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경영

[데스크에서] 인터넷은행을 官治 밖으로

Shawn Chase 2015. 12. 1. 18:56

 

 

입력 : 2015.12.01 03:00

이진석 경제부 차장
이진석 경제부 차장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퇴직 경제 관료와 얼마 전 저녁을 했다. 소탈하고 직선적이라는 평을 받는 사람답게 그동안 겪은 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출마를 생각하는 지역을 돌면서 이곳저곳에 인사하는데, '야, 내가 이런 사람한테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내 딴에는 권위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는 관료 출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림하고 대접받으려는 DNA(유전자)가 뼛속 깊이 박혀 있더라. 반성할 일이 정말 많더라"고 했다. 반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돼서 자리가 불편할 정도였다.

경제 부처 출신답게 정부가 추진하는 4대 개혁 가운데 금융 개혁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떠난 사람이 하는 소리니 흘려들으라"고 했지만, 새겨들을 만했다. 관료는 언제나 개혁의 주체를 자임한다. 이런 규제를 풀어주겠다, 저런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바쁘다. 관료는 정답을 알고 있는 듯이 군다. 개혁이 실패해도 관료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는 "관료들은 아직도 민간을 얕본다. 권한을 움켜쥐고 군림하려는 DNA가 문제"라고 했다.

금융 개혁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재촉했던 인터넷 전문 은행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9일 카카오와 KT가 주도하는 두 컨소시엄에 예비 인가를 내줬다. 지점과 창구 직원이 없고, 인터넷으로 업무를 보는 새로운 은행이 등장하게 됐다. 후속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내년 3월쯤 카카오뱅크와 K뱅크라는 이름으로 미국이나 일본처럼 인터넷 전문 은행이 문을 열게 된다. 새로운 영역이긴 해도 금융업은 금융업이니 금융위가 허가권을 쥐고 감독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달리 말했다. "인터넷 전문 은행은 금융위가 맡지 않는 것이 금융 개혁"이라고 했다.

이런 설명을 붙였다. 카카오뱅크와 K뱅크에는 업체가 총 31곳 참여했다. 금융회사 외에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홈쇼핑과 편의점 업체, 게임 업체, 핀테크(금융과 정보 기술의 결합) 업체,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 G마켓과 옥션을 인수한 미국 이베이까지 포함됐다. 인터넷 전문 은행의 특성상 통신·전산 업체, 인터넷 상거래 업체, 지급 결제나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가 필요해서다. 그래서 대부분 금융위가 알지 못하는 회사이다. 그래도 금융위는 심사했고, 감독도 하게 된다. 그는 "금융위가 아니라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해서 인허가 심사부터 향후 지원까지 추진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금융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감독만 하는 지원군 역할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금융 규제 개혁을 절대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절절포)'고 선언하고 해묵은 규제의 매듭을 풀어가고 있는 금융위가 이런 선택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 권한이라고 쥐려고 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다면 금융 개혁이 속도를 더 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