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8.20 01:23 / 수정 2015.08.20 01:44
100년 갈 성장엔진 키우자 <4> 반도체 승부처는 '시스템칩'
한국 반도체 신화 이끈 삼성
“반대할 용기로 새 일에 도전하라”
64K D램 6개월 만에 개발 성공
18일 삼성전자의 경기도 화성 반도체 사업장. 축구장 4배 면적의 제조라인에 반도체 생산장비가 촘촘히 들어서 있다. 천장에는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운송 로봇이 반도체 기판(웨이퍼)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박스를 분주하게 옮기고 있다. 가끔 장비를 점검하는 직원들만 눈에 띌 뿐 생산인력은 보이지 않는다.
30여 년 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는 지금 기계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여직원이 했다. 1981년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서애정(53·여)씨는 “88년 결혼식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굴에 화장을 했다. 입사한 지 7년여 만이었다”고 말했다. 아주 조그만 먼지도 허용하지 않는 반도체 생산 공정의 특성상 여직원들의 화장이 금기사항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74년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재로 한국반도체 부천공장의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이 회장이 직전 겨울 혹독한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며 회사를 인수했다”고 말했다.
83년 고(故) 이병철 회장이 ‘2·8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밝혔지만 주변에선 만류했다. 일본의 미쓰비시 연구소가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과 빈약한 기술 등 다섯 가지를 지적하며 ‘5대 불가론’ 보고서를 낼 정도였다. 같은 해 삼성반도체가 64K D램 개발계획을 내놨을 땐 삼성 내부 직원들까지 반대했다.
당시 삼성반도체의 대리였던 문상영 M프레시전 대표는 “당시 이 회장이 반대보고서를 작성한 직원 모두를 64K D램 개발팀으로 발령냈다”며 “회사 일에 반대할 용기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라는 회사 측의 지시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당시 삼성반도체는 디지털시계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수준의 기술력만 보유하고 있었다. 64K D램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 강진구 당시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은 “6개월 만에 64K D램의 생산·조립·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전히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고비 때마다 시장 흐름을 내다본 결정을 한 것도 주효했다. 대표적인 게 D램의 생산 방식 중 트렌치(Trench) 방식과 스택(Stack) 방식이 대립하고 있을 때 삼성은 과감히 스택 방식을 선택했다. 삼성과 달리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일본의 도시바 등은 이후 경쟁력 악화로 경쟁에서 밀렸다. 90년대 초 D램 업계 최초로 200㎜ 웨이퍼 양산을 결정한 것도 과감하고 효율적인 투자로 평가받는다. 선두 업체가 차세대 웨이퍼 투자를 주저하고 있을 때 과감한 선행투자를 진행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92년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1위로 우뚝 올라섰고 23년째인 올해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1위 유지의 배경은 신기술이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는 20나노 D램(64K D램의 12만5000배 용량)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20나노 D램은 새로운 장비 없이는 더 이상 미세화가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깬 혁신적인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양산하는 3세대 V낸드플래시 역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나온 신기술이다. 플래시 개발실의 이운경 상무는 “기존 기술이 좁은 땅에 단독주택을 촘촘하게 많이 짓는 것이라면 V낸드는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과 같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V낸드는 낸드플래시 분야 기술 경쟁에서 게임의 룰을 바꾼 신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 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시장 점유율을 올 1분기에 9.6%까지 늘리며 잠재력을 보여줬다. AP는 시스템 반도체의 주요 부문 중 하나다. 15조6000억원이 투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반도체 라인이 2017년 가동되면 삼성의 생산능력은 더 커지게 된다. 반도체 부문의 든든한 뒷받침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과 TV시장에서도 세계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이다. 중국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벌써 국가별 순위 세계 1위에 올랐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인수를 타진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미국의 기술력을 따라 잡는 것도 숙제다.
◆시스템 반도체=반도체를 사람의 뇌로 봤을 때 시스템반도체는 지각하고, 지각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기억하는 역할만 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시장 규모도 크다. 스마트폰의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디지털카메라에 사용하는 이미지 센서 등이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다.
◆특별취재팀=김준술(팀장)·함종선·문병주·구희령·황의영·김기환·임지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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