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기자
입력 2020.10.04 14:19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배우자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단독주택을 재건축해 임대주택 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강 장관 재임 기간 추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절세를 위해 여러 시나리오를 다각도로 검토한 정황도 드러났다.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2017년 6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남편 이일병(왼쪽) 전 연세대 교수와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강 장관 취임 후에도 한동안 추진했던 사업이 좌초한 데에는 민간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약속했다 이를 뒤집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다(多)주택 보유 공직자에 대한 거센 비토(veto) 여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실상 다주택자와 임대 사업자를 죄악시하는 부동산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공직자로서 적절치 않은 처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 장관 취임 후에도 추진… “수준 높은 2베드룸 지향”
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강 장관의 배우자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퇴임 후인 2016년 10월 한 건설사 대표에게 다세대주택 또는 빌라 형태의 집에 대한 설계를 의뢰했다. 부지는 이씨가 연희동에 보유한 단독주택(217.57㎡)과 임야(301㎡)로, 부친 때부터 50년 넘게 가족이 실거주 중이었다. 이씨는 “우리 땅의 현재 가치와 건축했을 때의 포텐셜(잠재적) 가치, 그리고 어떻게 은행에서 다양한 돈을 빌려서 건설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줬다”고 했다.
이씨는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서 “퇴직 후부터 연희동 집에 대해 장기적으로 어떻게 땅의 가치를 최대화 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런 고민 끝에 ‘판매와 임대가 가능한 공동주택을 짓는게 답’이라는 결과를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일병 명예교수가 2017년 1월 블로그에 공개한 디자인 가안
이씨는 이듬해 1월 보다 구체성을 띤 계획을 내놓는다. 이씨는 “근처 대부분이 원룸, 다가구주택 건물인 상황에서 고급 2베드룸을 지향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좋은 방향”이라며 블로그에 설계 시안(가안)까지 공개했다. 저가 원룸이 주력인 인근 부동산과 차별화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주택을 지어 소비력이 있는 신혼부부나 교직원, 방문 외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한 임대 또는 판매를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한 건설사 사장과 면담한 사실도 알리며 “신탁은 제2금융권이라 이자가 높으니 피하라” “자본이 풍부한 건설사에게 건물을 맡겨 담보 대출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재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이니 다음 정권 정도에 정책적 부동산 경기 활성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좋음”이라고도 했다.
◇자녀 증여 혼합 등 절세 시나리오 다각도로 검토
이씨는 강경화 장관 취임 3개월 째인 2017년 8월, 주택 건축 추진 시 절세(節稅) 방법을 놓고 세무사의 상세한 안내를 받았던 사실까지 공개했다. 상담 자리에선 ▲증여받은 택지를 매각하는 경우 ▲증여받은 택지 위에 공동주택을 신축해서 분양하는 경우 ▲조세 특례법에 따른 준공공임대주택을 신축하고 임대하는 경우 등 여러 시나리오가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부부의 단독주택과 임야. /장련성 기자
이씨는 “애들에 대한 증여를 혼합시킬 수 있다고 세무사가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줬다”며 “상담료는 본격적으로 증여 및 건축을 할 때 내기로 했지만, 300만원이 꼭 비싼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 장관 부부는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올해는 약 3개월에 거쳐 설계를 한 후에 내년 초에 건축자금 대출과 증여와 신축에 관련된 허가를 받고 건축주 직영 체제로 신축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본다”라고 했다.
◇文 정부 임대사업자 혜택 환수에 사업 좌초된 듯
하지만 이후 연희동에서 새로운 주택개발 사업은 일어나지 않은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환수하고, 다주택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거세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전만 하더라도 각종 혜택을 주면서 임대사업을 권장했지만, 이후 180도 돌변해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2018년 9·13 대책에선 공시가격 6억원(서울·수도권 기준)과 전용면적 85㎡를 넘는 임대주택은 최고 70%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없게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4월 25일, 이씨가 공시지가 8억원이 넘는 연희동 임야 301㎡(약 91평)를 장녀(37)·차녀(33)·장남(32) 세 자녀에게 각각 100㎡(약 30평)씩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2층 짜리 주택(건물 217.57㎡)은 이 교수가 그대로 갖고, 마당에 해당하는 임야만 세 자녀에게 같은 면적으로 나눠서 증여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전 연세대 교수가 보유한 연희동 주택(파란색 부분)과 이 전 교수가 자녀 3명에게 3분할 증여한 임야(빨간색 부분)의 항공 사진. /조선일보DB
이를 두고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정부의 고가(高價)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에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아끼는 한편 향후 주택 개발을 위한 사전 정지(整地)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향후 임야인 땅이 개발돼 자산 가치가 더 오르기 전에 이를 자녀들에 증여해 세금 부담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씨 “내 단기 목표는 2년안에 서울 땅에 임대주택 건설"
이 때문에 “연희동 단독주택 부지 개발은 결국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씨는 지난해 2월 ‘임대사업자 세금감면 자료’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공유했고, 같은 해 3월에는 세무사 상담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택지 개발에 대한 그의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씨는 세무사 상담 계획을 알리며 "현재 소유한 땅을 증여할 자식들에게 증여할 경우 얼마나 세금이 나오는지, 아니면 내가 그곳에 임대주택을 몇년 전 얘기한 것처럼 짓는 것이 좋겠는(세금 절세 용도)지 등에 대한 상담과 구체적인 액수를 알고 싶어서이다”라고 했다. 이후 한 달 만에 세 자녀에 대한 증여가 이뤄졌다.
현재 서울 연희동 일대는 신규 주택 건설 개발이 한창이다. 강 전 장관 부부 자택 근처에도 6층 빌딩과 5층 신축 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씨는 지난해 6월 “중단기적으로 내 목표는 2년안에 서울 땅에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이 프로젝트가 노후 생활에 아주 중요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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