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은 ‘꼴통 보수’ 아니다”
국가형성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DNA가 TK지역에 각인돼 있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 두 전통을 미래 정치에 투사하겠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본인의 정치행로를 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보수 안에서의 개혁, 건국의 가치를 인정하는 틀 안에서 개혁에 나서겠다는 것 아닙니까?
국가형성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DNA가 TK지역에 각인돼 있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 두 전통을 미래 정치에 투사하겠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본인의 정치행로를 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보수 안에서의 개혁, 건국의 가치를 인정하는 틀 안에서 개혁에 나서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체제 안에서 작은 혁명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지금 국가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저성장, 둘째는 양극화, 셋째는 아직 미성숙한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고, TK도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한 외연확대가 아닙니다. 보수세력 스스로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향의 제 지역구 주민들에게 먼저 바꿔보자, 그런 호소를 하는 거죠. 그 호소가 아직 잘 먹혀들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외부에서 대구·경북을 좀 속된 표현으로 ‘꼴통 보수’로 보는 시선에 대해 분개하고 저항합니다. 대구·경북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대구·경북에도 먹고 살기 어려운 국민이 있고, 어려운 국민의 민생을 걱정하는 정치인과 함께, 그런 시민의식 같은 게 저는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승민을 보수의 대표주자로 각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당에서는 그런 사람을 동지로 부르지요. 동지들의 세를 계속 규합해가면 언젠가 대구·경북인의 마음에도 변화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보다 제가 추구하는 정치가 과연 올바른 길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길이 올바르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지들은 세력이 되어 뭉칠 수 있다고 봅니다.”
비교적 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한 차세대 정치인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반대 진영의 정책 노선에도 개방적입니다. 새누리당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정책이 언젠가 비슷한 곳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선 이후 대선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 봅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경필·원희룡 지사와는 지금까지 늘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1년 전당 대회 때는 세 명이 나란히 최고의원이 됐고요. 전당대회 때 짧은 기간 경쟁도 했지만 그들은 제가 늘 사랑하는 후배들이며, 새누리당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권영진 대구시장, 김기현 울산시장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에도 정병국·정두언 의원을 포함해 여러 분이 있죠. 보수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그런 분들과 같은 시대에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치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겁니다.”
1983년부터 87년까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 유학해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로 미국 사회에 보수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입니다. 유학시절 무엇을 배웠습니까?
“군대 제대하고 1981년 말 KDI에 들어갔더니 미국 박사들이 즐비했습니다. 자극을 받았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연구원(RA) 생활을 1년 반 만에 끝내고 유학을 결심했는데 학부 학점이 별로였습니다. 10군데 지원했는데 입학허가는 두세 군데에서만 왔어요. 그중 한 곳이 위스콘신이었죠. 위스콘신은 굉장히 리버럴한 전통이 강합니다. 베트남 반전운동도 제일 격렬하게 했고, 대학 학생회관에서의 주류 판매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습니다. 특별한 학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전공한 경제학은 통계 등 수리경제학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자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해야 했죠. 수리, 계량적인 논문 아니면 논문취급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위스콘신 시절엔 경제 학자로서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주로 방법론을 배웠던 시기였지만 박사전공 분야인 ‘산업조직론’은 이후 연구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습니다. 이후 재벌정책, 공기업 민영화, 규제개혁, 산업정책 등을 연구했으니까요. KDI에 복귀해 밤새워 리포트 쓰고 연구하면서 살아 있는 경제학을 제대로 접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유승민을 보수의 대표주자로 각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당에서는 그런 사람을 동지로 부르지요. 동지들의 세를 계속 규합해가면 언젠가 대구·경북인의 마음에도 변화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보다 제가 추구하는 정치가 과연 올바른 길인가 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길이 올바르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지들은 세력이 되어 뭉칠 수 있다고 봅니다.”
비교적 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한 차세대 정치인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반대 진영의 정책 노선에도 개방적입니다. 새누리당엔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정책이 언젠가 비슷한 곳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선 이후 대선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 봅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경필·원희룡 지사와는 지금까지 늘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1년 전당 대회 때는 세 명이 나란히 최고의원이 됐고요. 전당대회 때 짧은 기간 경쟁도 했지만 그들은 제가 늘 사랑하는 후배들이며, 새누리당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권영진 대구시장, 김기현 울산시장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에도 정병국·정두언 의원을 포함해 여러 분이 있죠. 보수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그런 분들과 같은 시대에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면서 정치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겁니다.”
