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도 ‘사람이 먼저’ 野도 ‘국민의 힘’
모두가 국민에게 영합 경쟁, 국민은 늘 위대하진 않아
무책임한 대중과 맞서는 리더십 완전히 실종됐다
양상훈 주필
입력 2020.09.03 05:00 | 수정 2020.09.03 11:33
양상훈 주필
야당이 새 당명으로 ‘국민의 힘’이란 생소한 이름을 결정했다. 지난 총선에서 대패를 당했으니 국민을 더 받들겠다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여당은 ‘사람(국민)이 먼저’라 하고 야당은 ‘국민은 힘이 있다’고 한다. 국민이 전지전능해서 그들만 따라가면 만사형통이라는 듯 하다.
‘국민’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선 많은 얘기가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은 바다와 같아서 정권이라는 배를 띄워주기도 하지만 산산조각 내 침몰시키기도 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선거에 이기고 져 본 정치인들에겐 실감 나는 비유다. 그러나 ‘국민’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2000년 전 로마인 플루타르코스(플루타크)라고 생각한다. 그가 쓴 ‘영웅전’에 ‘군주가 국민의 뜻만 추종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 손에 망한다’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국민’은 정확하게 바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여 모습은 ‘국민 뜻만 추종하면 국민과 함께 망한다’는 앞 구절을 되새겨보게 한다. 문 정권은 ‘여론조사 정권’이라고 한다. 심지어 한·일 정보보호협정 연장 여부와 같은 군사 안보 문제조차 여론조사를 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여론조사에 올린다는 것은 수학 미적분 문제 정답을 여론조사 회사에 물어보는 것과 같다. 능력이 없고 자신이 없으니 여론에 기대려는 것이겠지만 ‘국민의 뜻만 추종하면 그들과 함께 망한다’는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책임 있는 공중(公衆)과 무책임한 대중(大衆)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청년들도 국민이고,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할 것이 뻔한데도 월급 올려달라고 파업 하는 노조원도 국민이다. 대중의 특성은 이기주의다. 황금 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것이 대중이다.
국민의 뜻만 추종해 국민의 표를 받으려는 정치 세력은 그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지난 총선 직전 친구들 모임에 나갔던 한 분은 “귀농해 사는 한 친구가 여당 압승을 예견해 다들 놀랐다”고 했다. 그 사람은 “동네 노인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한 달에 50만원 안팎을 정부에서 받고 있는데 이장이 ‘야당이 이기면 그 돈도 없어지고 재난지원금도 안 나온다’고 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 였다.
문 정권의 정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많은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노골적이다. 지금 현금 형태로 나랏돈을 지원받는 국민은 1200만명에 달한다. 저소득층은 근로소득보다 나라에서 받는 돈이 더 많게 됐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각종 현금 복지 제도가 무려 2000종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 건강보험기금 20조원과 고용보험기금 10조원이 곧 탕진되는 것도 사실상 현금을 뿌린 결과다. F-35 스텔스기 30대 살 수 있는 돈으로 병사 월급을 준다. 문 정권이 4년간 285조원의 천문학적 빚을 내 돈을 뿌렸는데 ‘쇠고기 파티 했다’는 얘기와 여당의 선거 대승 외에 남은 게 무언가.
문 정권 전에 36%이던 국가 채무 비율이 불과 4년 뒤 2024년에 60%에 근접한다. 세금은 안 들어오는데 정부 지출을 줄일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국민에게 한번 현금을 뿌리기 시작하면 누가 정권을 잡든 그만둘 수 없다. 국가 채무 비율이 36%에서 60%로 되는 데 단 7년 걸렸다. 60%에서 80%까지는 5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변수가 본격화하면 80%가 100%로 되는 것은 2~3년 사이에 벌어질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현 외환 보유액 4000억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국민들 사이엔 조그만 위기감도 없다. 1997년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신청 발표 날까지 국민은 외환 위기가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중은 위기가 자신의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는 공짜 돈 주는 정당에 마음이 끌린다. 정부가 국민 뜻만 추종하던 아르헨티나, 그리스는 그렇게 국민과 함께 망했다.
그렇다고 정당이 국민 뜻을 거스르면 국민 손에 망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그랬으니 선거를 하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선별 재난지원금을 주장한 정치인들은 대중의 뭇매를 맞는다. 한국 보수 정당은 대중 인기보다 국가적 현실과 책무를 중시했다. 그 때문에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정당이란 비판을 들었지만 지금 한국을 이만큼 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보수 정당마저 ‘국민 뜻을 거스르다 국민 손에 망하는 일 안 하겠다’고 한다. 선거에 지면 모든 게 허사이니 말릴 수도 없다.
2차대전 때 영국 대학생들은 히틀러가 침략해와도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독일 반격이 두려워 제 집 부근 기지에서 전투기가 이륙하는 것을 막았다. ‘국민 뜻을 거스른’ 정치인이 있었던 영국은 싸워 이겼고 그런 정치인이 없었던 프랑스는 곧바로 항복했다. 국민은 늘 위대하진 않다. 비루한 경우도 많다. 결국 용기 있는 리더십 문제인데, 우리는 완전한 실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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