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시론] 돈 풀어도 회복되지 않는 경제의 탈출구

Shawn Chase 2020. 6. 8. 23:50

 

조선일보 

  • 변양호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입력 2020.06.08 03:20

변양호 前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코로나 사태는 일단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경제는 어떻게 되나? 정부가 계속 돈을 풀 수도 없고 돈을 푼다고 시드는 경제가 회복되지도 않는다. 우리 경제가 시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인 중국보다도 경제적으로 자유가 없다. 자유화(규제 완화)가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타다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득권 때문이다. 기득권을 잃을 경우 생활이 어려워질 분이 많다. 그분들에 대한 배려 없이 규제 완화가 어렵다. 둘째는 관료의 보신주의 때문이다. 규제를 완화하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고 사고가 터질 수 있다. 관료 입장에서는 위험한 규제 완화보다 그냥 못 하게 하는 게 안전하다. 셋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 수준이 높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데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들이대면 정부가 추진하기 어렵다.

기득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 생활은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게 있어야 기득권 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 방법은 전 국민을 종합과세하고 부(負)의 소득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한 해 동안 번 소득을 더해 과세를 하는데 소득이 많은 사람은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적게 번 사람에게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기본 생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 번 사람에게는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방법이다. 소득이 아주 적으면 더 많이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다. 재원이 많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의 제도를 흡수·폐지하여 재원을 조달하고 필요 시 부가세율을 높여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실업보험 등 기존 급여성 복지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효과성이 떨어진 정부의 각종 경제개발 보조금을 대폭 줄여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부의 소득세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이 국민 입장에서 더 유리하고, 누구나 어려움을 당할 때 쉽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관료의 보신주의나 사회의 과도한 가치 수준 요구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준 국가를 정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공공성과 환경, 인권, 안전 등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나라 몇 개를 기준 국가로 정하고 (예컨대 스웨덴) 그 나라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이다. 민간이 기준 국가의 상태를 증명하면 곧바로 규제 완화를 해주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각 행정 부처 평가도 기준 국가와의 규제 격차 축소 정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감사원도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공무원을 감사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준 국가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관료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시민단체 등 사회도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노동 유연성도 기준 국가 수준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해고가 어려우면 고용하기 힘들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자동차를 빨리 달릴 수 없는 것과 같다. 더욱이 임금 수준에 대한 규제가 심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는 엄청 작은데 기업들이 느끼는 자유는 더 작다. 반기업 정서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은 경제적 순기능에도 불신의 대상이다. 그런데 반기업 정서는 기업이 초래한 바가 크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대주주와 그 가족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운영해 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주주의 지분은 상속·증여될 수 있지만 경영권 승계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적어도 상장 기업에서는 투명한 최고경영자 선임 절차를 도입·운영하여야 한다. 대주주나 그 가족도 능력이 있으면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지만 투명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채용이나 승진도 투명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대주주 가족이라고 해서 마구 채용되고 고속으로 승진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대주주의 지위와 역할이 올바로 재정립되기 시작하면 반기업 정서는 자연적으로 수그러질 것이다.

우리 국민의 잠재력은 크다. 사회적 타협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게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사회안전망을 얻고 대주주 지위를 재정립한다는 전제 아래 기준 국가 수준의 규제 완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재계는 대주주의 지위를 재정립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한다. 정부는 과도한 국가 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기준 국가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면서 부의 소득세를 근간으로 하는 복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전 국민이 나누어 가지는 기본소득은 더 이상 안 된다. 돈이 있으면 약자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7/20200607022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