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제목을 잘 뽑는 3가지 방법
[J플러스] 입력 2015-07-14 23:36:05
제목을 잘 뽑는 3가지 방법
나는 기사 앞부분 몇 줄만 읽어보면 대충 제목이 떠오른다.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기사를 고르고, 무게를 재고, 지면에 배치하고, 제목을 붙여 독자들에게 신문밥상을 차려내는 일을 이십년 넘게 해왔으니 말이다. 제목은 독자를 지면으로 끌어들이는 관문이다. 그런데 신문 제목 조건 중의 하나는 품위다. 무거우면 안 되고 가벼워서도 안 된다.인터넷에 흔한 낚시제목처럼 튀는 용어들로 떡밥을 던지면 반응이야 금세 오겠지만 지면은 삼류 찌라시가 되어버린다.
그간의 메모를 잠깐 들춰봤다. 내가 제목을 붙이고 고치고 하는 기준을 보니 의외로 간단하다.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어려워 보이겠지만 사실 누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신문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작위로 뽑은 사례를 보자. 여기에 든 사례는 모두 내가 주무른 기사들이다.
(전)은 before, (후)는 after.
1.무조건 간결
짧은 제목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9자를 넘으면 제목이 아니라는 불문율도 있었다. 복잡한 상황을 단어 몇 개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제목이 길면 호흡이 늘어지고 맥 빠진다. 빼먹으면 안 되는 중요한 팩트나 설명하고 싶은 내용은 부제목으로 작게 처리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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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세리머니의 규정이 엄격해졌다. 부산의 임상협은 머리에 부적을 붙이다가 경고를 받고, 전북 이승기는 웃옷을 머리에 뒤집어쓰다가 경고를 받았다.
(전) 세리머니 하다 에구머니
(후) 세리머니, 에구머니
줄일수록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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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 공포가 커지고, 유가는 뚝뚝 떨어지고, 기업 실적마저 시원찮자 코스피 1900선이 무너졌다.
(전) '오일 쇼크' 엎친데 그렉시트 우려 덮쳐 파르르 떤 한국 증시
(후) 파르르… 증시가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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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이 세액공제로 바뀌며 봉급자 1800만 명이 부글부글 끓었다. 토해내야 할 돈이 정부가 예상치의 2배였고, 아이가 많을수록 액수가 늘어나는 모순이 생겼다.
(전) 으악! 연말정산
(후) 연말정산 '13월의 울화통'
중앙일보가 처음 ‘13월의 울화통’이란 말을 만들었고, 다른 신문방송도 이 말을 인용하며 따라왔다. 짜릿한 일이다.
2. 어쨌든 쉽게
쉬워야 제목이다. 어렵거나 딱딱하거나 근엄하면 독자들은 바로 돌아선다. 하나마나한 단어들을 늘어놓아도 마찬가지다. 친절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면 상대방도 즐겁다. 남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혼자 떠들면 그런 꼴불견이 없다. 꼰대들의 특징이 혼자 떠들기 아닌가. 초등학교 6학년생이 봐도 바로 알 수 있어야 좋은 제목이다. 날짜 숫자 사람이름 지명처럼 시공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단어나 고유명사가 들어가면 사람들의 반응은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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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리 동네는 왜 비싼 거야?
(후) 떴어요, 음성 상평주유소
국제 유가가 떨어지며 국내 주유소들도 가격인하 경쟁이 불붙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음성에 있는 이 주유소가 1L당 1385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쌌다. 주유소 이름을 앞세우니 기사가 생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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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사람들 휴가 어디로 갈 거냐고 빅 데이터에게 물었다. 저렴한 해외여행 가느니 국내 여행을 가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전) 불황에도 힐링 보다 체험형 선호… 제주는 휴양, 부산은 먹거리 인기
(후) 제주엔 쉬러, 부산엔 먹으러, 강원도엔 캠핑하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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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중개수수료가 확 줄어들었다. 85㎡ 이하는 사고팔 때 0.5%, 전·월세는 0.4%가 됐다.
(전) 오피스텔 중개 수수료 절반으로 준다
(후) 오피스텔 중개수수료, 내일부터 절반으로
내일이라는 시점이 들어가니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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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서 엄청 가벼운 노트북을 내놨다.
(전) 커피 두잔 무게 국내 최경량 노트북
(후) 커피 두잔 무게 980g짜리 노트북
커피 한 잔이 490g 정도라는 걸 기사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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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이 100년이 됐다. 휙휙 변하는 세상에서 한 세기를 넘어왔다는 사실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다. 이 호텔 매뉴얼이 재미있다. 20가지 청소도구를 갖춘 5분대기조가 오와 열을 맞춰 비품을 정리하고, 청소를 마치면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온다.
(전) 담배 냄새 음이온 살균…청소팀은 '5분 대기'
(후) 객실 메모장 위치는 전화기서 1cm…
객실의 광경을 떠올리며 단 제목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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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국 표준 공시지가를 공개했다. 전국이 평균 4.14% 올랐다. 7년 만에 최대치였다. 세종시가 15.5% 올라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가장 비싼 땅은 1평에 2억6631만원이었다.
