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곧 끊을 통신선 왜 복원했나…그때 北 사상최대 국방공백 있었다

Shawn Chase 2021. 8. 15. 15:17

최훈민 기자

입력 2021.08.15 14:36

 

10일 오후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을 통한 남북 간의 정기 통화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최근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1년여만에 복원됐다가 고작 2주일만에 다시 끊겼다. 끊긴 이유는 북한 스스로가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한미연합훈련 때문’이란 것이다. 불명확한 것은 ‘복원의 이유’다. 복원은 북한이 먼저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애초 북한이 이 통신선을 복원했을 당시, 우리 정부에서는 환호작약만 했을 뿐 누구도 복원의 이유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 박지원 국정원장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 통신선 복원은 북한 김정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통신선을 복원한 것도, 다시 끊은 것도 모두 북한의 뜻이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북한이 통신선을 끊은 핑계로 댔던 한미연합훈련은 일찌감치 예정된 일정이었다. 북한이 요구한다고 훈련을 중단한 전례도, 가능성도 처음부터 거의 없었다. 북한으로서는 금방 끊을 통신선을 굳이 복원한 셈이다. 이에 대해 통신선 복원부터 다시 끊기기까지의 과정 전체가 북한의 필요에 따른 ‘한편의 각본’이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통신선 복원 시점에, 북한에선 사상 초유의 군사적 공백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7일 “남과 북은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그간 단절됐던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통일부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는 등 한국 정부는 평화에 대한 기대감에 휩싸였다.

박 수석은 “남북 정상은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친서를 교환하면서 남북관계 회복 문제로 소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끊어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복원이 한순간 이뤄진 게 아니라, 물밑 대화가 있었다는 의미다.

그로부터 사흘 뒤(지난달 3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27일 평양에서 열린 첫 군정(軍政)간부 강습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27일은 통신선이 복구된 날이다.

이 강습회에는 조선인민군 각 군종, 군단, 사단, 여단, 연대 군사 지휘관과 정치위원, 인민군당 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과 총정치국, 총참모부, 국방성 간부 등이 총집결했다. 북한이 창군이래 최초로 전군 주요 간부를 평양으로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연대장급 이상 군 간부가 현장을 모두 비워 안보 공백이 발생했었음을 뒤늦게 스스로 알린 것이다.

행사에 대한 보도 시점은 ‘행사 종료 3일 뒤’였다. 통상은 1~2일 뒤면 보도한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동정 등은 통상 행사 하루 뒤에 보도되는데, 유독 이번 상황이 사흘 뒤에 보도됐다는 것은, 각급 군 장교가 행사를 마치고 전원 원대복귀가 이뤄졌는지 확인한 뒤 보도를 내보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한 당국도 행사로 인한 군사적 공백을 심각하게 판단했다는 방증이란 것이다.

 

그로부터 열하루가 지난 이달 10일, 북한은 통신선을 끊었다. 한미연합훈련이 명분이었다. 이튿날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반전의 기회를 외면하고 10일부터 전쟁 연습을 또 다시 벌려 놓는 광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라며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한미군사훈련 탓에 남북화해모드가 급랭됐다’는 식의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직 정보 당국자와 북한 군 간부 출신 탈북자 등의 해석은 달랐다. 지난달 창군 이래 최대 행사를 연 북한군이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움직인 것뿐이라는 해석이었다. 군 간부 전체가 평양에 집결함에 따른 현장의 공백을 성동격서식으로 무마한, 북한의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북한군 간부 출신인 한 탈북자는 “북한이 아무 이유 없이 통신연락선을 복원할 이유가 없었다”며 “군 간부를 전부 평양으로 모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의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늘 전시 상황을 대비해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간부를 모두 한곳에 집결 시키려면 주적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다. 한국과 통신연락선 복원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완화됐을 때 전군의 간부를 한 곳에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북한이 강습회를 주최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전직 정보 당국자에 따르면 이번 강습회의 목적이 군 사기 진작일 가능성이 높다. 이 당국자는 13일 “지난해 북한 군은 기존에 하던 배급을 대폭 삭감해 버렸다. 당시 6개월 정도만 버티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배급이 원상복귀 됐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아직 정확한 소집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군 사기 진작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