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강 기자 입력 2019-07-18 11:18수정 2019-07-18 13:44
초등 사회교과서 집필자 박용조 교수 최초 공개
교육부의 ‘집필진 무고’ 입증 공문 “교육부, 초등교과서 ‘도둑 수정’해놓고 덮어씌웠다”
● 공개 문건 “‘정부’ 뺀 것 교육부가 모든 책임져야” 내용 담겨
● “박 교수가 임의로 고쳤다”는 교육부 주장은 ‘무고(誣告)’
● “교육부, 40년 교육종사자에 인격살인 자행”
● 2016년 교육부 담당자 “교육부가 ‘정부’ 빼라고 수정 요청한 건 사실”
● 2017년 9월 ‘문재인 교육부’, “‘정부’ 넣어라” ‘불법 수정’ 거부하자 ‘도둑 날인’
● 박 교수 빠진 자리엔 참여연대, 교과서 국정화 조사 위원이…
● “정권 입맛 따라 ‘정부’ 넣었다 뺐다,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면 이렇게 돼”
문제가 된 교과서는 지난해 3월 배포된 초등 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로, 교과서가 배포되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책임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문제 제기를 했지만, 당시 김 장관이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해명하면서 잊힐 뻔했다. 그러나 지난 6월 검찰 수사로 교육부의 불법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야권이 ‘윗선’이었던 김 전 장관을 의심하는 이유다.
이 영화 같은 사건의 주인공은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다. 그는 2012년 9월 교육부와 계약을 맺고 2016~2018년도 초등 5, 6학년 사회교과용 도서 8책을 편찬한 집필책임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2017년 9월 교육부 B연구사는 A과장의 지시로 박 교수에게 전화해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돼 있는 주제명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 박 교수가 거절하자 박 교수를 배제하고 다른 집필진이던 C 교수에게 수정을 요청했고, C 교수 역시 박 교수와 같은 이유로 부담스러워하자 A과장은 전문가와 자문위원을 선임해 의견을 받아주기로 하고 수정보완 작업을 벌였다. 박 교수는 “지난 정권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라고 하더니, 정권이 바뀌니 이번에는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치라는 것이냐”며 수정 요청을 완강히 거절했다.
영화 같은 사건
7월 5일 그를 만나러 경남 진주로 가는 길. 화창한 하늘과 달리 기자의 마음은 짙은 안개 속이다. 교과서 집필 기준(2009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대로 편찬하면 되는데 박 교수는 왜 저런 말을 했을까. 교육부는 왜 책임자를 배제한 채 편찬기관이 ‘알아서’ 고친 것처럼 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오전 10시 진주교대 입구에서 만난 박 교수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아내가 ‘인터뷰하지 말고 자중자애하라’고 했는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를 따라 들어간 연구실에는 초등 사회과 교과서가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이 나란히 서 있다. 25년 초등교사, 15년 교수 생활을 말해주는 듯하다. 초등 6학년 교과서가 쌓여 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 부인은 왜 ‘자중자애’하라고 하나.
“사실 나도 피해자다. 사건의 잘잘못을 제대로 알리려고 몇 차례 인터뷰를 했는데 내 취지와 달리 보도되니 그런 거 같다. 이후 인터뷰를 사양했다.”
- 공소장에 보면 박 교수는 교육부의 수정 요구를 완강히 거절했다.
“나는 ‘2009년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이하 교육과정)에 따라 2016~2018년도 6학년 1학기 때 사용되는 사회과 교과서를 만들었다.”
그가 2016~2018년도 교과서 110쪽을 펼쳤다. 2016, 2017년도 교과서에는 ‘8·15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으로, 2018년도 판은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돼 있다.
“우리(집필진)는 교육자로서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교과서를 만든다. 2016~2018년 교과서는 2009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즉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광복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을 파악한다’에 따라 만들어야 하는 책이다.”
“정부가 바뀌니 ‘정부 수립’으로 바꿔달라니…”
- 그렇다면 성취기준에 맞게 2016~2018년도 교과서는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육부가 ‘정부’를 넣으라고 한 게 맞는 거 아닌가.
“언뜻 보면 맞는 말 같지만, 내가 한스러운 게 있다.”
그는 여러 권의 교과서를 펼쳐 보였다. 교과서가 나오기 전 심의용 교과서와 당장 학교에 쓰이는 최종 결재본 교과서였다.
“2012년부터 교과서 편찬에 착수했고, 2015년 1월부터는 편찬한 교과서로 심의 과정을 거친다. 그해 8월에도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했다. 심의본에는 ‘정부 수립’이라고 돼 있지 않나.”
- 그렇다.
