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1대에 1500억, 이 장비를 확보해야 반도체 패권

Shawn Chase 2021. 1. 9. 12:53

EUV장비 독점하는 네덜란드 ASML...시가총액 인텔보다 높아

김성민 기자

입력 2020.12.30 16:30

 

 

ASML 직원들이 EUV 노광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ASML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회사.”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을 이렇게 부른다. ‘수퍼을’이란 별칭도 있다. 반도체 미세 공정에 없어서는 안 되는 EUV(Extreme Ultra Violet·극자외선) 장비를 만드는 전 세계 유일의 회사다. 반도체 산업에서 5나노 이하(1나노는 10억분의 1m) 미세 공정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EUV 장비로 5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들면 에너지 효율과 성능이 좋아지고 반도체 크기도 줄일 수 있다. ‘ASML이 어디에 장비를 공급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패권이 결정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코로나를 뚫고 찾아간 곳이 바로 네덜란드 벨트호벤의 ASML 본사였다.

지난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 삼성전자

◇시가총액 인텔 제친 노광 장비 업계의 왕

ASML은 1984년 가전 업체 필립스와 ASMI라는 반도체 업체가 합작해 만든 노광 장비 회사다. 현재 전 세계 직원이 2만4000여 명에 달하고, 작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32.5% 늘어난 118억유로(약 15조7000억원)다. 올해 매출액은 10% 이상 더 늘어난 132억유로로 예상된다.

전 세계 노광 장비 시장은 ASML과 일본의 캐논과 니콘, 단 3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ASML은 시장 점유율 85.3%로 압도적인 1등이다. ASML은 특히 반도체가 5나노 이하 시대로 진입하면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최근 세계 1위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에서 5나노 공정으로 제작한 반도체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5나노 전쟁이 시작됐다. 기존 반도체보다 10~20% 개선된 성능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이 전쟁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무기가 ASML의 EUV 장비다. EUV 장비 수요가 늘면서 ASML의 주가도 치솟았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ASML의 주가는 올해 무려 63% 상승했다. 시가총액(221조532억원)은 왕년의 반도체 제왕인 인텔(220조1911억원)마저 추월했다.

ASML 직원들이 EUV 노광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ASML

◇생산량이 1년에 40여 대뿐

ASML이 시장 패권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된 이유는 생산 가능한 EUV 장비 수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극자외선을 이용하는 EUV 장비는 매우 복잡하면서 초정밀성을 요구한다. EUV 장비 한 대의 무게는 180t, 높이는 2층 버스 높이인 4~5m다. 총 10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장비 내부는 진공 상태이고, 0.005도 단위로 온도를 제어하는 기술도 탑재된다. ASML이 EUV 장비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기술적으로 초고난도이기 때문에 ASML도 한 해에 30~40여 대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EUV 장비 1대당 가격은 1500억원이고, 제작에만 무려 5개월이 걸린다. 현재는 예약이 밀려있어 지금 주문해도 1년 반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ASML은 올해 EUV 장비 35개를 출하하고, 내년엔 47대를 출하할 계획이다. EUV 장비 공급 부족이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 요인이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의 TSMC가 EUV 장비 40대, 삼성전자가 18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엔 TSMC가 30대, 삼성전자가 10대 정도의 EUV 장비를 확보하며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확고한 과점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혁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EUV 장비 제한으로 인해 파운드리 사업은 ‘수요 증가→가격 상승→투자 확대→공급 초과→가격 하락’이라는 기존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며 “파운드리 산업의 장기 호황이 예상된다”고 했다.

최근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도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도입하려 나서며 ASML의 장비 수요는 더욱 커졌다. 메모리 업체들이 EUV 장비 확보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가동한 평택2라인에서 내년부터 EUV 공정을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적용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내년 하반기 ASML EUV 장비로 D램을 만들기로 했고, 미국의 마이크론도 EUV 설비 개발 엔지니어를 모집하며 EUV 공정 도입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는 “ASML이 어느 업체에 장비를 먼저 공급해 주느냐에 따라 EUV 공정을 적용한 D램 출시 시점이 달라지고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패권도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UV(극자외선) 노광(露光) 장비

파장이 아주 짧은 극자외선(Extreme Ultra Violet)을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쏘아 가는 회로를 그리는 장비. 대당 1500억원이다. 극자외선은 공기에 노출되면 바로 흡수돼 사라지는 등 활용이 어렵다. 그만큼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돼 전 세계에서 ASML만 생산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