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토요동물원]번식만큼이나 가족계획도 신경써야 하는 동물원

Shawn Chase 2020. 6. 13. 21:11

 


입력 2020.06.13 16:46

번식 왕성한 일부 종에 대해선 산아제한 조치
사자는 정관수술, 코요테는 거세, 바바리양은 암수분리
앵여개체 살처분하는 겨우도
동물 가족계획 목표는 '살의 질 보장'

페커리라는 짐승이 있다. 코는 툭 튀어나왔고, 털은 뻣뻣하며, 가냘픈 다리엔 굽이 졌다. 멧돼지와 빼닮은 생김새에 아마존 정글 등 남미 지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 ‘남미 멧돼지’라고도 불린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페커리 열일곱 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의 삶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왕성한 번식력에 고민해온 동물원 측이 최근 가족 계획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실행 방법은 간단하다.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살도록 성별로 분리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취가 동원된다. 한눈에 암수 구분이 쉽지 않아 우선 직접 성감별을 해야 하는데, 한국 멧돼지 못지 않게 날래고 드세다보니 생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취를 해 성별을 분간하고 개체를 인식할 수 있는 칩도 이식하고, 몸상태가 어떤지 건강종합검진도 받게 된다.

/Josh More/Flickr 남미의 멧돼지라고 불리는 목도리페커리. 최근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중인 17마리가 곧 암수격리될 예정이다.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동물원에서도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일상이다. 종(種)의 보전과 번식에도 힘쓰고 병든 동물들을 돌보는 한편, 동물들이 좀 더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한다. 일부 종에 대해 종종 실시하는 가족계획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물리적으로 공간 확장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무한 번식은 결국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계획 방법은 동물의 습성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크게 네 가지다. 첫번째가 사람도 하는 정관수술이다. 대표적인 정관시술 피시술자가 사자다. 마취를 한 다음 신속히 성기 내에서 정자의 이동 통로가 되는 관을 끊어 임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마취 지속 시간은 1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신속히 수술을 마친 뒤 회복을 위해 각성제를 투여한다. 사슴 역시 정관수술을 통해 번식을 제한한다.

Gabriel White/Flickr '라이온킹'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위풍당당한 사자 커플. 동물원에서는 종종 산아제한을 위해 수컷을 마취시켜 정관시술을 한다.


정관수술을 받은 수컷은 대(代)는 끊기지만, 남성 호르몬은 정상 분비되기 때문에 시술 전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짝짓기가 가능하다. 이들에게 굳이 사람처럼 정관수술을 해야 하는 까닭이 있다. 남성호르몬 분비로 인한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사자의 경우 숫사자의 상징인 갈기가 후두둑 빠지면서 ‘대머리 사자’가 돼버린다. 사람으로 치면 중증 탈모증에 걸린다.

사람의 경우 머리숱이 없는 남성은 스태미너가 강하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자의 경우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애니메이션·뮤지컬·실사영화로 유명한 ‘라이온킹’에서 덩치는 심바(주인공 숫사자)인데 헤어스타일은 날라(심바의 연인)와 같은 꼴이 된다. 서열 싸움과 짝짓기가 활발한 사자무리에서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으며, 갈기가 덥수룩한 위풍당당한 백수의 왕을 기대하며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도 실망감을 안길 수도 있다. 사자에게 갈기가 남성의 상징이라면, 사슴에겐 뿔이 그렇다. 특히 수컷간 세력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번식 시즌에 뿔은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Credit - M. Rehemtulla/QUOI Media Group 늑대와 닮은 개과 맹수 코요테. 동물원에서는 종종 산아제한을 위해 수컷이 거세되기도 한다.


똑같이 마취를 통해 시술하지만, 조금 거친 방법도 있다. 정자를 생성하는 고환을 완전히 적출하는 것, 바로 거세다. 고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은 간신들 사이에서 황제에게 소신 발언을 했다가 궁형(宮刑·거세하는 형벌)을 받고, 시련을 극복해가며 걸작 사기(史記)를 집필한다. 하지만 동물원에는 사마천처럼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지도 않았는데도, 그저 ‘남자라는 이유’로 유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처지의 짐승이 있다. 북미가 원산지인 개과 동물 코요테다.

사자와 달리 코요테의 경우 우선 거세로 인해 남성호르몬이 제거되어도 외모에 큰 변화가 없다. 이곳저곳에 과도하게 영역을 표시하거나 공격성을 띠는 ‘사내다운 행동’도 잦아들면서 차분해진다. 거세의 효과가 단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발현되는 것도 코요테가 보이는 특징이다. 고환이 적출돼 남성성을 잃은 뒤에도 한 달 정도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암컷을 뒤쫓아가 교미를 시도하는 등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원산지인 스위스의 계곡이름을 따 이름 붙인 자넨염소와 일부 원숭이들에 대해서도 일부 수컷을 거세하는 방법으로 산아제한 조치를 취한다.

/서울대공원 제공 큰 뿔이 인상적인 바바리양들이 살고 있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우리. 산아제한을 위해 암컷 31마리와 수컷 24마리가 분리돼 살고 있다.


정관수술이나 고환 적출처럼 몸에 칼을 들이대지 않고도 가족계획을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성별 분리다. 성별 분리가 예정된 페커리에 앞서 이미 실행중인 사례가 있다. 암컷 31마리, 수컷 24마리가 철저하게 격리돼 사육중인 바바리양이다. 대개 동물들의 몸은 번식철이 되면 성적 욕구가 극대화되록 설계돼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바바리양 우리에서 욕구불만을 이겨내지 못한 수컷이 다른 약하고 힘없는 수컷을 상대로 몹쓸 짓을 시도하는 등 불상사가 일어나는게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이에 대해 바바리양을 담당하는 지인환 사육사는 “분리에 따른 욕구불만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상 행동이나 격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먹이를 다양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욕구불만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계획의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는 잉여개체의 살(殺)처분이다. 해외에선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2014년 덴마크의 동물원에서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나 잉여개체로 분류된 기린을 살처분한 뒤 사체를 조각내 사자우리에 던져주는 일체의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해 큰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

국내에선 서울대공원에서 작년 9월 현행법이 규정한 필수 사육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알에서 부화중이던 그물무늬왕뱀 20여마리 중 2마리만 넘겨놓고 냉동사시킨 사례가 있다. 이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꽁꽁 얼려버리는 방법을 안락사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익명을 요구한 파충류 전문가는 “변온동물인 파충류는 포유동물이나 새보다 신진대사가 느리기 때문에 척수신경을 끊거나 약물을 주입하는 안락사가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며 “급속냉동사시킨 건 뱀들이 오히려 고통없이 생을 마감하는데 제법 도움이 됐기 때문에 안락사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안락사와 관련한 조항이 매뉴얼에 있지만, 동물 권익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어 애초 이런 경우가 일어나지 않게끔 한다는 것이 운영 원칙”이라고 했다. 산천어 축제가 동물 학대인지를 검찰이 판단해야 할 정도로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 동물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동물원 관계자들의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3/20200613003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