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논설위원 입력 2020-07-14 03:00수정 2020-07-14 03:00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8일 “예정처 보고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여당 의원들이 공격하고,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분석을 강요하면 국회가 왜 필요하냐”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재정·조세 전문가로 한국조세연구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말 국회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국회예산정책처가 3차 추가경정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나 예정처를 성토한 것. 일각에서는 예정처의 역할과 비중을 줄이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예정처를 길들이려는 행태에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민주당의 이런 전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6년 전인 2004년 11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고서를 낸 것을 트집 잡아 최광 초대 예정처장(73)을 직권면직시켰다.》
―단도직입적으로… 왜 잘린 건가.
“예정처가 행정수도 이전 비용을 노무현 정부 추산보다 과다 추계했다는 것과 내가 외부 정책토론회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국회 고위직을 모두 물갈이하려는데 내가 버티니까 그걸 구실로 강제 면직시켰다.” (예정처는 국가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 운용에 관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기 위해 만든 곳 아닌가.) “그러니 어이가 없다는 거다. 당시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핵심 정책이었고 정부 추산으로만 약 45조 원이 드는 대사업이었다. 이런 국가사업을 예정처가 추계 분석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것도 의뢰가 들어와서 한 거다. 안 하면 직무유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비용을 부풀렸다고 공격했다.”
―비용을 부풀렸다니?
“비용 추계는 여러 가정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럴 경우, 저럴 경우를 고려해 몇 가지 안이 나온다. 정부는 45조6000억 원, 예정처는 52조∼67조 원을 추계했는데 야당인 한나라당은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안으로 정부를 공격했다. 안 그래도 나를 쫓아내고 싶었는데 그걸 빌미 삼은 거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조사소위원회를 만들고 비용 부풀리기와 공문서 위조, 판공비 사용 내역, 채용 비리 여부까지 내 비리를 찾아내려고 탈탈 털었다.” (결과가?) “없다.” (없다니?) “원하는 걸 아무것도 찾지 못하니까 조사보고서도 못 만들고 흐지부지 끝났다.”
―조사위가 근거를 찾지 못했는데 국회의장이 어떻게 면직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나. 사유를 명기해야 하지 않나.
“김원기 의장이 제출한 면직동의안은 ‘예정처장 최광이 국회의 중요한 지원기관의 책임자로서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어 국회법에 의해 운영위원회에 면직동의를 요청한다’고 돼 있다. 왜 적절치 않은지는 내용이 없다. 비리를 찾을 수가 없으니 쓸 수가 없는 거지. 면직을 시키면서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았다.” (사형수도 소명 기회를 주는데 자르면서 해명도 안 들었다는 건가.) “내 죄가 뭔지 명시해야 소명하라고 부를 것 아닌가. 죄를 명시 못 하니 부를 수도 없는 거지. 결국 2004년 11월 18일 열린우리당 단독으로 처리해 강제 면직됐다. 하… 너무 야박했던 게… 다음 날 국회 기자실에서 면직의 부당함을 말하려고 했는데 국회 사무처에서 경위들을 시켜 못 들어가게 막았다, 면직됐다고. 그래서 복도에서 했다. 뭐가 두려워 그렇게까지 막았는지….” (복도에서 뭐라고 했나.) “예정처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공적 기관이지 의장의 사유물이나 특정 정당의 전리품이 아니라고….” (면직이 부당하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하겠다고 말했다. 사유도 밝히지 않고, 소명 기회도 안 준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런데, 그래도 몸담았던 곳인데 수장의 체면은 세워줘야 하지 않나 싶어 안 했다.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당시 국회운영위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11명과 심상정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찬성으로 면직동의안을 통과시켰다.
2004년 11월 국회 기자실 출입을 제지당한 최광 예정처장이 복도에서 면직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처장 재임 시 정책토론회 등에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고 했는데….
