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염소피 수혈 악몽 끝냈다… 11억명 생명 구한 유대인 의과학자

Shawn Chase 2021. 6. 22. 18:30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3] 혈액형 발견한 의과학자 오스트리아 출신 란트슈타이너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입력 2021.06.22 03:00 | 수정 2021.06.22 03:00

 

1900년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서로 다른 피를 섞으면 적혈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 사람의 핏속에는 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서로 다른 항원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1901년 혈액형을 A형, B형, C형(후에 O형으로 변경)으로 분류했고, 1년 뒤 그의 제자들이 AB형도 찾아냈다.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하기 전에는 환자가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송아지나 염소 피를 수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 속에 죽어갔다. 란트슈타이너가 목숨을 건 ‘도박 수혈’로부터 인류를 구한 것이다. 그의 발견이 1955년 이후 약 11억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추산도 있다. 프랑스 화가 쥘 아들레르의 그림 ‘염소 피의 수혈’(1892), 파리 의학사 박물관 소장. /AFP

인류의 생명을 제일 많이 구한 의과학자는 누구일까?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는 생명을 많이 구한 의사(醫師)이자 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의과학자(醫科學者)’ 분야의 1위로 혈액형을 발견해 안전한 수혈을 가능하게 한 카를 란트슈타이너를 꼽았다. 그가 구한 생명은 1955년 이래 약 11억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 분류를 규명해주기 전까지 수혈은 죽음과의 도박이었다. 과거에는 환자가 과다 출혈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임신부의 22%가 출산 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과거 의사들은 이런 위급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의 하나로 다른 사람의 피나 송아지, 염소 피를 수혈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시커먼 오줌을 싸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 부검해보면 핏줄 속에 피가 뭉쳐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혈액형이라는 개념이 없이 수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수 좋으면 살고, 재수 없으면 죽었다. 이러한 목숨을 건 도박 수혈로부터 인류를 구한 의과학자가 카를 란트슈타이너다. 그는 초인적인 의과학자였다. 그가 연구한 의학 분야만 6가지이다. 생화학, 면역학, 병리해부학, 바이러스학, 혈청학, 알레르기학. 카를은 깨어있는 시간의 90%를 연구에 몰입했다.

화학·면역학 등 6가지 분야서 연구

카를은 여섯 살 때 언론인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외동아들로 자랐다. 그는 17세에 빈 의대에 입학해 23세인 1891년에 졸업했다. 유대인 가운데 특히 의사나 의학 연구자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신봉하는 ‘세상을 고친다’는 뜻의 ‘티쿤 올람’ 사상에 인간의 병든 몸을 고치는 것도 티쿤 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유대인답게 의대생 시절부터 어떤 삶이 더 값진 것인지, 어떤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인지에 대해 숙고를 많이 했다. 곧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삶과 의학 연구를 통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과학자의 삶 중 어떤 삶이 더 값진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카를은 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의대 시절부터 서로 다른 의학 분야가 접목될 때 위대한 발견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여러 의학 분야를 공부해 이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평생 공부를 목표로 정했다. 카를은 화학이야말로 의학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에른스트 루트비히 실험실에서 박사 후 연구를 시작해 골수암에 대해 연구하다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생화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의 스승 밑에서 돌아가면서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취리히의 한취(Hantzsch) 연구소, 뷔르츠부르크의 에밀 피셔(Emil Fischer) 연구소, 뮌헨의 밤버거(E Bamberger) 실험실에서 수년간 배움에 정진했다. 그는 이 기간에 스승들과 공저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지폐 모델이었던 란트슈타이너 - 오스트리아 1000실링 지폐의 카를 란트슈타이너. 1997년 처음 발행해 오스트리아가 유로를 쓰기 시작한 2002년까지 통용했다.

A형·B형‐ 사람마다 다른 혈액 분류

그 뒤 카를은 1년간 외과의사 밑에서 공부했다. 그 무렵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의과학자들은 혈액 속에서 세균들이 죽는 모습을 관찰했다. 도대체 혈액 속 무엇이 세균을 죽이는 것일까? 의과학자들은 이 무엇에 ‘항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를의 배움 욕구는 항체를 다루는 면역학으로 넓혀졌다. 그는 1896년 빈 대학 위생연구소 세균학자 막스 폰 그루버 박사의 조수가 되어, 3년간 면역 메커니즘과 항체의 특성에 대해 연구했다. 이후 카를은 원인 모르게 죽어간 많은 환자들의 사망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병리해부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898년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세균학자 안톤 바이크셀바움 빈 의대 병리해부학과 교수를 찾아가 무급 조교로 일하겠으니 받아달라고 간청하여 승낙을 받아냈다. 의대 졸업 동기들은 임상 의사로 돈을 잘 벌고 있을 시기에 카를은 무급으로 연구에 정진하기로 한 것이다. 1899년 카를은 병리해부학 교수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10년간 바이크셀바움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카를은 대학에 출강하며 외국 의사들에게 병리해부학 강의를 하는 한편 법의학자로 매일 사체를 해부하며 사망 원인을 분석하는 일에 매달렸다. 병리학 강의가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면 사체 해부는 연구를 위한 일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3639구에 달하는 사체를 부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