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최근 주목받는 리더의 자질 '신뢰 경영'
[Cover Story] 조엘 피터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가구회사 룸앤드보드는 매년 목표를 경영진이 아닌 직원들이 스스로 결정한다. 경영진은 보고받은 목표를 바탕으로 1년에 세 차례 직원들과 면담하며 진행 상황만 점검한다. 경영진이 조직 전체의 목표를 정하고, 이에 따르도록 내려보내는 일반 회사와는 반대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좀 더 편한 회사 생활을 위해 목표치를 낮게 설정하지 않을까. 이런 우려와 다르게 룸앤드보드는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미네소타의 동네 가구 가게로 시작했지만, 36년 만에 미 전역 25개 매장으로 확대했다. 지난해에도 약 4억달러(약 4684억원)의 흑자를 냈다. 올해 경제 전문지 포천이 뽑은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유통기업'에 3위로 선정됐다.- ▲ 김현국 기자
최근 경영학계가 주목하는 리더의 자질은 '신뢰(trust)'다. 더는 윽박지르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리더의 중요한 자질로 꼽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뢰의 경영'은 왜 중요하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미국 저가 항공사 제트블루 회장이기도 한 피터슨 교수는 올해 5월 '신뢰의 10가지 법칙(원제 The 10 Laws of Trust·국내 미출간)'이라는 책을 펴냈다. 부동산 투자회사 TCC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피터슨벤처스 창업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감독위원회 회장 등을 맡으며 수십 년간 기업인과 교수로서 기업의 흥망을 지켜보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지난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피터슨 교수를 만났다.
―최근 기업에서 '신뢰의 경영'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
"내가 처음 제트블루에 투자자로 참여했던 1999년 일이다. 당시 설립한 지 1년밖에 안 된 제트블루는 항공업계에서 이례적으로 예약 업무를 처리하는 콜센터를 없애고,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시도했다. 예약 고객 응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항공업계에서는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직원들은 4주간 본사 교육을 마치면 각자 집에 컴퓨터와 전화기를 설치해놓고 일을 시작했다. 콜센터 직원 대부분이 아이 엄마였기 때문에,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처음에는 집 밖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를 염려하는 엄마 직원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일에 집중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창업자 데이비드 닐먼은 '창고 같은 공간에서 종일 전화를 받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직원들을 믿고 강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재택 근무자들의 빠르고 친절한 응대에 이용객들은 꾸준히 늘었고, 불필요한 임차료와 운영비를 줄인 제트블루는 운항 개시 후 6개월 만에 흑자를 냈다.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한 사람의 배신, 한 차례의 실수만으로 단번에 모든 것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내린 결론은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신뢰 구축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머리로는 직원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에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들 것 같다.
"불안하더라도, 그래서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직원들을 믿어야 한다. 높은 신뢰도를 구축한 조직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아이디어를 내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 힘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더 발전한다. 구글의 엔지니어링 부서 직원들은 최대치의 자율권을 부여받는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듯 회사가 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바라보는 대신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풀어나가게 한 것이다. 토머스 윌리엄스 구글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은 '누구도 지금 작업 속도가 느리다고 보채거나 지적하지 않지만, 직원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도전 과제를 설정해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다. 이런 문화 속에서 기업은 정체되지 않고 혁신한다. 신뢰는 회사 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래 업체와의 신뢰도 무척 중요하다. 내가 젊은 시절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일할 때 몇 달 동안 진행된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서 내 실수로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힐 뻔한 적이 있다. 거래를 종료할 때까지도 내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와 거래했던 상대 측 회사에서 조용히 내게 연락해 실수를 바로잡게 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상대 측과 쌓은 신뢰가 없었다면 난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셰 CEO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직원들과 개방적이고 정직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미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국 직장인 중 회사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평균 31.5%이지만, 재포스는 82%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조엘 피터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리더의 진실성은 신뢰도가 높은 조직을 만드는 필수 요소"라며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료"라고 말했다.
리더의 사고방식은 조직 전체에 전염… 진실성 가진 리더 뽑아야
―리더가 갖춰야 할 '진실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 조엘 피터슨 교수 / 윤예나 기자
―인품에 흠이 없는 리더를 찾기란 어려운 일 같다.
"물론이다. 세상에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투성이다. 그런데 진짜 인격적, 도덕적으로 진실성 높은 리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며,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안다. 직원들은 이런 모습을 가진 리더의 잘못에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 악의로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실수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몇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런 진실성이 없다. 한 곳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다른 곳에 가선 저런 말을 하는 식으로 매번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꾼다. 그런 사람과는 진정한 신뢰를 쌓을 수 없다. 그가 아무리 교묘하게 말을 바꿔도 결국 사람들은 그가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설정한다는 사실을 알기 마련이다. 이런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직원들이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 정치적인 조직이 되고 만다. 그렇게 정치적인 조직이 되는 순간, 그 조직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힘을 얻는 게 아니라, 가장 정치력이 좋은 사람이 힘을 얻는다. 힘과 권한을 모두 쥔 사람이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 사람이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면, 그 잘못을 함께 수습해 나가는 조직원의 불만은 커진다. 결국 조직 전체가 와해하고 만다."
