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전

삼성전자의 애물단지 비메모리를 살린 두 가지 모험

Shawn Chase 2020. 7. 22. 17:01

 

조선일보 

  •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前 정보통신부 장관

입력 2020.07.22 03:20

1990년대 삼성전자 비메모리 적자 1500억원, 세계 30위 수준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前 정보통신부 장관

지난해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사업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시스템 LSI(Large Scale Integration)칩과 파운드리(foundry·위탁생산 전문 회사) 분야에 향후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자리엔 대통령도 참석했다. 정부도 1조원을 투자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감흥은 없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반복했던 정책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추격자' 중국은 지난 2015년 '반도체 굴기(崛起)'를 선언하고 3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팹리스·fabless)는 1500여곳. 그중엔 매출 10조원을 올리는 대기업도 있다. 파운드리 회사도 6곳이다. 팹리스 80여곳, 파운드리 1곳인 국내 현실과 대비된다.

그렇다면 거의 아사(餓死) 상태에 놓인 국내 비메모리 산업을 부활시키려면 뭐가 필요할까. 1990년대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 분야를 지휘했던 필자 경험을 통해 교훈을 끌어내 보려 한다. 당시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부는 매출 7000억원에 적자 1500억원, 세계 30위권에 머물던 애물단지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두 가지 모험을 감행했다.

첫째로 '반도체의 꽃'이면서 인텔이 거의 독점하던 CPU(컴퓨터중앙연산장치) 사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CPU 설계 능력을 확보하는 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선 파운드리(위탁생산)부터 손을 댔다. 당시 PC 회사이던 DEC는 인텔 CPU보다 연산 속도가 4배 빠른 알파칩을 생산했는데 수요가 적어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필자는 DEC 파머 대표를 찾아가 "삼성이 (위탁)생산해주면 적자 공장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여러 차례 만나니 감복하고 협업에 들어갔다. 이후 알파칩 생산에 필수적인 다층 구리 배선 공정 같은 최첨단 기술을 연구소 인력을 총동원해 개발하는 등 1년간 혼신을 기울인 끝에 알파칩 양산(量産)에 성공했다. 개당 1만달러를 받아 의미 있는 파운드리 사업 물꼬를 텄다. 삼성전자 설계 인력이 DEC에 파견 가면서 설계 기술도 일부 습득할 수 있었다.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이 "삼성이 가장 두렵다"고 말할 정도였다.

둘째는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 통합이었다. 비메모리 사업을 키우려면 파운드리만으로는 안 되고 반도체를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 작동 관련 IP를 골고루 갖추는 게 필수다. 당시 삼성전자 내에는 정보 가전기기 전용 반도체칩을 개발하는 중앙연구소가 있었는데 IP를 많이 축적하고 있었다. 이 IP를 잘 활용하면 기기 사업과 비메모리 사업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중앙연구소장 겸직을 자청했다. 비메모리 부문과 연구소 역량을 접목하니 시너지가 나왔다. 디지털 TV 경쟁력이 살아나는가 하면 시스템 LSI 사업도 적자에서 벗어났다. 이후 IP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전담 개발하는 별도 조직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비메모리 사업이 현재 매출 20조원, 세계 5위로 급성장하는 기틀이 마련됐다.

21세기는 각종 디지털 기능이 통폐합되면서 기기 자체 수도 줄고 제조 업체 수도 감소한다. 스마트폰이 카메라 기능을 강화하면서 카메라 업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과 같다. 반도체도 대형 칩으로 통합되고, 이에 필요한 IP를 확보하지 못한 팹리스는 사라질 운명이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하고 있다.

국내 비메모리 산업을 키우려면 팹리스들이 IP를 확보할 수 있는 협력의 장과 초기 시장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추진하는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 국책 사업에 자동차·통신 회사뿐 아니라 팹리스도 끌어들여 전용 반도체 칩을 공동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특별예산을 편성하고 공공 수요를 보장해주면 도약대가 마련될 수 있다. 알파칩 같은 고성능 인공지능 신경망칩(NPU·Neural Processing Unit) 설계를 국책 과제로 추진, 산학연이 함께 참여해 부족한 시스템 IP를 공동 개발·활용하도록 하면 비메모리 산업 생태계에 활력도 불어넣을 수 있다. 설사 성공하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요소 기술 IP와 시스템 LSI 설계를 위한 컴퓨터 툴(Tool) 같은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고, 필요한 인재도 많이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2/20200722000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