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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망명할 때 집사람은 빵집 하고, 난 세탁소 할 계획이었지만…"

Shawn Chase 2020. 2. 24. 11:04




입력 2020.02.24 03:13

[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공사]

관중석서 '골인' 환호하는 동안 심판이 정정 휘슬 부는 것과 같아
여당에서는 날 대놓고 공격했다

앞으로 입 다물고 살아야 하나 심적 갈등 겪다가 직장 그만둬…
내 목청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가 '보통 인물'은 아닌 줄 알았지만 총선에 출마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사복경찰 여섯 명이 지키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2016년 여름 한국 망명을 결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내 스타일대로 길을 헤쳐나가려고 한다."

―지역구 출마가 왜 당신의 길인가?

"북한에서 선거라고 하면 줄 서서 들어가 찬성함에 표를 넣고 나오는 행사다. 북한 엘리트들조차 민주주의 선거를 어떻게 치르는지 전혀 모른다. 내가 출마하면 북한 정권 지도부와 해외에 나와 있는 북 외교관, 유학생, 근로자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선거 과정을 유튜브에 다 올릴 계획이다.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탈북민이 한국에서 차별받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도 줄 것이다."

―작년 11월 북한 선원들의 강제 송환을 보고 출마 결심을 했다고 들었다.

"그 사건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망명해오자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일자리를 줬다. 봉급도 충분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몇 개월 지났을 때다. 한국 정부에서 '김정은이 비핵화를 결단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내 마음에 혼란을 불러왔다. '2017년까지 핵무기를 완성하고 그 뒤 주변 국가로부터 핵보유를 인정받는다'는 북한의 핵전략은 내가 망명하기 전에 이미 수립돼 있었다. 핵무기를 완성하고서 '비핵화 결단'이라는 쇼를 하는 것인데, 김정은이 마치 평화의 사도처럼 떠받들어졌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사직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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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공사는 “세습 독재라고 하지만 김정은 집권 뒤 획기적 변화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2018년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고 온 정의용 안보실장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그걸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고, '봄이 온다'는 4·27 판문점 회담까지 성사됐는데?

"북한 비핵화를 위해 왕래하고 노력하겠다면 몰라도,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으니 여기에 맞춰가자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5월 14일 나는 '태영호 증언-3층 서기실의 암호'의 출간에 맞춰 국회에서 이런 내용의 강연을 했다. 북한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온 나라가 금방 통일될 것처럼 평화 무드로 들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북 관계에 차질을 초래했다.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어서 더욱 부담이 됐을 텐데?

"관중석에서 '골인'이라며 환호하고 있는 동안 심판이 정정 휘슬을 부는 것과 같았다. 그 직후 여당에서는 '평화에 재 뿌리지 말라''태 공사가 뭘 아느냐'며 나를 대놓고 공격했다."

―이 때문에 열흘 뒤 국가전략연구원을 사직한 것인가?

"국가전략연구원에서는 내게 직접 말은 안 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나로서는 정부의 보호도 받아야 하고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입 다물고 살아야 하나. 경제 정책은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손을 놓아버리면 수습이 어렵다. 마치 암(癌)과 같아 뒤늦게 발견하고 조치할 때면 목숨이 위험하다. 심적 갈등을 겪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내 목청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망명할 때는 생계 대책으로 빵가게를 하려고 제빵 관련 책을 많이 가져왔다고 들었다.

"망명하기 전 통일부나 국정원 홈페이지를 검색해봤다. 북한 엘리트가 특권을 포기하고 들어왔다고 해서 다른 혜택이 없었다. 정부 정착금이 전부였다.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자력갱생'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았다. 다른 탈북민들이 올린 글을 봐도 한국 사회가 배타적으로 비쳤다. 미리 생계 대책을 세워야겠구나 마음먹었다. 제빵 관련 책을 많이 사 들고 왔다."

―망명한 북한 외교관의 짐에서 제빵 관련 책들이 나왔으니,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이상하게 여겼겠는데?

"짐 속의 제빵 관련 책들을 보고는 난수표용(用) 책인지 의심했던 것 같다. 내가 '집사람은 빵집을 하고 나는 미국 이민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세탁소를 할 생각이었다'고 답변하자, 국정원 직원이 웃으며 '국가에 더 필요한 일을 해야지. 대한민국 시스템은 북한 엘리트를 그냥 알아서 살라고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 국가전략연구원에 보내준 거다."

―부인은 빨치산 가문 출신에 무역성에서 근무한 걸로 아는데, 빵집 계획은 이뤄졌나?

"집사람은 그 계획대로 여기 와서 베이커리 학원과 바리스타 학원을 여섯 달씩 다녔다. 시험 쳐서 제빵사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같이 배우던 수강생들과 비교해보니 빵집을 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주위에서 '정식으로 공부해 대북 전문가가 되는 게 낫다'고 권해 대학원에 들어갔다."

