동생 가족 초청에 필요한 돈을 모으고 있었다”며 “동생이 어떤 심정일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원했을 뿐, 죽을 이유가 없었다. 난민들을 전적으로 돕지 않는 세계가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쏟았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아기 난민 쿠르디의 사진을 편집해 그를 추모하는 애도 물결이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고 있다. ① 쿠르디가 숨진 바다와 육지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그려넣어 현재 난민이 처한 사항을 패러디한 그림. ②등에 하얀 날개가 돋은 쿠르디가 자유롭게 바다를 건너는 모습. ③쿠르디가 장난감들에 둘러싸인 모습. ‘더 좋은 곳에서’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④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를 이불 삼아 덮은 채 쿠르디 또래의 난민 아동들이 평온한 표정으로 숨져 있는 모습. ⑤쿠르디의 시신을 천사가 안고 있는 모습. “인류가 비자(VISA)라는 바이러스를 고치는 치료법을 발견하길 바란다”/트위터

쿠르디 가족의 비극 뒤에는 시리아 내전, 굳게 닫힌 국경, 그리고 난민들의 희망을 이용하는 밀항업자들이 있다.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과거 마약 밀수꾼들이 난민을 밀입국시키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밀항조직이 그리스에만 200여 개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가는데 900~4000달러, 터키에서 그리스섬까지는 1000~2000달러”라며 “1000달러 이상을 내면 세르비아에서 헝가리나 오스트리아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밀항업자들에게 돈을 더 쥐여줄 때마다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구명조끼를 입으려면 추가로 200달러,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300달러를 더 내야 한다. 물과 음식은 100달러다. 이렇게 업자들은 밀항선 한 척당 최대 100만유로(약 13억원)를 챙긴다.

어린 쿠르디의 사진은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국 정부에 난민을 더 많이 수용하라고 요구하는 탄원서에 22만5000여 명이 서명했다. 대(對) IS전에 소극적이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디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솔직히 말하면 전 서방세계가 이 일에 책임이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캐나다 이민부 장관은 “난민 문제에 책임을 느낀다”며 총선 유세 중단을 선언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리즈 슬라이 레바논 베이루트 지국장은 이날 칼럼에 “쿠르디를 죽인 건 지구촌이 해결을 포기한 전쟁과 ‘내 일도 아닌데’라는 식의 이민정책”이라고 썼다. 2011년부터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25만명이 숨졌다.



 

 

Aylan Kurdi and his older brother, Galip - image widely shared on social media

 

Aylan Kurdi and his older brother, Galip.

 

 

세살 아이 받아준 곳, 천국밖에 없었다

2일 새벽 6시 터키 남서부 유명 휴양지인 보드럼 해변에 빨간 티셔츠와 청색 반바지를 입은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엎드려 누워 있는 아기의 얼굴은 반쯤 모래에 파묻혀 찬 바닷물을 맞고 있었다.
이 아기는 아일란 쿠르디(3)란 이름의 시리아 난민으로 밝혀졌다.

입력 : 2015.09.04 08:01 | 수정 : 2015.09.04 11:06

터키 휴양지에 떠내려온 난민 꼬마의 주검… 마음 무너지는 이 비극에 세상이 운다

IS 위협 피해 시리아 탈출
캐나다 난민 신청 거부에 지중해 건너려다가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의 위협을 피해, IS가 점령한 시리아 북부에서 육로로 터키로 탈출한 뒤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코스 섬으로 가려다 배가 난파했다. 쿠르디가 발견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엄마(35)와 형(5)의 시신 그리고 이들이 탔던 배의 잔해가 발견됐다. 간신히 구조된 쿠르디의 아빠는 뒤늦게 처자식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했다. 이들은 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코바니 출신이었다. 배를 타기 전 캐나다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거부됐다고 BBC가 보도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2일 터키 남서부 해변에 시리아 난민인 세 살짜리 아기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엎어져 있다. 터키 해안 경찰은 이날“쿠르디와 그의 부모 등 시리아인 23명이 탄 난민선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코스섬으로 가려다 전복돼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AP뉴시스

 

 

터키 해안경찰은 이날 "시리아 난민 23명이 탄 배가 터키와 그리스 사이 바다에서 난파했다"면서 "7명은 해경에 구조되고 2명은 자력으로 헤엄쳐 해안까지 살아 돌아왔지만, 쿠르디 가족을 포함해 12명은 사망하고 2명은 실종됐다"고 밝혔다. 배에 탄 23명 중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자력 생존자 2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고무보트 수준의 작은 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터키 해안 도시 보드럼 일대는 그리스 코스 섬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약 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유럽으로 가려는 중동 난민들이 몰리는 지역이다. 코스 섬에 일단 발을 내디디면 그리스 본토의 난민 시설로 옮겨진다. 터키는 시리아보다는 안전하지만 IS의 영향권이라 시리아인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터키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유럽으로 가려는 시리아인이 많다.

