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프리미엄 라인'만 남은 삼성공장… 협력업체는 운다

Shawn Chase 2017. 4. 19. 23:12




입력 : 2017.04.19 19:47

18일 삼성전자 정밀금형개발센터에서 직원이 초정밀 가공기기를 이용해 부품을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가전제품 금형 제작을 담당하는 이 센터는 모든 공정을 전면 자동화해 24시간 무인 가동되고 있다. /삼성전자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삼성전자의 국내 유일 백색가전 생산기지로, 하남산업단지 6번도로를 사이에 두고 축구장 60개 규모로 조성돼 있다. 에어컨 생산라인 안으로 들어가 보니 6개 라인에서 발생하는 수백 개의 드릴 소리가 수천 명이 동시에 치과진료를 받는 것처럼 공장 천장까지 울렸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은 완성된 제품 바코드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마지막 조립 상태까지 확인했다. 이곳 에어컨·공기청정기 생산 라인은 매년 계속되는 폭염과 미세먼지로 인해 주문이 밀려 3월부터 주·야간 24시간 가동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계복 그룹장은 “공장 가동률이 100%”라면서 “무풍에어컨은 작년 1월 첫 출시 이후 누적판매량 35만대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프리미엄 에어컨 가동률은 108%

삼성전자는 2년 전부터 광주 공장을 프리미엄 가전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중저가형 백색 가전제품은 베트남으로 대거 생산 라인을 옮기고, 대신 무풍에어컨·셰프컬렉션(냉장고)·드럼세탁기 등 보급형 가전보다 2~5배 비싼 프리미엄 제품들과 공기청정기·건조기 등 새로운 제품군을 만들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일부 생산라인이 옮겨갔지만 연매출 4조5000억원과 고용인원 3500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례적으로 생산라인부터 정밀금형제조센터까지 언론에 두루 공개했다. 가전 공장을 해외로 대거 옮기면서 제기된 광주지역 산업 공동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삼성공장의 제품 생산방식은 로봇과 인간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 방식이다. 로봇 카트가 자재를 싣고 생산라인 주변을 오가고, 로봇 팔은 쉴 새 없이 90도로 회전하면서 자재를 집거나 조립용 나사를 박는다. 사람 대신 제품 검사를 도맡아 하는 각종 첨단 기계도 즐비하다. 작년 11월 도입한 입체(3D) 스캔 기계는 공항 보안검색대처럼 제품의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무풍에어컨의 경우 지름 1mm인 아주 작은 구멍이 13만 5000개 달려 있어 3D 스캔 기법으로 구멍 막힘·이물질 침투·외관 미세 손상 등을 확인한다. 또 24시간 무인 가동되는 정밀금형개발센터는 가공·사출·프레스 등 다양한 종류의 최첨단 금형 장비를 갖춘 곳으로, 최적의 제품 생산방식을 설계해 협력업체나 해외 법인으로 보낸다.
18일 오후 5시 20분쯤 광주하남산단을 오가는 퇴근 차량과 회사 버스가 하남산단 1번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남산단 생산액은 최근 4년간 20% 줄었다. /양지혜 기자
◇힘겨운 삼성전자 협력업체들

하지만 삼성공장 뒤편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남산단 6번도로 후방에 입주해 있는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은 삼성 가전라인의 베트남 이전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삼성공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A업체는 20년 가까이 삼성에 납품했지만 지난해 말 공장을 내놨다. 인근 B업체 대표는 “삼성이 중저가 제품라인은 밖으로 내보내고 프리미엄 위주로 생산 라인을 바꾸면서 협력업체 납품 물량이 많게는 10분의 1까지 줄었다”며 “납품 물량이 많을수록 좋은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C업체 대표는 “삼성 생산라인 1개에 1~3차 협력업체 수백 개가 엮여 있었는데 이 생태계가 붕괴됐다”고 말했다. 공장이 사라진 부지에는 물류회사 창고가 들어서고 있다.

침체된 지역 경제는 이른 퇴근 시간에서도 확인된다. 하남산단 업체 직원들은 오후 4시에 대부분 조업을 마무리하고 귀가한다. C업체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다들 야간작업을 하느라 오후 10시에도 공장 불빛이 산단 전체를 환하게 비췄는데, 지금은 일감이 없어 주 5일 근무도 벅찰 지경”이라며 “지금까지 가전과 자동차 부품 위주로 버텼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달했다”고 전했다. 2012년 근로자 3만여 명에 생산액 14조원을 넘겼던 하남산단은 이후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해 작년 생산액 11조원을 간신히 넘겼다. 그 사이 근로자는 5000명이나 줄었다.

◇기업 정책 재검토 계기 필요

삼성공장 생산라인 이전은 일자리 축소 우려를 낳으며 작년 광주 지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됐다. 하지만 생산비 절감을 위해 생산기지를 글로벌화하는 트렌드를 완전히 뒤집기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 측도 “국내 인건비로는 도저히 저가 가전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폭스콘 같은 중국 대표 업체들도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도나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 하고 있다. 이병태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국내 생산비가 미국보다도 비싼 상황이 돼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차기 정부도 국내 공장 지키기에 노력을 쏟아야 된다”고 말했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기업 정책이 지배구조 개선과 오너를 견제하는 데만 집중해왔고 정작 가장 중요한 일자리 지키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9/20170419031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