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송평인 칼럼]‘괴물’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희한한 총선

Shawn Chase 2016. 4. 7. 01:19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16-04-06 03:00:00 수정 2016-04-06 09:08:42



어떤 黨이 반 넘어도 무의미… 다수 여당도 단독입법 못하니
치열한 정책대결도 사라져… 국민에 책임지지 않은 여야
“살다 살다 처음 보는 공천”… ‘180석이 기준’ 된 국회권력
제2당보다 제3당에 유리할 수도

송평인 논설위원
유권자들은 광복 후 처음으로 어느 정당을 과반으로 만들어줘도 의미 없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직전 2012년 총선만 해도 유권자들은 한 정당에 과반 의석(150석)을 부여한다는 현실 가능한 목표를 위해 투표했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5분의 3 의석(180석)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한 정당이 180석을 차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권력 분점이 사실상 예정된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 복지를 둘러싸고 벌였던 치열한 정책 대결 같은 것은 사라졌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내가 새누리당의 정책을 지지해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준다고 해서 그 정책이 국회에서 반영된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해 더민주당 후보를 뽑아준다고 해서 그 정책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각 당의 각기 다른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총선을 치르고 있다. 

총선이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평가라는 것도 옛날 얘기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실의에 빠지고 서민들은 전월세가 치솟아 더 먼 교외로 밀려나는데도 야당의 ‘경제실패론’에는 별 반향이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정책 실패의 원인을 대통령과 집권당에 돌리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야당 때문에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합의할 수 없는 법을 만들어와 그랬다고 주장한다. 유권자로서는 법을 시행해보지도 않았으니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책임정치 자체가 실종됐다.

의원은 세비 1억5000만 원 외에 보좌진 인건비 등을 포함해 연간 7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는다. 의원이 되면 공항 귀빈석 이용 등 200여 개의 특전이 주어진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야당도 여당에 하등 뒤질 바 없는 영향력을 지닌다. 권한은 많고 국민에게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면서 안면몰수하고 싸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살다 살다 이런 막장 공천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이런 총선에서 유권자는 의원을 뽑기 위해 동원되는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제 집으로 배달된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관련 자료를 훑어보면서 의원들만 좋은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 나 자신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국회선진화법을 되돌리지 않고는 선거도 국회도 정상화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을 고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가능한 한 이번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그러나 헌재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는 말자. 몇몇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것은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 심판이 아니라 권한쟁의 심판이다. 헌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국회의장이 법률에 따라 거부한 직권상정을 국회의원에 대한 권한 침해로 결론 내리기도 어렵지만, 그런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전제가 된 법률을 위헌이라 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당의 분당을 이끌어낸 것도, 국민의당이 더민주당과의 단일화를 거부하게 만든 것도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뜻밖에도 제3당이 제2당보다 더 중요한 정당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국민의당은 정확히 이런 길을 보고 창당됐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합해서 180석 이상을 차지할 경우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을 제치고 새누리당과 국회 권력을 분점하게 된다.

국회선진화법은 당분간 고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실패로 판명난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의 조합보다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조합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어쩌면 국민의당과 필사적으로 야권의 주도권을 다투는 더민주당이 국민의당을 무력화할 방법으로 국회선진화법의 일부 개정에 찬성하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도 잠재적 대권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견제할 수 있어 좋다. 여러 전제가 충족돼야 할 얘기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그래도 의미를 찾는다면 이런 희미한 가능성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