 

이날 아기 쿠르디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지자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보다 어떤 더 심한 비극을 봐야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기피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쿠르디가 생전에 그의 형과 함께 곰 인형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지 말자'는 등의 표어도 확산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그리스 지부의 케티 케이하오이 대변인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코스 섬이 가까워 보이지만 대부분의 난민이 섬 근처도 못 와보고 바다에 빠져 죽는다"면서 "설사 살아서 섬에 도착해도 열악한 난민시설에서 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등 어려운 생활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2일 숨진 채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왼쪽)가 생전에 그의 형과 함께 곰 인형을 사이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트위터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이 난민이 몰리는 그리스 같은 특정 국가의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난민 문제의 짐을 분담하며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가 수년간 내전과 테러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에만 약 3500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수장됐다. 하루 10명꼴이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유입된 난민은 35만명이 넘었다. 그리스에 상륙한 난민이 23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들어온 난민은 각각 11만4000명, 2200명이다.




난민과 불법 이민자, 그 차이점은 뭘까


유럽으로 밀려들고 있는 중동·아프리카인들을 지칭하면서 BBC 등 외신이 '이민자(migrant)'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두고 이를 '난민(refugee)'으로 고쳐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청원 전문 사이트 'change.org'에서 3일 현재까지 6만6000여명이 서명했다. 이민자와 난민은 어떻게 다를까?


뉴욕타임스(NYT)는 일반적으로 혼동해 사용하는 '이민자'와 '난민'은 법적 지위에서 차이가 난다고 보도했다. 난민의 정의는 2차 대전 후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나와 있다.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고국을 탈출한 사람을 뜻한다. 난민은 불법 입국했더라도 도착한 나라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거나 임시 보호를 요구할 수 있고, 해당국은 이들을 강제로 돌려보낼 수 없다. 반면 이민자는 가난 등을 이유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온 사람을 뜻한다. 도착한 국가에서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불법 이민자가 돼 강제 추방될 수 있다. 서방 언론은 유럽으로 몰래 국경을 넘어온 이들을 대체로 이민자로 표현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들이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서 왔기에 난민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難民은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


"난민(難民)들은 새로운 국가에 보따리만 갖고 가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갑니다. 한국에 온 난민들도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차크마 나니 로넬(44)이 서툰 한국말로 더듬더듬 말했다.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시네코드 선재에서 열린 '난민 토크 콘서트'에서다. 한국에서 아직은 낯선 난민의 존재와 실상을 알리기 위해 유엔난민기구(UNHCR)가 주최했다. 방송인 박경림씨가 사회를 맡았고 유엔난민기구 친선 대사인 배우 정우성씨, 그리고 법무부·외교부 관계자와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로넬 이외에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인 욤비 토나(49), 코트디부아르 출신인 실라 마마두 숨(42) 가족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한국은 우리에게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토나는 왕족 출신으로 킨샤사 국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콩고비밀정보국(ANR) 요원으로 일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야당에 정부 비리를 넘기려다 발각돼 도망치면서 한순간에 난민이 됐다. 13년 전인 2002년 한국 땅을 밟았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인쇄공장·사료공장·직물공장을 전전하다가 2008년에야 난민 지위를 얻었다.

로넬은 소수민족인 줌머족 출신으로 종교 박해를 피해 2000년 한국에 왔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방글라데시에서 불교 줌머족은 박해의 표적이었다. 로넬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근면하게 일하는 한국인을 보고 감동받았다. 한국 문화가 방글라데시와 비슷하고 따뜻하게 품어 준 덕분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의 내전으로 난민이 된 숨은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상인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겪은 설움도 털어놨다. 토나는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불쌍하게 본다"며 "아직도 아파트 현관에 헌 옷을 걸어놓고 가는가 하면 '콜라 사먹으라'며 1000원짜리를 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토나의 둘째아들인 중학생 조나단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프리카에 비행기는 있느냐, 발가벗고 다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해마다 급증… 인식 개선 시급"

한국에서 난민으로 정착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난민 지위를 받으려면 1년쯤 걸리는 법무부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작년에 94명만 인정받았을 정도로 까다롭다.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는 2010년 423명에 그쳤다. 하지만 작년에는 2000명을 넘길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우성씨는 "과거엔 난민 문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우리 한국 사람도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점, 또 많은 난민이 한국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더크 헤베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난민은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Body of missing three-year-old boy found in Johnstone River in far north Queensland

Updated

A candlelight vigil will be held for the family of a three-year-old boy who drowned in the Johnstone River in Innisfail in far north Queensland.

