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자고 나니 선진국' 맞나

Shawn Chase 2020. 6. 13. 21:14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20.06.13 03:20

동선 추적·사생활 정보 공유… 과거 '경찰국가' 그림자 어른거려
개인의 자유, 인권 보호 누군가는 외치는 것이 선진 민주주의국가의 저력
진짜 선진국 되기 위해선 소홀했던 가치 되새겨 봐야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온 천지가 코로나 팬데믹의 늪에 빠져 있는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등극했다는 자부심에 들떠 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이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국가 체면을 형편없이 구긴 반면,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은 세계적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각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이른바 '코로나 러브콜'만 해도 서른 통이 넘었다고 하지 않는가? 차제에 선진국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호기까지 부릴 정도다.

우리도 초기에는 정부 대응이 분명히 실패했다. 하지만 전 세계 코로나 관련 사망자 40여만명 가운데 절반이 선진국에서 집중 발생하는 사이, 우리는 이른바 K방역 체제를 가동하면서 통제 관리역량을 재빨리 확보했다. 물론 아직 도처에 불씨가 남아 있어 불안과 공포는 여전하다. 하지만 환자가 병원에서 대기하다 죽거나, 고독사가 속출하거나, 냉동 트럭에 시신을 대량 보관하는 따위의 충격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써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선진국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일까.

'자고 나니 선진국'이라니, 그런 반년짜리 세계사를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코로나에 맞서는 과정에서 행여 소홀했을 수도 있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지금이라도 차분히 복기(復碁)해 본 연후의 일이다. 이럴 때 강압적 방역, 대규모 진단 검사, 감염자 동선 및 이동수단 추적, 사생활 정보의 의료진·정부·지자체 공유, 확진자 강제 격리 및 이동 제한 등은 민주국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는 '국민 총화'를 앞세웠던 지난날 경찰국가나 행정국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론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인 것은 맞는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누군가는 프라이버시 보장과 인권 보호를 외치는 것이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전통이자 저력이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봉쇄 조치를 취하자 이에 반발하는 집회가 유럽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나라들일수록 더 그랬다.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봉쇄 반대 시위대가 총기를 들고 의사당을 점거하기도 하고, 위스콘신주에서는 주지사가 내린 자택 대기명령을 대법원이 뒤집기도 했다. 우리가 마스크 착용의 공적 의무화를 당연시하는 것에 반해 서양은 이를 문화적으로 거부하는 분위기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당당한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 그렇게 많은 확진자와 그처럼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자유로운 영혼과 인권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없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일종의 종균(種菌)이기 때문이다. 천만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희망의 씨앗이 전멸하지는 않았다. 뜻밖에도(?) 그것은 코로나 사태를 가장 심하게 겪었던 대구, '보수의 심장'으로 여겨지는 대구에서였다. 대구시가 행정명령을 통해 공공시설 및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를 발표하자 시민단체 일부가 방역 권력의 과잉 행사라며 반발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런 희망의 씨앗이 최근 다시 나타났다는 점이다. 코로나 관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말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난 총선 결과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물론 이런 식의 현금 살포는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 전날 대통령이 국회 통과를 기다릴 것 없이 신청부터 받기 시작하라고 직접 지시한 경우는 우리밖에 없다. 주는 쪽이나 받는 쪽 공히 선거와 무관하다고 입을 닦는 한, 사실상 이는 정치적 '완전범죄'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과는 별개로 소득 상위 30% 국민에게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 정부의 꼼수에는 뼈아픈 일격이 가해졌다. 현재까지 전체 가구의 99.5% 이상이 수령을 완료했다는 사실은, 기부를 하든 소비를 하든, 내가 직접 알아서 한다는 주권자의 자유의지를 웅변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아직까지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은 국민도 극소수 남아 있다. 이들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인 나는 미(未)수령자가 아닌 비(非)수령자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다. '수령과 기부' 이외에 제3의 선택지가 없는 전체주의적 발상에 나의 천부적 자기결정권을 양도할 생각은 없다. '수령하지 않지만 기부도 아니다'란 일종의 '시민불복종'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엔 목숨이 중요하지만 멀리 보면 자유민주주의의 종균을 지키는 일도 소중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 위대한 민주시민이 아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2/20200612044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