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무너지는 造船생태계… "중소업체 90%가 작년 수주 0"

Shawn Chase 2017. 2. 3. 00:37

사천 통영 = 전수용 기자


입력 : 2017.01.31 03:00

- 일감 바닥난 중소 조선소
SPP조선, 2월 중 마지막 배 넘겨, 삼호조선·신아SB는 사실상 폐업
자재 납품 업체도 줄줄이 문닫아

- 이대로 두면… 재기 힘들어
"세계적 수준 기술·인력 유출 땐 경기 살아나도 中·日에 밀릴 것"

지난 19일 오후 경남 사천만에 있는 SPP조선 사천조선소. 축구장 30여개 넓이 야드(Yard·작업장)엔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1년에 상선(商船) 30여척을 건조하느라 분주했던 곳이지만, 90m 높이 600t급 크레인 3대는 멈춰 서 있었고, 중소형 선박 2척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300m 길이 독(Dock)도 텅 비었다. 작년 11월 말 마무리 작업을 위해 마지막 선박을 통영 덕포공장으로 옮긴 뒤로는 더 이상 작업할 선박이 없기 때문이다. 사천조선소에서 승용차로 50여분 거리인 덕포공장에선 마지막 주문을 받은 선박 2척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SPP조선 차영건 생산담당 상무는 "이 선박들도 2014년 수주한 것"이라면서 "2월에 발주처로 넘기면 일감이 없어 남은 500여명(협력사 직원 포함) 직원이 모두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선박용 블록을 만들다 조선업 호황을 타고 2005년 선박 건조에 뛰어든 SPP조선은 한때 세계 28위 조선 업체에까지 이름을 올렸지만 이젠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4년전엔 선박 가득 차 있었는데…
4년전엔 선박 가득 차 있었는데… - 경남 사천에 있는 SPP조선소 작업장은 2013년 7월만 해도 건조 중인 선박들로 가득 차 있었다(왼쪽). 하지만 지난 19일 찾은 작업장은 일감이 끊겨 텅 비어 있다(오른쪽). 한때 협력 업체 직원들까지 4000여명이 북적이던 SPP조선은 지난해 7월부터 진행한 구조 조정 결과, 대부분 떠나고 현재 250명만 회사를 지키고 있다. /김종호 기자

조선업 '수주절벽'은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같은 '빅3'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조선을 떠받쳐 온 중소 조선소들은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전문가들은 "중소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 중소형 선박 시장을 중국·일본·동남아시아에 고스란히 뺏길 뿐 아니라 기술·인력·생산능력 등이 흔들리면서 한국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경고한다.

◇불 꺼지는 중소 조선소

같은 날 오전 경남 통영 성동조선 야드엔 10여척 선박이 건조 중이었다. 한때 세계 9위 조선소였던 성동조선도 지금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다. 작년에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해 4분기면 현재 남아 있는 일감이 바닥나기 때문. 2000여명 직원 가운데 지난해 희망퇴직으로 500여명이 떠났고, 전체 생산 3분의 1을 담당하던 1·3야드를 폐쇄해 몸집도 줄일 계획이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발주 시장이 풀릴 때까지 버텨서 살아남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다른 중소 조선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적 자금 4조5000억원이 투입된 STX조선해양은 작년 5월 법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생존이 불투명하다. 통영 미륵도에 자리 잡은 21세기조선, 삼호조선, 신아SB는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다. 한 중소조선사 관계자는 "지난해 대형 조선소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조선소의 10곳 중 9곳은 선박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해군 함정에 특화된 한진중공업이나 소형 특수선에 강점을 가진 대선조선은 작년 10여척씩 수주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대부분 정부 발주 물량에 의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초대형 선박보다 중소형 선박 발주 감소 폭이 더 커지면서 자금 여력이 빈약한 중소 조선소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중견 조선업체 현재 상황

중소 조선소들이 무너지면서 기자재 납품 업체들도 고사(枯死) 상태다. 정부 추산으로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는 2700여개. 성동조선 협력 업체인 S사는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면서 인력 150여명 중 상당수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S사 대표는 "공장을 내놔도 반년째 팔지도 못하거나 회사 문을 닫고 도망가는 협력 업체도 있다"며 "상반기 내로 기자재 업체 절반이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조선업 생태계 붕괴 일보 직전

조선해운 분석 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4188척 중 절반이 중소형 조선소가 맡는 물량이었다. 우리나라 중소 조선소는 대형·중형 상선이나 소형 특수선 분야에서 대형사 못지않은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들. 20여만명 조선업 근로자 중 2만5000명(12.5%) 정도가 중소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중소조선연구원 정중채 정책기획단장은 "중소 조선소는 일반 상선뿐 아니라 다양한 선종(船種)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자재 등 연관 산업 발전 효과와 지역 경제, 고용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당장 실업자가 생기고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을 가진 설계 업체나 기자재 업체가 무너지면 기술·인력 유출 과정을 통해 한국 조선업 순환 구조가 깨진다"며 "나중에 조선 업황이 좋아지더라도 재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중견 조선소 대표는 "중소 조선소가 몰락하고, 선주사들이 중국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머지않아 '빅3'가 만드는 초대형 선박 시장까지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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