“당시 세계 경제 호황으로 다른 나라들은 활력을 띠고 있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 밑을 맴돌고 있었다. 나는 참여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 전환을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열린우리당은 ‘최광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주역인 한나라당 출신 박관용 국회의장이 임명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 비난했다. 난 평소 우리도 미국 의회예산처(CBO) 같은 기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는데 마침 예정처가 생긴다고 하니 공개모집에 지원해 된 것뿐이다. 특정 정당의 추천을 받지도 않았다.”
―최근 민주당 의원들이 3차 추경의 문제점을 지적한 예정처를 성토하고 나섰다.
“예정처가 정부 안에 동의만 하라는 건가? 그럼 예정처는 왜 존재하고, 국회는 뭐 하러 있나. 시오노 나나미의 한 소설(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페카토 모르탈레(peccato mortale)’라는 말이 나온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뜻인데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것과 공직자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가가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회사가 망하고, 국가 예산이 흥청망청 낭비되면 나라가 망한다. 지금 나라가 어떤 꼴인가. 대통령과 장관들은 복지와 코로나19를 이유로 예산 늘리기에 열중하고, 행정부 실무자들은 우선순위나 불요불급을 따지지 않는다. 지자체장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나 기초·광역의원들도 감시는 고사하고 지역구와 이익집단들 요구를 들어주느라 사업비 챙기기에만 혈안이다. 예정처마저 여기에 동조하라고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나. 더욱이 예정처의 지적은 법적 구속력도 없다. 그래서 문제이기는 한데 그런 지적조차도 못 견디겠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4대강 사업에 3조5000억 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예정처가 환경부 예산 1조2873억 원 등 다른 부처에 숨겨진 4대강 예산을 찾아내면서 하루 만에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예정처는 그런 곳이다.
―국회가 스스로 예정처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초기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설립 당시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는 예정처장의 임기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법에서 빠졌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장이 바뀌면 처장도 바뀌는 게 관례처럼 됐다. 역대 처장 8명 중 5명이 국회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인 점도 문제다. 3권 분립이라지만 국회 사무처는 여당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예정처에 사무처 인력이 많아지면 예정처가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를 하기 어렵다. 국회사무처와 예정처는 서로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인적 교류를 금지하는 게 바람직한데 직원들 인사는 물론이고 사무처 입법고시 출신들이 아예 예정처장 자리를 차관 승진 개념으로 여긴다. 초기에 어렵게 뽑은 외부의 유능한 인재들이 대부분 떠난 이유기도 하다.”
―이번 추경도 그렇고 정부 예산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당신은 예산 규모 확대가 개인의 자유를 축소시킨다고 주장하는데….
“흔히 예산안 논의의 초점을 적자냐 흑자냐, 또는 급증하는 국가채무에 맞추는데 더 중요한 것은 예산의 규모, 우선순위, 낭비 여부다. 그리고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산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자유는 반비례로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건가.) “예산은 세금 아닌가. 예산 규모가 커진다는 건 세금을 더 많이 걷는다는 뜻이다. 세금 증대분만큼 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몫이 제한되는 것이다. 또 예산을 나눠주는 쪽의 힘이 커지고, 수혜를 받는 국민이 국가에 종속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가의 힘이 커질수록 국민의 자유가 줄 수밖에 없지 않나. 민주화의 길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증대해온 길이다. 그런데 알든 모르든 민주화 세력이라는 집권당이 그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안타깝다.”
―국가 예산을 제대로 감시하는 게 민주화운동의 하나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래서 예산 감시가 그렇게 중요한데…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의 본질과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태반이다. 지역구 사업비 밀어 넣는 것이 예산 편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여야는 행정부 견제보다 자기들끼리 견제가 우선이고, 특히 여당은 국회 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부를 감시하기보다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분석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추경 때도 보지 않았나.”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의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운용과 관련된 사항을 연구 분석·평가하고 의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3월 설립된 국회 내 기관. 국회의장 소속이지만 직무에 있어서는 법으로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연구인력 등 현재 13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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