1983년부터 87년까지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 유학해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로 미국 사회에 보수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입니다. 유학시절 무엇을 배웠습니까?
“군대 제대하고 1981년 말 KDI에 들어갔더니 미국 박사들이 즐비했습니다. 자극을 받았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연구원(RA) 생활을 1년 반 만에 끝내고 유학을 결심했는데 학부 학점이 별로였습니다. 10군데 지원했는데 입학허가는 두세 군데에서만 왔어요. 그중 한 곳이 위스콘신이었죠. 위스콘신은 굉장히 리버럴한 전통이 강합니다. 베트남 반전운동도 제일 격렬하게 했고, 대학 학생회관에서의 주류 판매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습니다. 특별한 학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전공한 경제학은 통계 등 수리경제학이 대세였던 시절이라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자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해야 했죠. 수리, 계량적인 논문 아니면 논문취급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위스콘신 시절엔 경제 학자로서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주로 방법론을 배웠던 시기였지만 박사전공 분야인 ‘산업조직론’은 이후 연구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습니다. 이후 재벌정책, 공기업 민영화, 규제개혁, 산업정책 등을 연구했으니까요. KDI에 복귀해 밤새워 리포트 쓰고 연구하면서 살아 있는 경제학을 제대로 접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참 재미있는 게 지금 현 정권의 경제를 운영하는 주도세력 중에 위스콘신대 출신이 많다는 겁니다.
“그건 묘한 인연이 있어서 그래요. 저는 1998년 가을에 이회창 총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99년에는 바깥에서 돕다가 2000년 2월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들어와 이 총재님을 공식적으로 보좌하게 됐죠. 그때 최경환 부총리, 이종훈 의원, 안종범 경제수석, 강석훈 의원, 이혜훈 전 의원 등이 한 팀이 되어 이회창 총재를 돕기 시작했죠. 이종훈 의원은 코넬대, 이혜훈 전 의원은 UCLA 출신이고 나머지가 위스콘신이었어요.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분들이 2004년 무렵 다시 모여 박근혜 대표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공부했으니까 가깝지만 그렇더라도 무슨 세력을 형성한 건 아닙니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의 특정대학 출신들이 한 동아리로 거론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인연이고, 우리끼리 생각도 많이 다릅니다.”
“위스콘신 출신, 하나로 거론되는 건 부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은 도농복합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 중심의 보수적인 생각이 지배적인 곳 아닌가요?
“아닙니다. 당초 평균연령이 매우 높은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혁신도시, 첨단 의료복합단지가 생기면서 젊은 세대가 대거 유입됐습니다. 주민의 75%가 60대 이하이므로 고령자가 그리 많지 않은
“그건 묘한 인연이 있어서 그래요. 저는 1998년 가을에 이회창 총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99년에는 바깥에서 돕다가 2000년 2월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들어와 이 총재님을 공식적으로 보좌하게 됐죠. 그때 최경환 부총리, 이종훈 의원, 안종범 경제수석, 강석훈 의원, 이혜훈 전 의원 등이 한 팀이 되어 이회창 총재를 돕기 시작했죠. 이종훈 의원은 코넬대, 이혜훈 전 의원은 UCLA 출신이고 나머지가 위스콘신이었어요.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분들이 2004년 무렵 다시 모여 박근혜 대표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공부했으니까 가깝지만 그렇더라도 무슨 세력을 형성한 건 아닙니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의 특정대학 출신들이 한 동아리로 거론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인연이고, 우리끼리 생각도 많이 다릅니다.”
“위스콘신 출신, 하나로 거론되는 건 부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은 도농복합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 중심의 보수적인 생각이 지배적인 곳 아닌가요?
“아닙니다. 당초 평균연령이 매우 높은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혁신도시, 첨단 의료복합단지가 생기면서 젊은 세대가 대거 유입됐습니다. 주민의 75%가 60대 이하이므로 고령자가 그리 많지 않은
지역입니다. 매우 역동적인 곳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진 탓에 지역구 관리에도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배신’이란 말은 보통사람에게 들어도 큰 상처로 남죠. 최고 권력자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굉장한 스트레스일 겁니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와이드 인터뷰]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어쨌거나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진 탓에 지역구 관리에도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배신’이란 말은 보통사람에게 들어도 큰 상처로 남죠. 최고 권력자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굉장한 스트레스일 겁니다. 박 대통령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와이드 인터뷰]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