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Why] 女변호사는 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매일 구치소로 출근했나

Shawn Chase 2015. 12. 6. 17:37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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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12.05 03:00

    변호사 2만명 시대의 불편한 자화상

    웃음 파는 '접견녀'
    돈 많은 재소자 요구로 함께 시간 때우는게 업무
    월급은 250만~300만원 의뢰인이 심사후 고르기도

    돈 욕심에 잡범 전락
    보석·공탁금 가로채고 사기·횡령에 성추행까지
    변협 징계 건수 매년 증가

    머슴 변호사로 전락
    젊은 변호사들 고용한후 법조 브로커가 로펌 운영
    월 500만원 정도 받고 아예 명의 빌려주기도

    어쩌다 이렇게 됐나
    로스쿨 출신 대거 배출 치열한 수임 경쟁 벌여
    월 5만원 회비 체납하는 변호사만 1000명 육박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변호사가 많은 미국에서 유래된 속담이지만 이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사기·횡령 등 잡범(雜犯)으로 추락하는 변호사가 속출하고 있고, 구치소에서 법률서비스 대신 웃음을 파는 변호사까지 생겨났다. 변호사가 2만명에 이르는 시대, 그 그늘도 점점 넓어지는 셈이다.

    돈 욕심에 사기 횡령범 되는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 정모씨는 개업 4년 차 변호사다. 2013년 서울동부지법의 한 사기 사건 피의자의 변호를 맡은 그는 피해자를 만나 3억원을 대신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피의자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내 재판부에 냈다. 합의서 덕분에 피의자는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피해자가 정 변호사와 피의자를 찾아가 약속한 3억원을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오히려 정 변호사와 피의자는 "3억원을 갚아야 하기는커녕 우리에게 오히려 채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까지 냈다. 정 변호사는 최근 대한변협에서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받았다. 이뿐 아니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증인신문 비용, 출장비, 재판진행비용 등 각종 추가 비용을 요구하다 과태료 200만원, 재판부와의 친분을 과장하고 의뢰인에게 승소를 장담하다가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2년 새 세 차례 징계를 받게 된 그는 법무부에 징계가 과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의신청을 냈다.


     

    수일 전 강원도 춘천에선 유모 변호사가 사기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모 종중 토지와 관련된 민사소송을 맡은 그는 승소하면 수임료 명목으로 일부 토지를 받기로 했다면서 그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 3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그는 소송에서 졌고, 땅 매입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무장이 한 일로 나는 모르겠다"고 버텼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춘천지법은 "피해 금액이 크고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춘천 인근에선 유 변호사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의 비리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법원에 낸 보석금이나 공탁금은 확정 판결이 나오면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의뢰인 몰래 이를 챙기는가 하면, 주가 조작에 가담했다가 구속된 변호사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세금을 적게 나오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의뢰인에게 세금을 받아 자신의 용돈과 미국에 사는 아내 생활비로 썼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 비리 유형이 사기, 횡령, 배임, 주가 조작, 성추행 등 일반 잡범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변호사에 대한 비위가 접수돼 징계 절차에 들어간 징계개시신청 건수는 2013년 73건, 2014년 185건이었고, 올 들어 지난 11월 현재 245건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 중엔 수임료만 챙기고 일은 하지 않는 '먹튀' 변호사도 있었다. '성실의무 위반' 징계 받은 변호사는 2008년 3건에 그쳤으나 2010년 8건, 2012년 8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11건이었다.



    일러스트
    일러스트 = 김성규 기자
    법률 자문 대신 웃음 파는'접견변호사'

