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中 "최초로 400만 관객 기록"
입력 : 2015.07.11 11:31 | 수정 : 2015.07.11 12:00
제2연평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 18일만에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처음으로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연평해전 배급사 뉴(NEW)는 “11일 오전 7시 기준 '연평해전'의 누적 관객 수가 405만7302명에 이르러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초로 400만 관객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올해 최다 관객을 모은 영화는 지난 2월 개봉한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387만2015명)’이었다.
연평해전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서해 NLL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던 군인과 그들의 연인, 가족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故윤영하 소령이 못 이룬 꿈, 후배들이 이뤄주길"
입력 : 2015.07.11 03:00
[영화 '연평해전' 김학순 감독, 尹소령 母校 송도高서 강연]
학생·교직원, 2년前엔 모금… 영화 제작비로 6168만원 내
강연뒤 박수·환호 쏟아져 "군대에 대한 안 좋은 생각, 이번 기회에 바뀌었다"
"윤 소령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부하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 해군사관학교 동기들도 모두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김 감독은 준비해 온 원고를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미국은 애국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많이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조국은 적대시할 존재가 아니라 고맙고 지켜나가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우리를 대신해 싸우다 숨졌고, 유족들에게 그들은 누구보다도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등 뒤로 땀이 흘러내리는 더운 날씨에 몇몇은 자세가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손부채를 부쳐가면서 끝까지 김 감독 말에 귀 기울였다.
"이 영화를 20~30대 젊은 층이 많이 보고, SNS에서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영화에 대한 이념적 매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볼 때 대한민국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느낍니다. 이제 변화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윤 소령이 못 이룬 것을 후배 여러분들이 꼭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30여분에 걸친 김 감독의 강연이 끝나자 다시 큰 박수와 환호가 체육관을 채웠다. 윤승현(17)군은 "그동안 군대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달라졌다"고 했다. 김대민(17)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우리는 늘 연평해전이나 국가관 같은 것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날 강연에 앞서 손성현 송도중·고교 총동창회장은 "이 영화를 통해 송도고 위상을 높이고 잊힐 뻔했던 일을 조명해 줬다"며 김 감독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또 지난달 28일 1차 단체 관람에 참가하지 못한 이 학교 1~2학년생 600여명은 강연이 끝난 뒤 연평해전 단체 관람에 나섰다. 2013년 제작비 성금 모금에 참가했던 3학년 학생들에게는 각자 편할 때 가볼 수 있도록 영화사에서 개별 관람권을 나눠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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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명량>이 생각났다. 두 영화 모두 해전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두 영화가 해전을 다루는 방식이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두 영화를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두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전투가 아니라 죽음이다. 승패와 관계없이 두 영화는 죽음을 배경으로 하면서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명량>의 해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상세히 알지는 못하는 명량해전, 그 유명한, 12척의 배로 330척의 적선을 무찌른 이야기를 영화로 재현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명량>의 분위기는 밝지 않다. 어떻게 보더라도 승리한,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승리해 세계 해전사에 기록된 전투 분위기가 아니다.
영화 속 이순신은 단 한 번도 웃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진 고문으로 육신과 정신이 정상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자신도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후퇴하라는 조정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배수지진을 치고 나가 싸워야 하는지 갈등하지만, 고작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하들의 목을 베면서 군기를 다잡고 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군기를 그렇게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미치광이의 모습으로 비친 그의 꿈 장면과 상처로 얼룩진 몸 상태는 분명 장수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들에게도 그는 전략과 전술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는 시작되는데, 그 전투는 전체적인 상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영화의 많은 부분을 투여한 이 전투에서, 부하도 그를 믿지 못하고, 백성도 두려워하는 바로 그 전투에서 그는 승리하지만, 여전히 그는 승리자의 눈빛이 아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두렵게 만들었던 것일까?
▲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 ||
<연평해전>은 처음부터 패배한 또는 패배할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이 패배한 전투를 왜 영화로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을 굳이 던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영화의 결말을 보면, 누가 승리했고 누가 패배했는지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단지 6명의 병사가 전사했다는 것을 실제 다큐멘터리를 삽입해 보여주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 전사를 강조할 뿐 전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사한 병사들의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연평해전>이 취하는 전략은 가족주의를 동원하는 것이다. 강직한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뒤이어 해군 장교가 된 아들, 누구보다 자상하고 다정한 신혼의 남편, 말 못하는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착실하고 성실한 아들. 이들이 한 가족이 되어(그야말로 한 배를 타고) 살아가면서 아름답고 믿음직한 의사 가족을 만들지만, 그들은 전투에서 죽고 만다. 이때 영화는 전투 장면을 길게 보여주는데, 통상적인 전투 장면처럼 적이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하는지 보여주지 않고 적의 총격에 당하기만 하는 아군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극단적 분노와 슬픔을 만들어낸다.
▲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
▲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
길게 이어지는 전투 장면은 <명량>과 비슷하지만, 거기에는 함께 하는 민중도 없고 지휘관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실존적 고뇌와 고민이 없다. <연평해전>의 병사들이 죽어야만 영화가 살아난다. 예정된 수순처럼 병사들은 죽지만 그 정서만 강하게 작동할 때 영화가 오히려 죽어버린다. 어떻게 해야 영화와 병사를 모두 살릴 수 있을까? <연평해전>은 이 길을 가지 않았다.
두 영화 모두 전투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내세웠지만(그래서 실제 전투 장면을 영화의 길고 중요한 부분으로 채웠지만) 그 전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대신 관객들에게 죽음을 통해 다른 정서를 선물했다. 그래서 승리한 전투이건 패배한 전투이건 중요하지 않고 그 전투에서 죽음을 견디어 냈거나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상품화했고, 대한민국의 많은 관객들은 이 부름에 기꺼이 호응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영화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존재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그들은 왜 싸웠던 것일까? 임금이 신뢰하지 않는 장수, 국가가 외면했던 전투.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분노를 자아내게 된다. 관객들이 뱉어내는 분노가 누구에게 향하는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명량>보다는 <연평해전>이 직접적으로, 현실적으로 분노의 대상을 겨루고 있다. 아무리 감독이 단지 해전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고 하더라도 관객들과 만나는 순간, 영화는 다른 장에 들어간다. <조선일보>가 연일 이 영화를 광고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 ||
이런 생각이 든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금으로부터 1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그때 우리는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있었던가?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해무>가 극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연평해전>처럼. 흥미롭게도 이 영화들은 모두 바다와 배, 죽음을 다루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이 이상할 정도의 우연의 일치.
<해적>은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들이 큰 나라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해적과 대비시켜 웃음과 통쾌함을 주었고, <해무>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밀항하던 이들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정신병적 집착과 집단 살해로 그리면서 끔찍한 현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왜 우리는 바다에서 죽어간 이야기를 해야 했고, 왜 그런 영화를 관객들은 집단적으로 보았던 것일까?
혹시 작년에 흥행한 세 편의 영화는 어떻게든 바다에 가라앉은 배와 죽음, 애도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적으니 결국 <다이빙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려고 했던 다큐, 지금까지도 숱한 논란을 낳고 있는 영화, 개봉하는 순간 현실과 갈등하며 묻히길 강요받았던 영화. 어쩌면 <다이빙벨>은 인양하지 못하는 세월호를 닮았다. 언제쯤 우리는 이 죽음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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