The boy's body was pulled from the river on Wednesday evening, not far from where he was last seen the day before.

He was playing with a group of children when he disappeared.

Extra police from Brisbane had been sent to the area to help search for him and his body was found about 6:15pm on Wednesday.

Innisfail resident Toni Bell said the boy and his family had just moved to the town.

"I don't know the family, but it definitely tugs at your heart-strings, my sympathies go out to the family," she said.

 

"I've just put some flowers down on the wharf for him."

Inspector Brian Cannon said the boy could not swim.

"[The parents have] asked that I convey to everyone involved - the SES, police, members of the public," he said.

"People who have just come up and said kind things to them, their sincere appreciation of the efforts of everyone that has been involved in this very sad and very tragic event."

Boy drowning death Photo: The boy's body was pulled from the river on Wednesday evening. (ABC News: Sharnie Kim)

 

꼬마 난민의 '소리없는 비명' 세상에 알린 29세 여기자

 

송고시간 | 2015/09/05 12:57

 

'쿠르디'의 주검

'쿠르디'의 주검(AP/DHA=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왼쪽)의 죽음에 대해 한 터키 경찰관이 조사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떠나온 쿠르디 등 난민 일행은 터키에서 소형보트에 몸을 싣고 2일 그리스 코스섬을 향해 떠났다가 보드룸 해변 인근 아크야라 지역에서 배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이 사고로 쿠르디의 5살된 형갈립과 엄마도 함께 숨졌다. bulls@yna.co.kr

 

 

닐류페르 데미르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

서방언론, '네이팜탄 소녀'·'독수리와 소녀' 등 역사적 사진과 비교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김경윤 기자 = "그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었다."

터키 도안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 기자
터키 도안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 기자

 

세 살배기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해 난민의 지구촌을 울린 29세 여성 사진기자 닐류페르 데미르는 4일(현지시간) CNN 투르크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10대 시절부터 터키 민영뉴스통신사인 도안통신에서 사진기자로 일해온 데미르는 최근 몇 달째 난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취재해왔다.

 

'네이팜 소녀' 벌써 43년…사진 속 꼬마는 중년
'네이팜 소녀' 벌써 43년…사진 속 꼬마는 중년(트랑방<베트남> AP=연합뉴스) 1972년 6월 8일 베트남 트랑방에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으며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소녀의 사진 한장으로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당시 AP통신 기자 후잉 콩 우트(왼쪽)와 사진 속의 또 다른 주인공 호 반 봉(52)이 43년의 세월이 흐른 8일(현지시간) 트랑방 현장을 찾아 역사적 사진을 들고 감회에 젖어 있다. marshal@yna.co.kr Ho Van Bon, 52, right, points at himself in the iconic 'Napalm girl' photo taken by the Pulitzer winning photographer Nick Ut, left, 43 years ago on Monday, June 8, 2015 in Trang Bang, Vietnam. Ut returned Monday to the location of his iconic photo with a tool from an entirely different era, a 4-ounce iPhone 5 equipped with the ability to send photos to the world in the blink of a digital eye. (AP Photo/Na Son Nguyen).

 

 

지난 2일에도 파키스탄 난민들이 그리스 섬으로 가는 장면을 취재하려 해변을 찾았다. 이곳에서 쿠르디의 주검과 맞닥뜨렸다. 

데미르는 "쿠르디를 본 순간 겁에 질렸다"며 "3살 된 쿠르디는 얼굴을 모래톱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찍는 것이 '쿠르디의 침묵하는 몸이 지르는 비명'을 표현할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충격적이고 슬펐지만 이 비극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알몸소녀의 절규
베트남전 알몸소녀의 절규1972년 베트남전 당시 미군 폭격기가 투하한 네이팜탄이 사이공 인근 마을에 떨어져 얼굴을 제외한 전신 65%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9살 킴푹이 옷에 불이 붙자 이를 벗어던지고 울부짖으며 거리로 뛰쳐나오는 장면. (AP=연합뉴스) FILE - In this June 8, 1972 file photo, 9-year-old Kim Phuc, center, runs down Route 1 near Trang Bang, Vietnam after an aerial napalm attack. The war ended on April 30, 1975, with the fall of Saigon, now known as Ho Chi Minh City, to communist troops from the north. (AP Photo/Nick Ut, File)

쿠르디의 시신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형 갈립(5)의 시신이 있었고 이어 다른 난민 아이들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구명조끼나 튜브 하나 없는 맨몸이었다고 데미르는 설명했다 

데미르가 찍은 사진은 순식간에 페이스북과 언론을 타고 전해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간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입장은 보이던 유럽 각국이 반성의 목소리를 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시리아 내전 사태도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