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0.08.17 03:18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은 1814년 미·영 전쟁 당시 영국군의 총공세를 막아낸 볼티모어 전투를 묘사한 내용이다. 영국군의 포격을 이겨내고 펄럭이던 성조기를 본 사람이 감명받아 쓴 시에 곡을 붙였다. 그런데 이 곡은 존 스태퍼드 스미스라는 영국인이 1770년대에 작곡한 '아나크레온의 노래'란 곡이 원곡이다. 심지어 그 영국인 작곡가는 당시 생존해 있었다.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을 '민족반역자'로 지칭하며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미국 국가는 반역자가 아니라 적이 작곡한 노래다. 미국에서도 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 이유는 원곡 가사가 술과 섹스를 예찬한 내용인 데다가 부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몇 번 여론조사를 했는데 바꾸자는 사람은 10%가량이라고 한다.
▶"적들의 피로 밭고랑을 적시자"는 내용의 프랑스 국가는 우리나라에서 '민중의 혁명 정신이 담겨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 내에서는 개사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이들이 부르기에 너무 끔찍하며 이민자 국가인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적으로 들린다는 이유다.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도 "라 마르세예즈를 들을 때마다 섬뜩하다"고 말했다. 영국 국가는 여왕의 만수무강을 빌고 '우리를 오래오래 다스리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많은 나라의 국가들이 현대에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비판을 받곤 한다.
▶최초의 애국가는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붙인 노래이지만 현재의 애국가는 1930년대 안익태가 작곡했다. 1940년대 들어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부르며 전파돼 대한민국의 국가가 됐다. 그 후 80년간 식민지 최빈국에서 현재의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한국인 가슴속에 살아 숨 쉬어 온 노래다.
▶안익태 친일 논란은 2000년대 들어 시작됐다. 1942년 안익태가 일장기가 걸린 독일 공연장에서 교향곡 '만주국' 연주를 지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익태는 '한국환상곡' 유럽 초연 때 아일랜드 신문 인터뷰에서 "모든 조선인들이 열망하듯 나도 나의 조국이 아일랜드처럼 독립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사람이기도 하다. 애국가와 안익태를 칼로 무 자르듯 부정하는 것은 천박한 역사 인식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 이들이 세상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완장 바꿔 찬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7/202008170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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