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의에서 성사까지 피말린 '20시간 45분'협상파트너 놓고 치열한 기싸움끝 대화 합의
北 화전 양면전술 목적은 결국에는 대화韓·美 전투기 대북 무력시위..中 압박도 효과
매일경제 신헌철,안두원,김성훈 입력 2015.08.22. 22:13
◆ 충돌고비 넘긴 南北 / 남북 고위급 접촉 막전막후 ◆
다만 정부는 전날 저녁 엠바고(보도 유예)로 '남북 간 진행상황이 있다'고 언론사에 통보한 데 이어 이날 오후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3시에 브리핑을 실시하고 이를 생중계한다는 내용을 미리 전했다.
김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 오후 6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 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비서가 접촉을 갖기로 오늘 오후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 북이 먼저 대화 제의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고위급 접촉을 먼저 제안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21일 오후 4시께 김양건 당비서 명의로 우리쪽에 통지문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3군 사령부를 전격 방문해 "북한이 도발할 경우 현장 지휘관이 판단해 가차 없이 대응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보도된 시점과 일치한다.
최초 통지문에서 북한은 대화 테이블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나와 김양건 당비서와 1대1로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 측은 두 시간 뒤인 오후 6시 김양건 당비서가 아니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나오라며 수정 통지문을 보냈다.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최측근이자 군부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지목하는 '역제안'을 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 측 제안에 대해 즉답을 하지 않다가 22일 오전 9시 35분께 황 총정치국장과 김 당비서가 함께 나올 테니 남측도 김 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나올 것을 요청했다. 우리 측이 11시 25분께 수용 의사를 전달하자 북한이 12시 45분 다시 확답을 해왔다. 북한이 전날 오후 4시 접촉을 제의한 뒤 대화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샅바싸움'을 거쳐 20시간45분 만에 극적으로 '2+2' 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측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북한은 총정치국이 남북 간 협상의 주체가 된 셈이다. 북한 군부 계통에 따르면 총정치국은 '국방위원회-인민무력부-총정치국' 등으로 이어지는 핵심 기관이다.
반대로 양측의 공식적인 대북·대남 라인인 통일부와 통일전선부는 2선으로 밀리는 모양새가 됐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이후 발언권이 약화된 우리 통일부를 온전한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21일 홍용표 장관이 전달하려던 대북 통지문을 '격과 급이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어쨌든 이 같은 협상 대표단 구성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향후 새로운 대화 채널로 굳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고위급 접촉 장소가 판문점 남쪽에 위치한 '평화의 집'으로 정해진 점도 눈길을 끈다. 순서상 북측 통일각에서 할 차례였으나 이 같은 관례는 깨졌다.
◆ 위협하던 북, 왜 대화로 선회했나
그동안 강력한 군사행동을 예고하던 북한이 대화로 급선회한 의도와 배경을 놓고는 분석이 다소 엇갈린다. 사실 북한은 최초 도발시점인 지난 20일에도 대화 여지를 열어두긴 했다. 1차 포격도발 1시간 뒤에 김양건 당비서 명의로 "확성기 중단 등 실천적 조치 시 관계개선 출로가 있다"는 통지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물론 10분 뒤 북한은 총참모부 명의로 군사적 위협을 병행했다.
따라서 북한이 전형적인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미리 시나리오식으로 짜놓고 우리 측 반응을 보면서 대화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인명 피해가 없는 수위의 도발 이후 위협적 언사로 위기를 고조시킨 뒤 먼저 대화를 제의해 국면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고전적 전술'이라는 것이다. 22일 5시 추가도발 여부를 두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후 접촉을 제의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측이 남측과의 핫라인을 복구해보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대외적으로 고립이 심한 북한이 우리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빨리 회복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선 일련의 도발과 대화 전환을 통해 통해 미국과 중국 등의 관심을 끌려는 소기의 목적을 이미 거둔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이번 사태 이전부터 외무성을 통해 미국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대북 적대정책을 그만두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낸 바 있다.
또 김정은 제1위원장 입장에선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이 한·미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위기관리 능력도 가진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내부 목적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원치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과 중국의 직·간접적 압박이 북한이 대화로 선회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21일(현지시간) 북한 도발에 대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2일에는 북한에 대한 경고의 일환으로 한·미 연합 비행훈련을 실시했다. 우리 군에 따르면 이날 남측 상공에서 미 7공군 소속 F-16 전투기 4대와 우리 공군 F-15K 전투기 4대 등 모두 8대가 편대 비행을 했다.
한·미 양국 전투기 8대는 정오께 강원도 동해상에서 만나 경북 예천 인근의 상공부터 경기 오산까지 약 1시간가량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위협을 인식할 수 있는 경로를 비행했다"며 "북한의 레이더망에 포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지난 2013년 상반기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을 때도 미국의 F-22 스텔스 전투기기와 B-2·B-52 전략 폭격기 등을 이용해 무력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중국도 사태 악화를 우려하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막판 구두 개입에 나섰다. 북핵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전날 저녁 우리 측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현 상황과 관련해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헌철 기자 / 안두원 기자 / 김성훈 기자]
남북 고위급 회담 시작..통일부 회담 장면 공개
아시아경제 김동선 입력 2015.08.22. 19:36 수정 2015.08.22. 19:51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북한의 포격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남북이 22일 오후 판문점에서 고위급 접촉을 시작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판문점 남북 고위급 접촉은 당초 예정된 오후 6시보다 다소 늦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에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선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마주 앉았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7시20분께 네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환담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 상황과 관련된 모든 것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지뢰도발과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그리고 최근 이틀간 잇따른 북한의 포격도발과 우리군의 대응사격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열리는 것이어서 양측은 이번 만남에서 비무장지대(DMZ)내에서의 군사적 긴장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대화를 이어갈 예정이다.
북한이 48시간내 대북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라며 최후통첩 시간을 넘겨 회담이 시작된만큼 일단 최고조에 달했던 남북한간 대치국면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회담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우리측은 지뢰와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 고위당국자가 전격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 모종의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있다.
그간 대치국면이 컸던 만큼 오늘 '2+2'회담에서 양측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추후 협의를 갖는 형태로 일단 위기국면을 타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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