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3D 프린터 시장은 진흙탕 싸움 중

Shawn Chase 2015. 8. 4. 00:30

3D 프린터 시장은 진흙탕 싸움 중

핵심 특허 잇따라 만료돼 유사제품 우후죽순..인터넷 기업들도 진출 준비

주간동아 | 주상돈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장 sdjoo@etnews.com

| 입력 2015.08.03. 00:00 | 수정 2015.08.03. 17:08

 

 

최근 국내 3D(3차원) 프린터 업체 간 전업금지 가처분 소송이 벌어졌다. 소송을 제기한 A사는 자사에서 해외영업 상무로 근무하다 퇴사한 B사 대표가 3D 프린터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이용해 유사한 회사를 설립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허기술 침해 여부가 아니라, 후발주자인 B사가 3D 프린터 사업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소송 취지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동네 떡볶이 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식당을 그만두고 인근에 분식집을 차렸다. 기존 식당주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동일한 분식업종에 종사하면 안 된다며 소송을 제기한 셈이다. 법원 판단은 어떨까.

법원은 A사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3D 프린터는 원천 특허가 만료돼 수많은 제조사가 이미 공개된 기술(오픈소스)로 유사제품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 A사만의 독자 기술과 영업 노하우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조금 과장해 얘기하면, 이제 일반적인 3D 프린터는 분식집 떡볶이만큼이나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저가 3D 프린터 등장

 

3D 프린터와 관련한 핵심 특허가 잇따라 만료되면서 3D 프린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3D 프린터는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첨단 제품이 아니다. 이미 30여 년 전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따라서 3D 프린터 기능 구현에 필요한 핵심 특허 상당수가 권리 기간(20년)이 만료된 상태다.

3D 프린터 대표기업인 3D시스템즈와 스트라타시스(Stratasys)가 보유한 특허 가운데 100여 개의 권리 기간이 이미 만료됐다. 또 50여 개 주요 3D 프린터 핵심 특허도 2016년까지 순차적으로 만료될 예정이다. 특히 2009년 압출적층방식(Fused Deposition Modeling·FDM) 특허가 만료되면서 누구나 3D 프린터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FDM은 노즐로 플라스틱 소재를 분사해 재료를 층층이 쌓아 물체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3D 프린트 방식이다.

3D 프린터 특허 만료는 저가 3D 프린터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특허 만료 이전에는 3D 프린터 가격이 수천만 원대에 달했다. 하지만 특허가 만료되면서 다양한 저가 3D 프린터가 등장했다. 국내에 3D 프린트 스타트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핵심 특허 권리 기간이 만료됐다고 분쟁 위험과 기술 장벽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3D 프린터의 핵심 특허 권리 기간이 만료돼도 소송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3D시스템즈, 스트라타시스 같은 3D 프린트 선도 기업들은 자사의 원천 특허가 만료될 것을 예상하고 다양한 후속 특허와 응용 특허를 확보해왔기 때문이다. 오래된 ‘올가미’ 주변에 새로운 ‘덫’을 여기저기 뿌려놓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원천 특허와 관련 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파악 없이 핵심 특허가 만료됐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 후속 특허는 그대로 소송전에 활용될 수 있다. 비아그라와 같은 제약 분야는 후속 특허 개념이 약해 침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3D 프린터는 여느 산업과 달리 부품과 소재, 제품 구성 방식, 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특허 침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생산, 유통, 판매, 전시, 광고 등 제품 출시와 관련한 행위를 일절 할 수 없다. 원천 특허 만료 후에도 후속 및 응용 특허로 소송을 거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고추장 떡볶이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궁중 떡볶이’나 ‘깜장 떡볶이’ 같은 특화된 상품은 제대로 확인해보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3D 프린터 특허 관련 소송이 자주 벌어진다. 스트라타시스는 마이크로보즈 테크놀로지(Mircroboards Technology)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3D시스템즈도 폼랩스(Formlabs)와 킥스타터(Kickstarter) 등을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특허괴물(Non-Practicing Entities·NPE)이 소송을 주도하는 여타 산업과 달리 3D 프린터는 경쟁 기업 간 소송전이 일찍부터 점화된 것이다.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려는 전략적 특허소송이다.

 

해외에서는 특허 소송 빈번

 

전문 업체뿐 아니라 휴렛패커드(HP)와 제록스(Xerox) 등 전통적 프린터 강자들도 3D 프린터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다. 지난 10년간 HP는 5개, 제록스는 8개의 3D 프린터 특허를 출원했다. HP는 독자적인 3D 프린터 출시를 목표로 관련 연구와 개발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반면 제록스는 3D 프린터를 자체 개발보다 3D시스템즈나 스트라타시스와 협력을 통해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기존 종이 프린터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로, 3D 프린터 시장만 성숙하면 언제든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글로벌 3D 프린터 시장은 3D시스템즈나 스트라타시스 같은 전문 업체가 주도해왔다. 그러나 강력한 영업망을 갖춘 기존 프린터 업체들과는 규모나 경쟁력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세계 3D 프린터 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라타시스도 연매출이 4억8600만 달러(약 5600억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통 프린터 기업들이 기존 영업망과 브랜드 인지도, 기술력을 앞세워 3D 프린터 시장에 뛰어들 경우 시장 판도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국내 3D 프린터 시장은 제품 수요가 많지 않아 특허 분쟁 리스크도 적다. 그러나 시장이 확대되고 3D 프린터로 돈을 버는 기업이 늘어나면 특허 분쟁 역시 급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성, HP 같은 기존 프린터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구글, 아마존 같은 인터넷 강자들도 3D 프린트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 태세다. 결국 언젠가는 떡볶이 시장처럼 강력한 ‘죠스’가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국내 3D 프린터 시장의 미래는 한마디로 ‘산 넘어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