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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좁쌀' 샤오미 샤오미가 삼성전자까지 잡을까요?

Shawn Chase 2015. 12. 12. 19:43

    한겨레 | 입력 2015.12.12. 14:26

 

[한겨레][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10) 치고올라오는 중국

‘샌드위치’

한국 경제의 위기를 다루는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에요. 우리나라가 추격해오는 중국이나 인도와, 따라가야 하는 미국·일본·독일과 같은 선진국 사이에 끼어 있다는 의미이지요. 2007년께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중국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예요. 예전 중국을 이끌던 덩샤오핑 국가주석이 “흰 고양이(사회주의)든 검은 고양이(자본주의)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시장 개방을 시작한 게 불과 30여년 전의 일이죠.

이제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어요. 머지않아 경제 규모만큼은 미국마저 중국이 앞지른다는 전망도 많아요. 빠른 성장을 이끌고 있는 중국 기업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보아요.

“화웨이, 죄송합니다”

먼저 제가 겪은 경험담 한 토막부터 소개할게요. 2011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라고 이름 붙은 행사를 취재할 때 일이에요. 이 행사는 세계적인 휴대전화·통신회사 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뽐내는 자리랍니다.

마침 그때는 스마트폰 시장의 대활극이 벌어지던 시기였어요. 휴대전화 시장의 전통 강호들이 스마트폰의 선두주자 미국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잡겠다는 열기가 뜨거웠죠. 삼성전자·엘지전자 등 우리나라 업체뿐만 아니라 노키아(핀란드)·소니에릭슨(일본·스웨덴 합작회사) 등 다른 나라 업체 전시대엔 여러 종류의 신제품이 즐비했고, 이를 설명하는 직원들의 입에선 단내가 날 지경이었죠.

그런데 유독 한곳이 눈에 들어왔어요. 구경꾼이 거의 없어 무척 한산해 보였어요. 취재 기자들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어요. 중국의 한 기업 전시대였죠. 단순한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다른 회사 전시대와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태블릿피시(PC)가 놓여 있긴 하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만져보니 작동을 안 해요. 전원도 켜지지 않더라고요. 전시물은 안이 텅텅 빈 껍데기였던 것이죠. 디자인도 아이패드(애플)나 갤럭시탭(삼성전자)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조잡했어요. 세계적인 전시회장에 저런 껍데기를 들고 온 배짱이 놀라울 정도였죠. 자연히 입에선 ‘중국은 멀었어’란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변변한 시제품도 없이 여기에 왜 왔냐’라는 취지로 물었어요. 그 회사 직원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이러더군요. “앞으로 수년 내 우리가 내놓을 모델이에요. 한국 기자인가요? 곧 우리가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거예요.” 시제품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회사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를 곧 따라잡는다고 하니 좀 황당하고 어이가 없더라고요. ‘중국인들 허풍이 듣던 대로 대단하구나.’

이 업체 이름은 ‘화웨이’예요. 당시에도 중국을 대표하는 가전회사이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스마트폰 시장엔 애송이와 다를 바 없었죠. 그런데 말이에요. 얼마 전 시장조사기관(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가트너)이 발표한 지난 3분기(7~9월)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보니, 4년 전 그 업체가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더군요. ‘그 애송이가 세계 3위라니….’ 깜짝 놀랐죠. 삼성전자와 함께 애플을 바짝 쫓고 있던 엘지(LG)전자는 이미 6위까지 밀려났더군요.

눈을 조금 더 크게 떠서 살펴봤어요. 웬걸. 3위뿐만 아니라 4위와 5위도 모두 중국 업체더라구요. 5위 안에 삼성전자·애플 빼고 나머지는 중국 업체들이 싹쓸이를 하고 있었던 거죠. 4위는 레노버, 5위는 샤오미였어요. 아직까지 삼성전자와 애플은 제치지 못했으나, 중국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상황이 됐어요. 이 결과를 보고 나니 4년 전 화웨이 직원에게 힐난하듯 질문한 제가 지금이라도 전화를 넣어 “그때는 미안했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더군요.

더 놀라운 건 샤오미란 회사예요. 4년 전 제가 봤던 그 행사 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였거든요. 기록을 찾아보니 이 회사가 만들어진 건 2010년 4월,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건 그 이듬해인 2011년 7월이었어요. 스페인을 찾았던 2011년 2월에 제가 그 회사의 이름도 알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인 거지요. 회사 역사가 5년 정도 되는 기업이 스마트폰 시장 5위 안에 입성했다니….

2011년 외국 전시장서 만난 화웨이
변변한 제품 없다 말했더니
“곧 삼성전자 따라잡는다”
허풍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4년 만에 세계시장서 3위 찍다

더 놀라운 건 샤오미라는 회사
2010년에 창업하고 2011년에
스마트폰 시장 뛰어들어 세계5위
드넓은 땅과 인구는 필승 카드
기술축적도 훨씬 편리한 구조

삼성전자도 한때 비웃음을 받았죠

 

 

짧지 않은 개인 경험담을 소개한 건, 사실 저만의 경험담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전자·자동차·철강·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최근 수년 동안 이와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고 있어요. “짝퉁만 만들 줄 알았던 중국 기업들이 이제는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됐다” “저임금에 싸구려 제품만 만드는 줄 알았더니 어떤 부분은 이미 우리를 앞섰다”라고들 하죠.

중국의 빠른 성장이 이상하다구요? 기억을 좀더 옛날로 돌려볼게요. 여러분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우리나라가 단연 1등이라는 건 들어봤을 거예요. 1990년대 초부터 20년 남짓 동안 삼성전자가 독보적인 1등을 유지하고 있죠. 그사이 일본과 대만 쪽 업체들은 줄줄이 무너지거나 힘을 잃었죠. 그런데 말이에요. 삼성전자가 이 사업에 뛰어들 때 사람들 반응이 어땠는 줄 알아요? 코웃음,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해요.

