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등지고 서울 온 北엘리트

Shawn Chase 2016. 8. 18. 12:25
  • 김명성 기자
  • 파리=최연진 특파원



  • 입력 : 2016.08.18 03:00

    태영호 駐英 북한대사관 공사, 가족 데리고 한국으로 망명
    妻家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 1997년後 최고위 외교관 탈북


    태영호 공사 사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54·사진) 공사가 지난달 가족과 함께 한국에 망명했다고 17일 정부가 밝혔다. 태 공사는 부(副)대사로도 불리는 등 주영 대사관의 2인자 역할을 해왔다. 1997년 북한 미사일 중동 판매 관련 정보를 갖고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대사 이후 최고위급 탈북 외교관이다. 함께 망명한 아내 오혜선씨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였던 오백룡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인척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부인,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며 "이들은 현재 정부의 보호하에 있으며 유관 기관은 통상적 절차에 따라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 동기와 관련해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했다. 이날 한때 '태용호'라는 이름으로도 보도가 됐으나 통일부는 "태영호가 맞다"고 밝혔다.

    BBC 등에 따르면 태 공사는 지난달 중순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작은아들은 이때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가족의 SNS와 전화도 모두 끊겼다. 태 공사는 당초 미국 등 제3국 망명을 추진하다가 막판에 한국 귀순으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호, 작년 김정철의 에릭 클랩턴 공연 관람때도 동행 - 태영호(오른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지난해 5월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을 수행하고 있다. 태영호는 지난달 중순 영국에서 망명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태영호, 작년 김정철의 에릭 클랩턴 공연 관람때도 동행 - 태영호(오른쪽)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가 지난해 5월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을 수행하고 있다. 태영호는 지난달 중순 영국에서 망명한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JNN


    평양국제관계대학과 베이징외국어대에서 공부한 그는 서유럽 전문가로 10년 이상 유럽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대사관에는 4년 전에 부임했다. 영국 정부가 작성한 런던 주재 외교관 명단에는 직급이 '공사(minister)'로 소개돼 있다. 현학봉 대사 바로 아래 차석에 해당한다. 태 공사는 영국 내에서 북한 체제를 선전하거나 미디어에 나온 북한 이미지를 바로잡는 업무를 담당해왔다. 영국 기자들 사이에선 평양 취재를 위해 연락하는 담당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올여름에 임기를 마치고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호 차남 英명문대 진학 앞 北소환도 귀순요인


    입력 : 2016.08.18 10:24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 가족의 한국 귀순은 둘째 아들의 영국 명문대 진학과 태 공사의 북한 복귀를 앞둔 시점에 단행된 것으로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현지시각) 태 공사의 19세 차남 '금'(Kum)이 18일 레벨A(영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결과가 나오면 명문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예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캡쳐



    금은 런던 서부 액턴에 있는 고교에 다니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과 메신저 왓츠앱을 즐겨 쓰고 농구를 좋아한 평범한 10대였다. 금의 친구들은 금이 학교에서 최고 성적인 'A*'를 받을 만큼 수재였다고 증언했다. 금의 급우 루이스 프리어는 가디언에 "그가 안전하다니 기쁘다. 우리는 그가 임피리얼 진학을 놓치게 돼 화가 난다"고 말했다.

    앞서 16일 BBC는 태 공사가 올 여름 임기를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차남의 학업에 지장이 생길 위기에 몰리자 자식의 장래를 위해 태 공사가 탈북을 결심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가디언은 태 공사가 19세와 26세인 아들들, 아내와 함께 탈출했고, 그들이 한국까지 어떻게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탈출 초기에 영국 비밀정보국(MI6)이 이들의 입국을 도왔을 수 있다고 했다.

    통일부는 지난 17일 태 공사의 탈북 이유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 등이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태 공사의 프로필 소개에서 아내와 2남 1녀를 뒀다고 적었고, 기사에서도 "아내, 세 아이와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또 태 공사의 장남이 영국 해머스미스 병원에서 공중보건 학위를 받았다고 전했다.