내부 신뢰가 탄탄한 조직이 외부와의 신뢰도 잘 쌓는다
―신뢰를 잃어 조직이 실패한 예를 든다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을 방법은 없나.
"신뢰를 재구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반성과 과정의 투명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다. 제트블루는 2007년 2월 14일 기상 악화로 벌어진 무더기 결항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거센 비난 여론에 부딪힌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CEO였던 데이비드 닐먼은 사고가 벌어진 후 5일 만에 자신의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진정성이 담긴 사과문을 발표하고, 회사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며, 피해 보상과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리고 며칠 뒤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세부적인 고객 피해 보상책을 담은 '제트블루 고객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단기적으로 볼 때는 큰 비용이 들어가는 손실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재투자로 재기의 밑거름을 다진 셈이다. 이런 제트블루의 신뢰 경영은 고객뿐 아니라 직원을 대상으로도 진행된다. 제트블루에는 노조가 없다. 전 직원이 한 팀으로 일하는 자세가 일찍부터 자리 잡은 덕분이다. 직급이나 직군이 다른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승무원의 몫인 항공기 좌석 청소를 조종사와 승무원, 탑승구 담당자가 함께 한다. 조직원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게 했다. 이익을 전 직원이 공유하는 것은 물론, 수습 기간만 지나면 어떤 직원이든 자기에게 필요한 복지 혜택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게 했다. 경영진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난기금을 만들어 자신들의 급여를 기부했다. 그 결과 제트블루는 12년 연속 미국 항공사 가운데 최고의 서비스 수준을 자랑하는 항공사로 꼽힌다."
경영자가 직원의 말을 잘 들을 때 신뢰 쌓여
―경영진이 직원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주나.
"경청(傾聽)이다. 상대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듣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신뢰도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조건 없이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상대에게 내 의견을 먼저 말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충분히 들으라는 것이다. 그런 자세가 상대의 의견을 신뢰할 준비가 돼 있고, 존중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직원들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되나.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명하게 권한을 위임하면, 권한을 받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충분한 자율권을 준다. 버진그룹에서는 직원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휴가를 쓰게 한다. 원칙은 한 가지다. 해야 할 일은 다 해놓고,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자유롭게 휴가를 쓰라는 것이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만한 재량권을 준다고 해서 직원들이 이를 남용할 일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실제로 이 제도를 적용받는 직원들이 무한정 휴가를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역할은 세부 사항 지시가 아닌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나면, 리더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세부적이지 않고 큰 그림의 목표,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목표, 모호하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업 초기에 내세웠던 슬로건은 '모든 가정,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를 한 대씩 보급한다'였다. 아마존은 '단 한 번이라도 어떤 언어로든 출간된 적이 있는 책은 60초 안에 살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펩시는 더 간단했다. '코카콜라를 이겨라'였다. 물론 의미 있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목표가 정당하다면 직원은 희생하더라도 리더를 믿고 이를 감내할 줄 안다. 2008년 스타벅스가 위기를 맞자, 하워드 슐츠 창업자가 CEO로 복귀했다. 그는 무너져가던 스타벅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요구했다. 800여개의 매장을 닫고 400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장기 근속자에 대한 혜택도 줄였다. 600만달러의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 스타벅스 매장문을 닫은 채 바리스타를 재교육시켰다.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 직원들의 반발을 불렀지만, 조직 문화를 재건하겠다는 한 가지 분명한 목적에 초점을 맞췄기에 설득력을 발휘했다. 직원들도 그의 노력에 화답했고, 스타벅스와 슐츠 CEO에 대한 조직 안팎의 신뢰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어떤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하나.
"겸손한 사람이다. 리더는 직접 큰 산을 세우는 게 아니다. 조직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큰 목표를 성취하게 하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영입된 낙하산 CEO보다 밑바닥부터 올라가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본 리더가 더 신뢰를 쌓기 쉽다. 자신이 경험해 본 모든 직급의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 저마다 가치를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통체인 월마트의 더글러스 맥밀런 CEO는 월마트 중앙 물류센터의 여름 인턴 출신으로 CEO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5분기 연속 매출이 줄던 2015년 초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깜짝 발표로 주목받았다. 가뜩이나 실적이 나쁜 상황에서 비용 절감 대신 최저임금 인상을 선택한 그의 결정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맥밀런은 '최저임금 인상은 사람에 대한 투자'라며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올해 초 월마트 매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청결, 신속성, 친절 등 고객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도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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