    변호사 2만명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속칭 '접견녀'의 출현이다. 일부 로펌들이 용모 단정한 여자 변호사를 뽑아 피의자 접견권을 이용해 구치소 접견실에서 재소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다. 과거에도 기업인 재소자와 회사를 오가며 심부름을 맡았던 '집사 변호사'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젊은 여자 변호사들이 집사 변호사로 대거 진출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일부 중소 로펌은 아예 로스쿨 출신의 여자 변호사들만 채용한다고 한다. 접견 변호사들은 구치소에서 의뢰인과 하루 종일 이른바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시간 보내주는 게 주된 업무라 사건 내용은 몰라도 된다고 한다. 이들은 때로 의뢰인이나 로펌 요구에 따라 짙은 화장을 하거나 짧은 스커트를 입기도 한다. 일부 재력가 재소자들은 여러 명을 면접한 뒤 자신을 전담할 접견 변호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룸살롱에서 여종업원 파트너 선택하듯 접견 변호사를 고르는 사례까지 있다"면서 "한 젊은 변호사는 로펌 입사 후 한 달간 사무실에 가지 않고 구치소에서 재소자들 접견만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보수가 다른 변호사보다 많은 것도 아니다. 이들 급여는 대략 월 250만~3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취업이 안 되는 점을 이용한 일부 로펌과 재력가들에게 떠밀려 로스쿨 출신 여자 변호사들이 말하기도 민망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접견실을 차지하다 보니 실제 접견이 필요한 재소자를 위한 공간이 부족해질 정도다. 서울구치소 측은 지난 여름 대한변협에 10여 명의 변호사 명단을 통보하고 징계를 의뢰했다. 일부 접견 변호사들은 재소자에게 사탕이나 과자, 초콜릿 등 금지 물품을 전달하다 적발됐으며, 이런 물건들은 부적절한 접견 과정에 사용된 일종의 '데이트 용품'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브로커에게 고용된 머슴 변호사

    법조브로커에게 고용된 이른바 '머슴 변호사'도 늘어나고 있다. 법조브로커들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현행 규정 때문에 변호사를 '바지 사장'으로 앉히고 여러 명의 젊은 변호사들을 고용해 실질적인 로펌 사주 역할을 한다. 검찰·법원에 발 넓은 브로커가 사건을 가져와 자신의 부하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나눠주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호사가 브로커의 을(乙)이 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일감이 없는 변호사들은 아예 브로커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긴다. 최근 인천지검은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해 480억원을 챙긴 법조브로커 77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에게 명의를 준 변호사 57명도 적발했다. 일부 변호사들은 명의 대여료로 매달 500만원가량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브로커들은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파산·회생이나 등기 사건을 자신들이 수임해서 처리했다고 한다. 로스쿨 출신 박모 변호사는 "불법인 줄 알지만 월 500만원만 준다면 명의를 빌려줄 변호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위와 탈선 더 심각해진다

    문제는 변호사들의 비리와 탈선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국내 변호사는 1906년 3명으로 출발해 2008년 1만명을 넘어섰다. 1만명 돌파에 102년 걸렸다. 하지만 2만명을 넘어선 것은 지난 9월 16일이었고, 11월 말 현재 대한변협에 등록한 변호사는 모두 2만406명이었다. 7년 만에 다시 1만명이 늘어난 것이다. 2004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를 1000명으로 늘린데다, 2012년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매년 1500명 이상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2050년 변호사 수는 7만명을 넘게 된다.

    변호사업계는 지금도 변호사 포화 상태라고 아우성이지만, 변호사의 보릿고개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초동에서 개업한 8년 차 변호사는 "한 해가 다르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배고픈 변호사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변호사 한 명이 맡는 사건은 20년 전만 해도 한 해 평균 50건이었으나, 요즘은 20건대로 떨어졌다. 여기에 최소 300만원 받던 수임료도 이젠 1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지방변호사회에 매달 5만원씩 내는 회비를 체납하는 변호사가 1000명에
    육박하고, 그 회비 내기도 아까워 아예 휴업 신고를 내는 변호사도 400명이 넘는다. 로스쿨 출신 이모 변호사는 "변호사라고 하면 주변에서 다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지만 막상 동기들 중 상당수가 취업을 못 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범죄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비리를 저지르게 된다"고 했다. 이러다보니 의뢰인을 부추겨 억지 소송을 유도하는 기획 소송이 늘어나고, 변호사 불법 과장 광고도 판을 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법조 비리 척결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최근엔 법 원과 검찰, 변호사 단체 등 이른바 법조 3륜(輪)이 모여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만들었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맑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 윤리를 저버리고 불법·탈선을 저지르는 변호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그럴수록 징계 수위를 더 높이는 등 자체 정화를 위한 여러 대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