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북한에게 한미 합동훈련은 어떻게 다가올까[주성하의 北카페]

Shawn Chase 2021. 8. 15. 15:16

주성하 기자 입력 2021-08-15 09:00수정 2021-08-15 09:00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사전연습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아파치 헬기들이 이륙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북에서 성장하면서 유치원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

어느 날 바닷가 마을에 군인들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고, 바닷가에 해안포와 고사총이 전개되면 “아, 지금이 팀스피리트 기간이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보통 2~5월 농번기에 ‘팀스피리트’가 진행됐는데, 어른들은 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적위대 군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에는 거의 석 달가량 훈련이 지루하게 이뤄졌고, 어른들은 만나면 “저 미국놈 개×× 때문에 우리가 고생이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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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선 어떤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후방 바닷가 마을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철저히 해안으로 상륙하는 적을 막는다는 가정 하에 방어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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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훈련이 시작되면 동원될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갑자기 백사장에 개우리를 20~30m 간격으로 만들어놓고, 집에서 키우는 똥개를 저녁에 그곳에 묶어 놓았다 아침에 데리고 오는 과제를 받기도 했습니다. 간첩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가 밤에 해변을 지킨다는 발상이었죠.

아침, 저녁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백사장 우리에 데려가고, 데려오면서 “미국놈들 때문에 너까지 고생이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랬던 팀스피리트 훈련은 1994년부터 중단됐습니다.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국방부가 북핵문제의 성공적인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의 조건부 중단을 공표하였는데, 이것이 팀스피리트로 명명된 한미간 연합훈련의 종결을 의미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2000년까지 살았지만, 그 이후론 한미 합동훈련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크게 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맞아 대량 아사가 시작된 북한은 당시 미국의 훈련에 대응할 힘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군부대에서 허약환자가 속출하는데 훈련을 나가라고 해도 나갈 힘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북한에서 살 때 팀스피리트 훈련은 철저히 미국과 한국이 훈련하는 척 병력을 끌어 들였다가 기회를 엿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팀스피리트가 시작되면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훈련도 함께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팀스피리트 훈련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하면 북한이 공격 훈련을 할 때 한국도 맞춰서 방어 훈련을 시작해야 맞지 않는가 하는 것이 당시의 생각입니다.

요즘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를 타는 듯하다가 다시 긴장관계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여정과 김영철 통전부장이 연일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며 중단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연합군사훈련은 순전히 방어적”이라며 “우리가 오랫동안 주장했듯이 미국은 북한을 향한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순전히 방어적’이란 표현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듣는 상대에 따라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큰 말입니다. 특히 북한은 더욱 그 말을 믿지는 않을 겁니다.

순전히 방어적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공격을 막아내는 훈련이라는 것이겠죠. 즉 방어훈련을 하려면 공격을 하려는 위협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을 그 위협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당연히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훈련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북한은 선제공격을 할 의도나 능력이 있을까요.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선 사실상 포기 상태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북한의 군사훈련은 한미 합동훈련이 시작되는 시점에 맞춰 대응해 벌여왔습니다. 먼저 선제공격 훈련을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은 대응 훈련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한국 상공에 한미 전투기들이 뜨면 북한도 같은 숫자의 전투기가 떠서 대응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도 보이지 못합니다. 전투기의 노후화가 심해서 쓸만한 전투기가 별로 없고, 연료도 없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1년 내내 한국을 선제공격하는 훈련을 했다고 가정해도 전혀 두렵지는 않습니다. 핵무기를 제외하면 재래식 무력에서 이미 남북간 경쟁은 끝난 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된 고물 전투기를 운용하는 북한 공군과 함포를 쏘면 갑판이 쩍쩍 갈라지는 군함을 대안이 없어 아직도 유지하는 해군의 처참한 현실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육군도 장사정포를 쏠 능력은 갖고 있지만, 선제공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갑전력은 분계선에 도착하기 전에 전멸될 수준입니다. 기갑부대가 주둔지에서 떠날 때부터 한미의 감시망에 다 포착이 되고, 대공 방어력이 거의 없는 고물 기갑전력은 한미 공군 전력 앞에 순식간에 증발될 것입니다. 저는 연료난으로 훈련을 거의 못한지 20~30년째인 북한군 탱크 조종사들이 과연 탱크를 북한의 좁은 도로에서 굴러먹지 않고 분계선까지 몰고 올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북한군은 10년을 복무한다고 알려졌지만, 이들 병력의 상당수는 건설장이나 농사 부업에 동원돼 변변한 군사훈련을 할 틈도 없습니다. 북한군의 절반 이상이 1년에 총을 3발 이상 쏴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미 남북의 재래식 군비경쟁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은 공격은 고사하고 방어를 한다고 해도 며칠이나 버틸지 의문입니다. 1980년대에도 북한군의 전력은 한미를 압도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격차가 하늘땅 차이로 벌어져 남북의 재래식 군사력을 비유하면 격투기 선수와 중학생 수준만큼 벌어졌습니다.

이런 북한이 압도적 전력 우위를 가져야 가능한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을까요. 또한 방어훈련은 보통 약자가 해야 명분이 생깁니다. 예를 든다면 대만이 중국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훈련을 한다고 하면 대다수가 이를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군에 의한 본토 침공에 대비해 방어훈련을 한다며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어놓으면 이 세상에서 이를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지금 남북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으니 우리는 방어훈련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해가 갈수록 사람들을 점점 납득시키기 어려워질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투하하고 선제공격을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재래식 병력이 하는 방어훈련은 더 의미가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쏘면 핵전쟁이 납니다. 핵전쟁에서 재래식 병력은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저는 굳이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않아도 전면전 의사와 능력도 없는 북한을 견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격할 쪽이라는 북한에서 이미 훈련이고 뭐고 오래 전에 포기했고, 자기 스스로를 지킬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저놈들이 언제 전면전을 벌일지 모르니 우린 방어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잉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가정한 대규모 훈련을 하면 그때 가서 우리가 대응해 방어훈련을 해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이정도만 말해도 빨갱이라고 욕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로 군사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군은 반드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더 이상 군대가 아닙니다. 훈련을 해도 아주 강하게 해야 강군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막대한 돈을 들여 장만한 최신 군사장비도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써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설사 북한에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북한이 아무리 반발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우리가 군사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압도적으로 벌어지는 전력 격차에 절망하며, 한미 연합군이 훈련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북한도 의식해야 합니다. 한반도 긴장상태 완화와 평화적 공존은 어떤 정부라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입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해야 하는 것은 한미 연합군의 훈련을 어떻게 북한에 납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되겠네요. 참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신뢰가 쌓이면 또 풀지 못할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이를 푼 정권이 아직 없을 뿐입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