냉장고나 텔레비전 정도 만드는 한국의 조그마한 업체가 최첨단을 달리는 분야에 도전한다는 게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던 거죠. 당시 반도체 시장의 선두권을 형성하던 일본의 한 연구기관(미쓰비시 연구소)은 1983년에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조롱 섞인 공식 보고서까지 발표했죠.

반도체뿐만 아니라 조선이나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은 모두 이와 유사한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의 뿌듯한 역사를 중국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게 그리 이상할 게 있나요. 다만 다른 점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속도로 앞선 주자를 쫓아오고 있는 거밖에 없어요.

그렇담, 중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많은 설명과 분석들이 있어요. 거대한 대륙의 전모를 낚싯바늘 하나에 다 꿸 수는 없겠죠. ‘중국 기업들의 경영진 면면을 보니 토종보다 유학파가 대부분이더라’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분야를 선정해 자국 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더라’ ‘다른 나라의 기술을 온갖 방식으로 빼오더라’ 등등. 모두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이에요.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인이 있지요. 드넓은 중국 시장이에요. 우리나라와 같은 기존의 후발주자들이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중국만의 필승 카드라 할 수 있어요. 욕심을 낸다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중국만큼 땅을 넓힐 수도 인구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드넓은 자국 시장을 갖고 있다는 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먼저 기술 개발이나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으기 쉬워요. 조금 어려운 말로 자본 축적이 쉽다고 해요. 정부 차원에서 기술력이 앞선 다른 나라 기업들이 들어오는 걸 막아주거나 제한한다면 자본 축적은 더 쉬워지죠. 수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쓰는 돈이 중국 기업으로 쓸려 들어가고, 이 돈이 강한 기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거죠. 우리나라 같은 자국 내 시장이 작은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한 상태인데도 다른 나라의 기업과 경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현실과는 크게 다르죠.

둘째는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축적도 좀더 편리해요. 앞선 나라의 것을 베끼면 따라갈 수 있는 기술도 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만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기술도 많거든요. 자국 시장이 넓으면 기업들로선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어요. 같은 산업에 수많은 기업들이 포진한 덕택에 서로 치고받으면서 기술을 더욱 빠르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요. 경쟁에 밀려 문을 닫은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을 싼값에 사올 수도 있구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기술도 좀더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중국 정부는 중국 시장에 물건을 팔고 싶은 다른 나라 기업들에 중국 내에 기술 연구소를 만들라고 꾸준히 요구해왔어요. “시장이 탐나면 기술을 내놓으라”라는 반강제적 요구죠. 중국 내에 연구소를 두면 중국인이 그곳에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선진 기술을 경험하기 수월하다는 것을 노렸다고나 할까요.

이 요구에 대부분 다른 나라 기업들은 거부하지 못해요. 기술 유출을 우려해 해외 연구소를 두지 않던 일본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도 그랬고, 마찬가지 이유로 반도체 공장만큼은 다른 나라에 짓지 않던 삼성전자도 중국의 요구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물건을 못 팔면 돈 벌기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잠재적 경쟁자의 살을 찌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거대한 자국 시장을 무기로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맞아야 할까요? 아직까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요. 중국이 역점을 두는 산업 분야이자 우리의 주력 산업으로 꼽히는 자동차·전자·철강·조선 등이 줄줄이 ‘위기 산업’이라고 불리고 있으니까요. 중국의 추격이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미뤄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일단 지금까지의 대응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간단히 짚어볼게요.

2000년대 들어 빨라진 중국의 추격은 주로 “값싼 임금을 무기로 한 저렴한 제품”으로 이해돼 왔어요.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 등 물가가 우리의 약점으로 지목됐지요. 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중국이나 베트남, 타이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으로 대응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법을 고쳐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려 인건비 부담을 낮춰왔어요. 또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관세(세금의 일종) 등 다른 나라 간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줄이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도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주요한 수단이었어요.

지금 주력 산업이 여전히 위기인 데서 보듯이 이런 대응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많아요. 인건비를 무한히 낮출 수도, 공장을 끝없이 해외로 옮길 수도 없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근본적 대응이라기보단 시간을 벌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앞으로는 어찌해야 할까요?

가보지 않은 길이니 정답은 없겠지요. 하지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제안은 있어요. 바로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가 되라’란 권고죠. 시장 혹은 경쟁의 규칙을 바꾸는 존재가 되어야 살길이 열린다는 의미예요. 중국이 열심히 노력해서 따라왔더니 ‘어 이 산이 아니었네’라고 느끼게 해야 해요. 전화기는 목소리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뒤엎은 아이폰을 만든 애플이 대표적인 게임 체인저였다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게임 체인저가 어떻게 되느냐는 거죠.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선 일단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해요. 창조성은 교과서만 달달 외거나 남의 것을 베껴서 습득되는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밴 경험들이 창조성의 기본 토대라고 전문가들은 말해요.

그렇다면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기 위한 조건은 뭘까요. 산업생태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고민 속에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소수의 재벌 대기업들이 주요 산업을 장악하고 있고, 각 산업이 계열사와 납품회사로 수직 계열화돼 있어요.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를 작은 회사가 내놓으면, 금세 큰 기업들이 집어삼키기 쉬운 구조이죠. 거꾸로 좋은 아이디어라도 큰 기업들이 알아봐 주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지기 십상이기도 해요. 여러분이 우리나라의 주역이 됐을 때 각자의 독창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면, 여러분 중 누군가는 게임 체인저로 우뚝 설 수 있을 거예요.

김경락 경제에디터석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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