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이야기들

[사람들] “두 팔 다리하나 없어도 노래로 사랑 전해”

Shawn Chase 2020. 11. 28. 20:55

스웨덴판 ‘오체불만족’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 방한

이자연기자

입력 2003.02.16 20:03

 

그녀의 한쪽 다리는 30㎝ 밖에 되지 않는다. 여행한 도시는 수십 곳이
넘는다. 양 어깨엔 팔이 없다. 그래도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하다.

한 장애인 가수가 교인들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방한한
스웨덴 출신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35)다. 그녀의 인생은 그저
감동이라기엔 너무 벅차다.

베스트 앨범 발매기념으로 지난 7일 서울에 온 그녀는 높은뜻숭의교회
등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소개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었다. 왼쪽 다리는 절반 밖에 발달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온전한 것은 오른쪽 다리 뿐이다.

이런 중증장애에도 불구하고 레나의 얼굴에서는 한점 원망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은 미소를 띠고
있다. "저는 팔은 없지만,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태어났거든요." 아이처럼 밝은 그녀의 표정은 사지(四肢) 멀쩡한
사람들을 종종 부끄럽게 만든다.

레나는 오른발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밥을 먹는다. 설거지,
뜨개질, 립스틱이나 패티큐어를 바르는 일도 왼발과 입을 동원해 척척
해낸다. 한쪽 다리로 물장구를 쳐 수영을 하고, 장애인용 차로 운전도
한다. 오른발로 핸들을 잡고, 왼발로 각종 기기를 눌러 작동시키는
식이다. 남 보기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레나는 즐겁게 산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레나의 발가락은 핸들 위에서 까딱까딱
장단을 맞춘다. 레나는 "팔이 없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며 "오른손잡이가 있고 왼손잡이가 있듯이, 남들이 손으로 할
일을 난 발로 할 뿐"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토록 밝고 긍정적일 수 있을까. 해답은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엿볼 수 있었다. 스웨덴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그의 부모는 레나를 정상인
남동생과 '똑같이' 대했다. 갓난아기 때도 레나의 어머니는 우윳병을
붙잡아주는 대신, 고무줄을 둘러 아기가 스스로 발로 잡게 했다. 식탁에
음식을 흘리면 동생과 똑같이 지적을 받았다. "자라면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나무 위 오두막집에서 놀
때 이웃사람들은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부모님은 '떨어지는 것도
남들처럼 배워야 한다'고 하셨죠." 주변 사람들은 "가혹하다"고
했지만, 덕분에 레나는 자신의 장애를 갈수록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됐다.

 

"부모님이 제 앞에서 속상해하거나 부끄러워하신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강해지라'든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어요.
그저 '우린 널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죠. 우리는 늘 집에서 농담을 했고
다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일반학교에 진학한 레나는 사교적인 성격으로 항상 친구가 많았다.
피하는 친구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남들이 달리기를 할 때
결승선에서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했다. 3살 때부터 부모와 함께 배운 수영실력으로
세계장애인수영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스톡홀름
국립음대를 졸업한 뒤로는 본격적인 가스펠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레나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88년 스웨덴TV에 그의 휴먼스토리가
소개되면서부터다. 이후 앨범과 수기('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가
전세계로 팔려나갔고, 각국에서 초청이 쇄도했다.

"사실 해외공연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제 노래에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택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레나는 현재 대학시절 만난 비욘 클링밸(음악 프로듀서)과 결혼해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직접 작사·작곡도 하는 레나는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절)'라는
노랫말을 특히 좋아한다. 하긴 누가 그에게 '부족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의족을 끼고 뒤뚱뒤뚱 걸을 때조차도 그의 표정은 날개라도 달린
사람처럼 밝다.

35년 전 양팔이 없는 갓난아기가 태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가족이
모두 불행해질테니 보육원에 보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아기의 부모는
'비극'이 아닌 '축복'으로서 레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아기는 전세계의 팔다리 멀쩡한 사람들로부터 매일 수십통의
감사 편지를 받고 있다. "당신을 알게 된 뒤 불행하던 내 인생이 환하게
바뀌었다"는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