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범한 북한 여성들의 삶을 엿보다…북한판 ‘성의 역사’

Shawn Chase 2020. 7. 16. 01:23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 펴낸 권금상 건강가정지원센터장

권력을 과시하는 김여정과 세련된 리설주. 우리가 떠올리는 북한 여성이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수발하는 모습은 기묘한 낯섦과 함께 실제 북한 여성들의 삶이 어떠한지 생각하게 한다. 사진은 지난달 10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조선사회주의 여성동맹 일꾼들이 대남 항의 집회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규탄하는 모습. 노동신문 | 뉴스1

 

 

탈북 여성 60~70명 인터뷰
공적으론 사회주의 ‘진보’ 표방
‘혁명적 여성’으로 호명하지만
일상에선 가부장적 ‘이중구조’

순결 강요…이혼도 어려워
성 지식은 수치스럽게 생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도자 등극 전 사용한 페이스북 계정이 화제가 됐죠. 당시 ‘마이 페이보릿’에 벤츠, 디즈니랜드, 코냑, 골프를 써놨고, 좋아하는 영화로 맥 라이언의 로맨틱 코미디 <유브 갓 메일>을 꼽았더라고요. 북한 사회에 변화가 있겠구나 예측했었죠.”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서울셀렉션)는 북한의 일상, 그것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는 책이다. 지난 6일 인터뷰에서 권금상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60)은 “섹슈얼리티는 한 사회의 연애와 결혼, 출산, 성 문화의 풍경으로 나타나는데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바탕이 실제로는 권력에 의한 통치 수단으로 구성된다”면서 “ 여성의 ‘성’을 통해 북한 사회와 분단 문화를 살펴봤다”고 말했다.

권씨는 문헌 연구와 탈북 여성 60~70명의 방대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북한판 ‘성의 역사’를 썼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당시 탈북 여성들이 그래요. ‘궁뎅이 좀 만질 수도 있지. 나라 망신스럽게 왜 치부를 드러내나? 대한민국에서 그런 게 제일 이해 안 된다’는 거예요. 충격을 받고 탈북인 친구들한테 ‘당신들의 성 경험이 궁금하다’고 했죠. ‘망측하게 그런 걸 묻느냐’면서 아무도 답하지 않을 거라더군요. 인터뷰와 연구에 꼬박 5년이 걸렸습니다(웃음).”

책에서 정의한 북한 체제는 ‘봉건적 사회주의’다. 공적 영역에선 사회주의 진보성을 표방하며 ‘혁명적 여성’으로 호명하지만, 일상에선 여전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되는 이중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의아한 지점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여성 인권이 높인 편인데 북한은 열악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이 아니죠. 중심에는 ‘김씨 세습’이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근본적 차이 중 하나가 건국신화예요. 남한 ‘단군 신화’는 정신적 측면일 뿐이지만, 북한은 항일투쟁을 토대로 ‘총대 서사’라는 물적 신화를 만들었죠.” 김일성 가문 남자들에게 권총이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혁명사를 김씨 가문에 의한 구국 서사로 재현한다. 여기서 여성은 순종하며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북한 사회의 위계적 여성 담론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만난 권금상씨는 “북한 모습에서 우리 안의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북한 성 문화에선 가부장 사회의 전형성인 ‘이중적 성규범’도 나타난다. 여성들은 순결을 강요당하고, 월경 등 성 지식은 수치스럽게 여겨진다. 여성의 성은 상납 도구가 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데다 위자료 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혼도 어렵다. 반면 남성들은 외도가 용인되며, 성관계를 강압적으로 하고 콘돔 등 피임기구는 거부한다.

그러던 북한 사회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급진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인터뷰하면서 북한 남성의 무능에 놀랐어요. 식량난에도 남자들은 기업소에 가면 강냉이죽을 줬는데 그걸 남겨온 사람이 없다는 거야. 여자들은 장마당으로 뛰어나가 먹고살려고 애쓰는데, 도박이나 외도를 하고. 여성들이 도강해 중국을 오고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인 거죠.” 경제적 위기에서 비롯된 사회적 격변은 성 담론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하고 자자! 하고 자자! 안고 자자! 안고 자자! 꽂고 자자! 꽂고 자자!’ 이렇게 쌍소리를 소리치며 일을 했지 … 여자들이 내게 ‘아저씨 고구마 조심하세요!’라고 말했어.”(인터뷰 사례) 억압적 북한 사회에서 다른 발언과 달리 성적 농담은 처벌받지 않아 ‘육담’이 공공연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엔 성 문화 역시 자유로워지고, 결혼도 출신성분 대신 경제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해간다.

2018년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 3만1872명 중 여성이 2만2776명(72%)이며, 그해 입국한 탈북 여성 비율은 87%에 달했다. “남자들은 자리를 지켜야 해 생계를 짊어진 여성들이 탈북을 많이 했어요. 북한으로 돌아가긴 싫고 중국을 떠돌다가 남한에 정착하는 거죠.” 이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성매매 시장에 유입되기도 한다. “전통적 가족 규범이 남아 있다보니 북한 여성들은 가족들에게 송금 의무를 크게 느껴요. 남한의 노동 강도가 너무 세고, 할 수 있는 직업은 제한적이다보니 성서비스 영역까지 흘러가는 거죠.”

권씨는 남북의 만남이 마냥 평화롭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늘날 탈북인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있는데 여전히 한국 미디어의 시선은 고난의 행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거 같아요. 탈북인들은 왜 ‘삐라 살포’에 나섰을까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봐요. 일방적 시혜나 정치적 관리 대상이 아니라, 다른 이주민들처럼 보편적 복지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책에서 찾은 남북의 접점은 여성들이다. “남한에선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주의적 인식을 확장하고 있고, 북한에선 여성들이 어려움을 딛고 주체적 삶에 나섰잖아요. 남북 모두 여성들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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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152131005&code=960100#csidxe48013add87e35ab235a6f9a9841d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