(전) 3.3㎡에 2억6631만원… 명동 금싸라기 땅
(후) 3.3㎡ 명동 땅이 아파트 한 채 값
명동 네이처 리퍼블릭이 있는 자리인데 12년째 1위다. 땅에 관심이 있으면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하니 훨씬 현장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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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은 매년 선천성 대사 질환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식사자리에 초청한다. 모유를 먹지 못하는 아기를 위한 특별 분유도 만든다.
(전) 매일유업, 선천성 질환자들 초청... 특수 분유 만들어 원가에 납품도
(후) 고기 먹으면 탈나는 열네 살 현지, 특별 외식하던 날
기업의 행사를 단순 소개하면 뻣뻣하고 속보이지만, 제목에 스토리를 담으면 감흥이 색다르다. 기업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행사일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이런 의미 있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면 사회는 그만큼 따뜻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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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말은 풀어써야 한다. 나만 알고 상대는 모르는 말은 일방 전달일 뿐이다.
(전) 무죄 구형 못하니… 검찰, 잇단 ‘적의조치’
<適宜措置·법에 따라 적절히 선고 부탁>
(후) "적절히 선고해 주시길…" 법정서 구형 않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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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들어도, 장마가 길어도 채소 값은 팍팍 뛴다.
(전) 기나긴 장마 탓…채소 장바구니 많게는 4배 홀쭉
(후) 750원 하던 애호박, 장마 지나니 2350원
3. 심각하면 지는 거야
신문 기사는 대개 차분하다. 때로는 심각하기도 한데 제목마저 그러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건조하고 맛이 없는 기사라도 적당한 마사지를 통해 읽게끔 만드는 게 능력이다. 작은 유머가 어색한 상황을 바꿔준다. 적절한 유머는, 지면의 윤활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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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을 데려오며 분위기를 바꾼 한국 축구는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했다. 8만 관중이 힘인 홈팀 호주와 일전이지만 팬들의 기대는 대단했다. 경기는 저녁 6시에 시작이었다.
(전) 그대여, 오늘 하루만 더 웃자
(후) 치맥 시켜놨어, 골만 넣어줘
조국과 민족이 어떻고, 애국심이 어떻고 떠들면 썰렁해지고 흥이 깨진다. 신나면 그만이다. 심각하면 지는 거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말들 앞에 사람들은 즐겁다. 이 제목 보고 누가 진짜 집에서 치맥시켜 먹었다는 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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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급술의 대명사인 마오타이가 부패척결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치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찾는 손님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1%, 16년 만에 최저 매출 성장이다.
(전) 중국 반부패 투쟁에 … 밋밋해진 마오타이 매출
(후) 정신 번쩍 든 마오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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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 마이너스시대이니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곳을 찾는 돈이 떠돈다. 금융사들은 그런 고객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상품을 내놓았다.
(전) 떠도는 돈 750조…눈길 잡는 고금리 상품
(후) 떠도는 돈 750조…날 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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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 범칙금을 높였다. 장난전화하면 8만원, 무임승차 걸리면 5만원이다. 암표 팔면 16만원이니 걸리면 지갑 탈탈 털리게 생겼다.
(전) 스토킹 하셨나요, 8만원 내시죠
(후) 싫다는데 졸졸 따라다니면,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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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에서 기름 절도범 일당 13명이 잡혔다. 송유관 근처의 주유소를 산 뒤 3개월간 밤마다 삽과 곡괭이로 땅굴을 팠다. 굴에 레일을 깔고 공기정화기도 설치했다.
(전) “송유관 기름 털자” 50m 땅굴 파 73억대 훔쳐…영화 뺨친 도둑들
(후) 50m 땅굴 파 송유관에 '빨대' 꽂고, 73억 어치 빼낸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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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국내 경기는 무료였다. 인기가 수직상승하자 돈 주고도 입장권을 살 수 없게 됐다.
(전) 김연아 보고 싶어요? 보고 싶으면 20만원
(후) 김연아 뜬다고… 무료→유료→암표
기호는 말보다 전달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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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스타 비제이 싱의 약물복용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은 모르고 먹었다지만 동료들이 등을 돌리고 언론이 너도나도 보도하자 궁지에 몰렸다.
(전) 그린마저 약에 취했나
(후) 비제이 싱, 약 먹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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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떠난 피켜스케이팅판은 춘추전국이 됐다.
(전) 세계선수권 ‘미녀들의 전쟁’
(후) 연아 없는 새, 어머 얘들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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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실내육상경기장을 짓고 보니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준비운동 구역을 설계를 잘못한 건데 다 짓도록 아무도 몰랐다. 국제기준에 미달에 국제경기를 치를 수 없게 됐다.
(전) 건설사·대구시 어이없는 실수 …730억 돔구장 개장 못 해
(후) 다 짓고 보니 곡선주로가 없네…어이없는 대구돔육상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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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베일이 토드넘서 레알로 팀을 옮겼다. 호날두 기록을 넘어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전) 입 떡 벌어졌네, 몸값 1477억원 베일
(후) 1477억원…베일 벗은 베일 몸값
신문 제목은 이렇게 다듬어진다. 하룻밤에 서너 번을 바꾸기도 한다. 아침에 독자들이 받아보는 제목은 지난 밤 내내 많은 ‘선수’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안충기 섹션&디자인부장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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