    BBC의 스티브 에번스 특파원은 지난 16일 태 공사의 아들이 평양을 세계적 도시로 만들려면 장애인 주차공간을 확충해야한다면서 영국 대학에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김정철 수행하던 핵심 외교관… 지난달 귀국 앞두고 결행


    입력 : 2016.08.18 03:00

    [北 태영호 駐英공사 한국 망명]

    - 北서 손꼽히는 서유럽 전문가
    10년 이상 유럽서 北체제 선전
    "英서 북한 인권 비판 이어지자 평양 복귀 후 문책 우려한 듯"
    - 처가는 '혁명 1세대' 집안
    오백룡 아들 2명 軍계급 강등… 이번 망명과 관련 있는 듯


    태영호 주(駐)영국 북한 대사관 공사는 한국 귀순 이유에 대해 관계 기관 조사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최근 영국에서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초 태영호는 이번 여름 평양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17일 "복귀할 경우 업무와 관련한 책임 추궁을 당할 것으로 보고 귀국 직전 망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사관 선전 일꾼의 망명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가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BBC에 따르면 태 공사는 '대사관 차석'으로 선전 업무를 총괄했다. 김정은 체제의 '위대성'을 선전하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보도나 '최고존엄(김정은)' 모욕 등에 신속 대처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2014년 4월 런던의 한 미용실을 찾아가 항의한 것도 그의 일이었다. 해당 미용실이 김정은 사진에 '머리가 엉망?'(BAD HAIR DAY?)이란 문구를 달아 할인 행사를 벌이자 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등 김씨 일가 사진을 '모욕'하는 걸 좌시하면 중대 범죄로 처벌된다.

    2014년 한 연설에선 "(북한에 대해) 더 끔찍하고 더 충격적인 얘기를 쓸수록 영국 대중이 더 많이 본다"고 영국 언론들을 비판하면서도 "기자들을 욕하지는 않겠다. (북한 관련) 기사를 있는 그대로 써도 데스크들이 뜯어고친다"고 말했다. 작년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이 에릭 클랩턴 공연 관람차 런던에 왔을 때 그를 밀착 수행하기도 했다.

    골프·테니스 즐기며 중산층 생활

    태 공사와 알고 지낸 BBC의 스티브 에번스 서울·평양 특파원은 16일 '내 친구 탈북자'란 글에서 "태영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런던 서부 액턴의 인도 식당에서 커리를 먹고 있었다"며 그에 대한 기억을 소개했다. 당시 태영호는 밥 없이 커리만 먹었다. 당뇨병 위험이 있어 탄수화물 섭취를 자제하라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에번스 특파원은 태 공사가 말쑥하고 보수적인 전형적인 영국 중산계층으로 보였다고 했다. 태 공사는 테니스 클럽의 신규 회원 모집 광고를 보고 가입해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원래는 골프를 좋아했는데 아내가 "골프와 나 중 택일하라" "골프채를 놓지 않으면 평양으로 가겠다"고 하자 테니스로 종목을 바꿨다고 한다.

    태 공사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 서유럽 전문가로 손꼽혔다. 탈북 외교관들에 따르면, 태영호는 고교 시절 중국 유학으로 영어·중국어를 익혔고,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덴마크어 1호 양성 통역(김정일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 유학도 했다.

    아내도 '혁명 1세대' 오백룡 집안

    태 공사의 아내 오혜선(50)씨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백룡(1911~1984) 전 호위총국장 집안 출신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에서 가장 성분이 우수한 '혁명 1세대' 후손으로 우리로 치면 금수저"라고 했다.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오철산 형제는 각각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을 지냈다. 소식통은 "최근 이들 형제의 계급·지위가 몇 계단 하락했는데 이것이 이번 망명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태 공사의 자녀들은 현지 공립학교에 다녔다. 아들은 영국의 한 대학에서 평양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려면 장애인 주차 공간을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한편 태영호의 이름은 한때 '태용호'로 알려져 혼선이 빚어졌다. 실제 작년 통일부가 발간한 '북한 주요 기관·단체 인명록'에도 태용호란 이름이 나온다. 당국자는 이날 "이번 조사 과정에서 태영호가 본명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태용호는 가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