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행

‘동상’과 ‘광장’의 나라 러시아를 가다

Shawn Chase 2019. 9. 22. 15:07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조윤희  


월간조선 10월호



바이칼湖의 落照.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을 가진 타타르어에서 비롯됐다. 2500만~3000만 년 전에 형성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淡水湖이다.
  영토의 18%는 유럽에, 92%는 아시아에 걸쳐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나라답게 러시아의 정체성(正體性)은 이중적이다. 유럽 국가인 듯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서유럽이나 중유럽 국가들과는 다르다. 아시아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아시아인인 한국인들이 보기에 그들은 온전한 아시아인은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종착점. 옛 소련 시절 운행되던 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간이역 노점상들. 간이역이나 도심 광장에 들어선 시장들은 러시아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중적 정체성은 지리적 요인 외에도 200여 년간에 걸친 몽골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흔히 ‘타타르의 멍에’라고 하는 몽골 지배의 유산은 러시아 역사에 깊은 그늘을 남겨놓았다. 표트르 대제(大帝) 등은 이런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격한 서구화(西歐化) 정책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노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슬라브 고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세력의 반격을 받았다. 러시아의 역사는 서구화 노선과 슬라브주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1990년대 엘친의 탈(脫)공산주의-자본주의화 노선이 전자(前者), 2000년대 이후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후자(後者)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레닌의 동상. 레닌이 가장 앞에 서 있고 민중은 그 뒤를 따르는 모습이 공산체제 아래서도 서열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아시아-유럽 경계비. 오른쪽이 아시아, 왼쪽이 유럽이다.
  러시아의 양대 도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이런 역사의 사이클을 보여준다. 표트르 대제가 발틱해 연안에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서구화 노선을 상징한다면, 모스크바는 슬라브 지향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상징 모스크바 붉은광장. 여기서 ‘붉은’은 공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정. 제정러시아의 화려함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는 어느 도시를 가나 ‘광장’과 ‘동상’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에는 공산주의 선동의 장(場)이었던 광장은 이제는 시장(市場)이 되어 있다. 손님들을 부르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외침과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열려는 기념품점들이 오늘날 러시아 광장의 주인이다. 반면에 모스크바에만 100여 개가량 남아 있다는 레닌의 동상(銅像)들과 여전히 불친절한 경찰이나 공무원들은 공산주의 유산(遺産)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잔에 있는 쿨샤리프이슬람사원과 카잔카강.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는 이슬람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의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 있다.

상트카잔성당의 예배 모습. 러시아정교는 공산통치 기간을 뚫고 살아남은, 러시아인들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이다.
  러시아에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러시아는 진정 ‘제국(帝國)’이라는 점이다. 모스크바에서는 비잔틴풍의 성당들을 만날 수 있고, 예르미타시박물관에서는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 아니 세계 곳곳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카잔 등 과거 이슬람과의 접경지역에서는 모스크를 볼 수 있고, 바이칼호 연안에서는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게 생긴 몽골계 주민들을 조우하게 된다. 유럽인 듯하면서도 유럽이 아니고, 아시아인 듯하면서도 아시아는 아닌, 러시아로 가보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의 모습. 승객들은 열린 공간에서 며칠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점차 친해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파는 용기라면. ‘도시락’이라는 한글이 선명하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기념품 마트료시카. 인형 안에 인형이 들어 있는데, 20개가 넘는 인형이 들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