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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산업 망했다?-1] ‘필카→디카→폰카’ 위기론 핵심은

Shawn Chase 2021. 5. 31. 23:13

180년 역사로 보는 카메라 산업 위기의 본질

  • 기자명 조재성 기자 
  •  입력 2016.11.01 17:49

첫 도전은 야심차게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카메라 사업 일류화를 주문했다. 삼성전자는 전담 사업부를 꾸려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도전했다. 그 결과 2010년 하이브리드 카메라 NX 시리즈가 탄생했다.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2012년 하반기에 국내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소니를 꺾고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당시 삼성전자는 2015년까지 글로벌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래가 삼성전자 뜻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가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대폭 축소한다는 루머가 흘러나왔다. 기존 연구 인력은 스마트폰 카메라 센서 개발에 투입된다는 소문이었다.


▲ 출처=뉴시스

실제로 같은 해 하반기 삼성전자는 유럽 곳곳에서 카메라 영업을 철수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업부서를 일본 니콘에 매각한다는 얘기도 나왔는데 결국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여름에는 디지털프라자를 통해 대규모 카메라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재고 털기’라는 얘기가 따라붙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디지털 카메라 사업 철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의 희생양이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2013년 카메라 사업을 담당하던 디지털이미징사업부를 무선사업부로 흡수시키며 단계적 철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러 분석이 뒤따랐다. 첫째는 카메라 시장에서 경쟁력이 부족해 후퇴한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카메라 회사의 브랜드 파워가 막강한 상황인 데다가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니 사업 정리 우선 순위가 됐다는 설명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카메라 산업 비전의 문제다. 실제로 삼성전자만 적자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카메라 업계는 전반적으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니 먼저 탈출하는 쪽이 생존 확률이 높은 것 아닌가.’ 이런 논리로 설명됐다.

필름 명가는 어떻게 몰락했는가

카메라 산업 위기론은 설득력을 지닌다. 삼성전자의 사례는 단편적인 예시일 뿐이다. 카메라 업계에 위기의식은 오래 전부터 만연해왔다. 오래된 위기인 셈이다. 실제로 카메라 산업 역사를 훑어보면 위기와 기회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39년 다게르(Jacques Daguerre)가 은판사진술을 완성한 이후 카메라 대중화 시대가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게르 이후 조지 이스트만이 회사를 차려 대중에 카메라 기술을 전파했다. 그 회사가 ‘필름 명가’로 잘 알려진 코닥이다.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1888년 코닥이 내세운 광고 카피다. 사용하기 쉬운 저렴한 자동카메라를 홍보하기 위한 문구였다. 카메라는 빠르게 대중의 물건이 됐다. 코닥은 카메라를 전파하고 필름을 팔아 몸집을 불렸다.



▲ 출처=위키미디어
코닥은 승승장구했다. 필름 시장을 독점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특허도 착실하게 수집하며 기업 가치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코닥은 ‘미국 2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1990년대엔 매년 1억원대가 넘는 일회용 카메라를 판매했다. 명가는 영원할 것 같았다.

황금기는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와 함께 깨졌다. 필름이 디지털 기술로 빠르게 대체됐지만 코닥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필름 사업을 접고 특허권을 매각해 가까스로 파산 위기를 벗어난 처지가 됐다.

사실 코닥은 1975년에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기술을 묵혔다. 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팔릴 경우 기존 필름 판매 수익을 깎아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두고 ‘열등한 비즈니스’라는 판단을 내렸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코닥이 몰락했다고 카메라 산업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일본 카메라 회사들이 기회를 잡았다. 캐논과 니콘을 비롯해 소니, 파나소닉, 올림푸스, 후지필름 등이 상승세에 올라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필드 아닌 플레이어의 위기

이들도 최근 상황이 좋지는 않다. 시장 흐름은 삼성전자의 사업적 판단이 옳았다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지난해 캐논과 니콘은 2014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 올림푸스는 같은 기간 적자 폭을 줄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카메라 산업 지표를 봐도 하향세는 뚜렷하다. 이미 2013년 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 시장 규모가 처음으로 전년 대비 –4.6% 줄어든 이후 추이가 이어지고 있다. 니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내 렌즈 교확식 디지털 카메라 판매량은 지난해 1357만대에서 올해 1240만대 규모로 감소할 전망이다.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더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1357만대에서 올해 1240만대 수준으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측된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2008년 전후 스마트폰 혁명은 중대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또 스마트폰은 다양한 카메라·SNS 애플리케이션(앱)을 등에 업고 확장성을 무기로 디지털 카메라의 영역으로 돌진해왔다.

카메라 업계는 대응책을 모색했다. 콤팩트 카메라 대신 렌즈 교환식 카메라 라인업 대중화에 집중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전략이 먹혀드는 것 같기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이들을 고스펙(그리고 고비용)이라는 미끼로 현혹시키기는 쉽지 않았던 탓이다.

주요 카메라 회사들은 앞선 광학 기술과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신과 융합을 시도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카메라 산업은 다시 예전처럼 시대 흐름에 맞춰 재편되고 있는 형국이다.

역설적이게도 사진 찍는 행위 자체는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카메라 모듈이 사용되는 분야도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시장 변화가 기존 카메라 회사들 이외에 더 많은 회사에게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코닥이 몰락했다고 카메라 산업 전체가 침몰하는 건 아니었던 것처럼, 역사가 반복될 조짐이다.

조재성 기자 jojae@econovill.com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