큰아들의 평양 소환령

―당초 망명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평양으로 소환될 큰아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북한 외교관은 원래 자식 한 명은 '인질'처럼 북한에 남겨놓는 규정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다. 2013년 내가 다시 영국으로 나왔을 때 큰아들을 북한에 두고 왔다. 그런데 2014년 김정은이 '우리 청년들을 외국에 많이 내보내 배우게 해야 한다. 돈은 국가가 못 보태주니 외국에 부모가 있으면 내보내자'라고 획기적인 안을 내놓아 큰아들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대학 다니던 큰아들이 소환됐나?

"2016년 4월 중국 식당에서 북한 여종업원 집단 탈출 사건이 발생하자 '소환령'이 떨어졌다. 서방 세계에 익숙해진 아들이 입을 상처를 떠올리니 울컥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이 누적돼 터져나온 것이다."

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공사와 최보식 선임기자

―서방 세계와 비교하면서 그런 북한 체제 염증이 누적된 것인가?

"북한 안에서는 체제 통제로 김씨 집안에 대해 알 수가 없다. 해외에 나오면 권력 핵심부인 '서기실'(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조선노동당 본관)의 지시를 직접 받는 경우가 있다. 북한은 인민을 상대로 평등, 집단주의, 지도자의 헌신 등을 선전해왔는데, 영국 대사관에서 일하면서 영국제 양복천, 생일 케이크 재료 등까지 들여보냈다. 그동안 몰랐던 북한 권력 내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북한에서 정의롭게 살도록 교육받았는데 내게 주어진 일은 전혀 정의롭지 못했다. 이런 괴리감이 계속 쌓여왔다."

―그럼에도 북한에 기반 있는 엘리트 계층이 자식 문제로 탈출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내 아들도 결혼해 가족을 꾸릴 것이다. 어느 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그때 영국에서 아버지가 선택을 잘했으면 내 자식도 자유를 얻었을 텐데'라며 원망할 것 같았다. 내 아들과 손자에게 길을 열어주자고 마음먹었다."

―재작년 11월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잠적했을 때 '나의 친구여, 한국으로 들어오라. 한국 망명은 의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 뒤로 조성길의 소식은 끊겼는데.

"내가 캠페인을 벌이니 해외에 있는 친구가 '가만히 있으라. 딸을 못 데리고 나왔다. 평양에 가 있다. 당신의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연락이 왔다. 서방 모처에서 은둔설, 미국으로 들어갔다는 설, 국내로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경우든 딸이 평양에 있기 때문에 그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신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는 조성길 딸의 북송을 공식 부인했다.

"북한으로 딸을 데려간 것을 부인한 게 아니라,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딸이 왔다고 했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젊은 김정은이 집권했을 때 북한 체제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바깥에서는 세습 독재라고 하지만 그가 집권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2004년 4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통과했던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휴대폰으로 폭파장치를 점화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뒤로 북한에서 휴대폰 사용이 중지됐는데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풀렸다. 북한에서 휴대폰 사용 숫자가 600만대쯤 된다."

―김정은은 바깥세상의 흐름을 안다고 해야 하나?

"대사관 근무 시절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노동신문을 읽는 것이다. 북한에서 부쳐오기 때문에 보통 한 달이나 지난 신문들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들어와서는 '지금은 가상공간에서 싸움'이라며 노동신문을 인터넷 PDF판으로 올렸다. 또 '우리민족끼리' '조선중앙통신' 등도 인터넷판을 만들게 했다. 비록 외부와의 인터넷은 차단됐지만 컴퓨터와 IT 교육도 강화했다. 북한의 이런 변화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김정은이 有故 상태 되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았다는 게 보수 성향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인데?

"김정은은 30대이고, 상층 지도부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생물학적 연령이 중요하다. 젊어지는 북한 지도부는 김씨 왕조의 사회주의보다 어떻게 잘사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앞으로 등장할 북한 엘리트 계층이 우리와 손잡고 합리적인 개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지난 보수 정권에서 '레짐 체인지(김정은 정권 교체)' 카드를 고려한 적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을 제거하면 북한 체제는 혼돈에 빠져 우리가 컨트롤하기에 더 나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김정은이 유고(有故) 상태가 되면 북한이 대혼란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북한 체제는 김정은 개인이 아니라 그 아래 서기실의 엘리트 조직으로 움직인다. 설령 김정은을 들어내도 서기실이나 군부의 시스템은 살아 있다."

―이번 선거에서 널려 알려진 '태영호'가 아닌 '태구민(太救民)'으로 출마한다고 들었다.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을 취득할 때 북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명을 만들었다. '북한 주민을 구원해보겠다'는 뜻이다. 은행 계좌나 계약서 등에 써왔다. 이번 기회에 태영호를 되찾으려고 개명 신청했지만 시일이 걸려 '태구민'으로 나서게 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24/20200224000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