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20.11.20 18:21
요즘 일부 방송을 보면, 추미애·윤석열 두 사람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라는 말을 한다. 법무장관·검찰총장, 두 사람 싸움이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한다. 그 싸움의 중심에는 항상 검찰이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방송은 사태의 본질을 흐려놓는 말들이다. 핵심을 비켜가 있다.
지금 싸움은 ‘문재인 대 윤석열’의 싸움이다. 대통령 대 검찰총장, 싸움이다. 울산선거 공작,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드루킹 댓글 조작,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등, 대충 굵은 것만 떠올려도 네 가지 이상 되는 ‘권력형 비리’ 의혹에 청와대의 예닐곱 부서와 책임자들이 관련됐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들이 관련 의혹을 받고 있다면 그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당연히 법적·정치적·도덕적·총체적 책임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법, 정치, 도덕, 총체, 즉 ‘법정도총’ 책임자인 것이다. 그런데 헌법주의자요 원칙주의자를 자임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심지어 대통령과 그 주변까지, 즉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검찰이라고 믿고 있고, 일선 검사와 검찰 간부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강연을 할 때 그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국면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징적 정점으로 하는 정권 실세 그룹, 그리고 윤석열 검찰이 맞서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승패는 영향을 받을 것이다.
법무부는 어제 오후2시에 검찰총장에 대한 대면 감찰을 하겠다던 계획을 일단 취소했다. 법무부는 “대검에서 협조하지 않아 방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원칙대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총장이 감찰에 불응했다’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수작일 뿐이고, 징계위원회를 열려는 사전 정지작업일 뿐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7명으로 구성되는 징계위원회는 법무장관이 위원장이고, 나머지 사람도 대부분 법무장관이 임명하는 사람으로 구성된다.
한 신문은 이런 사설 제목을 달았다. ‘추미애 내세워 검찰을 난장판 만드는 게 대통령 뜻인가’. 그렇다. ‘추미애’를 대통령이 대리인으로 내세웠을 뿐이고, 사실 그 뒤에는 대통령 자신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여론과 관행도 무시하고 심지어 법규까지 어기는 추미애 법무장관과 법무부의 폭주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추 장관은 징계위원회를 통해 총장에 대한 ‘해임 건의’ 혹은 ‘직무 정지’ 등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들은 오히려 추미애 장관이 직권남용으로 기소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실에서 대면 감찰을 하겠다고 하면, 윤 총장은 법무장관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장관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래서 총장의 직무정지냐, 장관의 직권남용이냐, 이렇게 단순화 시켜서 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신문 사설은 “유례가 없는 총장 감찰 추진의 의도가 윤석열 총장을 몰아내야 임기 말과 퇴임 후의 안위가 보장된다는 청와대·여권의 판단 때문임을 국민은 다 안다”고 했다. 그런데 ‘퇴임 후의 안위’에 대해서 최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화요일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 토론회에서 “제가 청와대 밖에서 일하는 사람치고는 대통령을 자주 보는 사람일 텐데 (문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고민하거나 개헌안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는 잊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의 안위’가 걱정되기 때문에 차라리 ‘잊혀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마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올해 1월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퇴임 후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다. 아마 지지자들의 눈에는 대통령의 소박한 모습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 황대진 정치부 차장은 “(대통령에겐) 잊혀질 권리가 없다”며 5년 임기 중 국가예산 총 합계 2500조원을 쓰고 나갈 사람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문재인 당신은 잊혀지고 싶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한다” “지은 죄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결코 잊혀질 수 없다. 벌써부터 목숨 구걸하는 것인가”라고 질타했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런 농담이 나돈다. “이낙연이 대통령이 되면 지금 정권 사람들은 6개월 이내에 감방 갈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1개월 이내에 감방 갈 것이다.” 야당이 아닌 여당 쪽으로 차기 정권이 결정되어도 비리 관련된 정권 사람들이 철창신세를 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였다. 어제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도 매우 통렬한 칼럼을 썼다. “이재명 파출소에 윤석열 경찰서, 문(대통령)이 자초한 ‘차기 리스크’ “, 이런 제목이다. 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퇴임 후 문 대통령에게 이재명이 늑대라면 윤석열은 호랑이란 뜻이다. 그 대목을 직접 인용하면 이렇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 주자 선두 그룹으로 치고 나왔을 무렵, 전직 의원은 “그가 집권하면 나라를 어떻게 뒤집어엎을지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위안이 된다고 했다. “이재명이라면 문재인 정권의 죄상을 확실히 파헤친다”는 거다.’
윤석열을 분석한 대목은 이렇다. ‘며칠 전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 주자 1위로 나온 여론조사가 발표된 날 저녁 자리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평생 범죄와 씨름해 온 사람에게 국가 운영을 맡긴다는 건 난센스다. 그래도 그가 대통령이 되면 문 정권이 덮고 지나가려는 범죄들을 제대로 손보지 않겠나. 상상만 해도 후련하다.” 권력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배후 조종한 추미애 인형극이 국민 정서를 거스르지 않았다면 현혁 검찰총장이 대선 주자 선두권에 부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이 배후 조종한 추미애 인형극’이란 지적이 통렬하다. 지금 국민들은 문 정권의 경제정책, 대북정책, 부동산정책, 기업정책, 탈원전정책 등을 시급히 제자리로 돌려놓는 차기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에 앞서 문 정권을 혼내줄 수 있는 사람을 더 기다리고 있다는 뜻도 된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에 감옥에 가는 비극적인 악순환이 제발 단절되기를 바라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행태에 정말 열 받고 화가 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국민의 응원가 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친문 핵심으로 통하는 인물이 운영하는 정치컨설팅 업체가 내놓은 여론조사에서도 윤석열 총장이 차기 대선의 선두 주자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근형 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설립한 윈지코리아컨설팅은 지난 수요일 차기 여야 대권 주자들의 1대1 가상대결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낙연 대 윤석열’은 42.3% 대 42.5%, ‘이재명 대 윤석열’은 ’42.6% 대 41.9%’로 나왔다.
사실상 오참범위 내에서 똑같이 비등비등하다는 뜻이다. 사실상 여당 쪽에서 조사한 결과라는 점, 그리고 이낙연·이재명은 오래 전부터 링 위에 올라 몸을 풀고 있었지만, 윤석열은 링에 오르기는커녕 출사표도 던지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상황은 윤석열이 훨씬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또 여당으로만 본다면 당내에서는 이낙연이 우세하지만 외연 확장성에 있어서는 이재명이 앞선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이런 분석도 있다. “선거판을 만들고 굴려본 경험자가 또 뭔가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 오늘 한국일보는 1면 톱기사로 “이낙연, 문 대통령에 김현미·추미애 ‘부정 여론’을 전달”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12월초 개각 인사에 추미애·김현미 법무·국토 장관이 포함되느냐 유임되느냐 엇갈리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낙연 당 대표는 교체 쪽으로 뜻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번 주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조사 발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국정수행 지지율이 58주 만에 가장 낮은 42.5%를 기록하고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최저치다. ‘잊혀지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말씀,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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