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서민의 문파타파]
어용방송 석고대죄했던 MBC 파업의 결과는?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1.07.17 03:00
일러스트=유현호
“공영방송 MBC가 ‘정권의 방송이 됐다’는 말은 입사 18년 만에 처음 들었다. … MBC를 이렇게 망가뜨린 데 대해 국민에게 석고대죄한다.”
2012년 1월 30일, MBC가 파업에 돌입했다. 먼저 기자들이 “공정 보도 회복하고 보도 책임자 물러가라”를 외치며 제작 거부에 돌입한 데 이어, MBC 노조마저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전면 총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다섯 번째 파업이었는데, 기자들은 파업에 돌입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간의 정권 편향적인 뉴스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받았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MBC 장악을 위해 국정원에 ‘MBC 정상화 방안’이란 문건을 만들게 했는데, 여기에는 △특정 연예인이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유도 △정부 비판 연예인의 출연 가능성 원천 차단 혹은 프로그램 폐지 유도 같은 독소 조항이 들어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문건 내용대로 일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예컨대 가수 윤도현과 방송인 김어준은 2011년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김미화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라디오 프로에서 퇴출됐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난 2008년 5월, 좌파는 한미 쇠고기 협상 전면 무효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광화문에 모였다. 별다른 근거도 없는, 좌파 특유의 거짓과 선동에서 비롯된 이 시위는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됐다. 정부는 시위대 요구대로 쇠고기 수입 조항에 대해 추가 협상을 시행했고, 이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사과했지만, 시위는 점차 과격해져 결국 정권 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사건의 발단이 MBC PD수첩이 4월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였고, 이 방송이 허위와 선동이었다는 게 추후 법원에서 입증된 바도 있었으니,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MBC를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렇다 해도 정권이 방송을 좌지우지하는 건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였고, 그런 면에서 MBC 노조의 파업은 정당했다고 본다. 수많은 시민이 MBC 파업을 응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업 승리는 쉽지 않았다. KBS와 YTN이 힘을 보태기는 했지만, SBS가 정상적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데다, 케이블TV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2011년 개국한 종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파업을 하면 시청자들이 불편해야 하건만, 그들은 “‘무한도전' 못 보는 걸 빼면 아쉬울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노조는 파업을 시작한 지 170일 만인 2012년 7월, 별다른 소득 없이 방송 현장에 복귀했다.
한번 기세가 꺾여서인지 MBC는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그해 치른 대선에서 보수 후보인 박근혜가 승리한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MBC는 박근혜 정부 내내 친정권적인 방송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의 여론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보도를 남발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 한창 화제였던 시절에는 이에 대한 보도를 최대한 자제함으로써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에게 ‘애국 언론’ 칭호를 듣기도 했다. 한국기자협회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MBC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이의 비율이 0.7%였으니, 이쯤 되면 언론사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대로 끝나나 했던 MBC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2017년 9월, MBC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경영진 사퇴와 MBC 정상화가 목표였다. 5년 전과 달리 이번엔 노조의 승리였다. 방송 환경은 그때보다 더 치열해졌지만, 정권이 자신들 편인데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MBC 출신으로 2012년 파업 때 해고됐던 최승호가 MBC 사장이 된 것은 이제 노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4년이 지난 2021년, MBC는 ‘만나면 좋은 친구’의 지위를 다시 회복했을까. ‘그렇다’고 답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MBC가 친정권 언론사였듯, 지금의 MBC는 문재인 정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예컨대 조국 사태 때 PD수첩이 만든 ‘조국 장관과 표창장’ 편을 보자. 이는 훗날 1심 재판부가 허위로 판명한 표창장을 조국 딸이 봉사 활동을 한 뒤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선동한 조작 방송이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MBC 수뇌부가 교체됐어도 거짓 선동 능력만큼은 여전한 것 같다.
올해 치른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의 생태탕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침으로써 정권 수호 방송국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얼마 전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가 결혼 전에 쓴 박사 학위 논문을 검증하던 기자가 논문 지도 교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찰을 사칭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맹활약 덕분에 MBC는 지금 친문 사이트에서 ‘공정한 방송국’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최근엔 나아졌지만 2019년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바닥을 기어서, MBC 앵커 출신인 배현진 의원은 ‘뉴스데스크' 시청률에 대해 이런 한탄을 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 인격 짓밟으며 인간성과 자존심을 버렸으면 잘 사셔야죠. 1%가 뭡니까?”
그렇다고 이들이 드라마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니어서, ‘오! 주인님’이 0.9%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최근 몇 년간 드라마는 대부분 죽을 쒔다. 당연히 적자가 쌓여,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본 적자는 무려 2700억원가량이나 된다. 이를 타개하고자 시청료를 받아볼까 손을 내밀어 보지만, MBC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워낙 사나워 잘될지 모르겠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MBC 노조는 지난 세월 왜 그리 열심히 파업했을까? 당시 그들은 정말 공정 보도를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기네가 마음껏 편파 방송을 할 권리를 얻고 싶었던 것일까? 2017년 대선 토론회 때 문재인 당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아주 자랑스러웠던 MBC는 어디 갔느냐?” 문 대통령님, 지금 MBC는 자랑스러우신가요? 여기에 대통령님의 책임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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