“교과과정에 맞춰 편찬하고 심의했으니까 제대로 돼 있는 거다. 그런데 2016년 1월에 나온 최종 ‘결재본’ 책을 보면 어떤가.”
- ‘대한민국 수립’으로 돼 있다, ‘정부’가 빠졌다.
“그렇다. 우리가 제대로 만든 교과서를 2016년 1월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바꾼 거다. 당시 교육부는 우리가 만든 심의본을 보고 ‘정부 수립’을 ‘수립’으로 고쳐달라고 했다. 나는 교육과정에 따라 ‘못 한다’고 했는데 결재본에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나왔더라. 그럼 내가 임의로 수정을 한 건가, 교육부가 한 건가. 사실 이 내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 2016년 1월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놓은 교육부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원래대로 ‘정부’를 넣어달라고 했나.
“그렇다. 2017년 9월경 교육부에서 전화가 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쳐 달라’고 하더라. 아니, 당초 교육과정에 맞게 만든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바꾼 교육부가 정부가 바뀌니 다시 ‘정부 수립’으로 고쳐달라고 하는데, 어떤 집필책임자가 고쳐주겠나. 예전처럼 교육부가 수정하면 될 것을 우리가 고친 것처럼 해달라는 건데, 그래서 ‘못 고친다’고 한 거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교육학자들이다. 고함이 나오더라.”
그의 발언은 검찰 공소장 내용과 일치한다. 이후 교육부 과장은 박 교수를 배제한 채 수정 작업을 지시한다.
- 교육부가 수정할 권한이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 규정상 교육부가 자체 수정할 수 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26조는 ‘교육부 장관은 교과용도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국정도서의 경우에는 이를 수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교과용도서 집필 약관’ 10조에는 ‘도서 개발 완료 이후에는 ‘갑’이 자체 수정·보완할 수 있다’로 돼 있어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교과용도서 집필 약관’ 11조(완료된 도서 내용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을 경우 ‘갑’(교육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와 ‘국정도서 편찬 위탁계약서’ 8조(‘교육부가 수정 보완을 요구할 시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는 을(편찬기관)의 의무를 규정한다. 교육부가 애초에는 ‘직접 수정’을 했고, 이후에는 ‘간접 수정’을 요구했다는 게 의 설명이다.
박 교수가 건넨 한 장의 문서
그러나 “교육부가 2016년 교과서 제목을 일방적으로 수정했다”는 박 교수의 주장은 “박 교수가 교육과정과 다르게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꿔놓은 걸 2017년 9월에 수정 요구한 것”이라는 교육부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육부가 6월 27일 낸 설명자료에는 “교육과정과 다른 교과서를 집필했던 집필책임자(박 교수)의 수정 거부는 계약상의 성실 의무를 해태한 것이다”고 돼 있다. 박 교수가 2016년 교과서부터 잘못 만들었다는 ‘사실’은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에 있어 중요한 정당성으로 작용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도 7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교과서 수정 관련) 전혀 개입한 바가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과정에 맞지 않게 변경했고, 잘못 바뀐 것을 다시 제대로 교육과정에 맞게 고친 것”이라고 했다. 이상수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더 나아가 7월 1일 “교과서는 애초 2009 교육과정과 맞지 않게 기술된 내용이 있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2017년에) 수정했다. 당시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교수가 ‘개정 교육과정과 다르게 내용을 수정’해 생긴 문제여서 박 교수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수정해놓고 오히려 문재인 정부 교육부가 박 교수에게 ‘법적 책임’이라는 덤터기를 씌우려는 건가.
“당시 전화로만 연락해오니 증거가 없었는데 최근 어렵게 찾은 게 있다.”
박 교수는 한 장의 문건을 건넸다. 2016년 1월 12일 오전 교육부 담당 연구사에게 보낸 e메일 공문에는 편찬위원회의 입장이 담겼다. e메일 공문의 수신 ‘참조인’에는 집필진도 포함됐다. 다음은 내용 요약.
“본 편찬위는 2009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제시된 대로 주제명을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수 수립’으로 집필했으나 교육부가 교육과정과 달리 ‘8·15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으로 결재본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따라서 변경과 관련한 사후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교육부가 져야 하며 본 편찬위와는 어떤 관련도 없음을 알려드린다.”
- ‘교육부는 개입하지 않았고 박 교수가 임의로 수정했다’는 기존 교육부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인데.
“그러니까. 어렵게 찾았다. 당시 우리 집필진은 교육과정과 다르니 이를 반대한 내용이다.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바꿨음에도 이제 와 문제가 되니 오히려 나에게 ‘법적 책임’ 운운하는데 이건 교육부가 할 짓이 아니다. 40년간 교육에 종사한 사람에 대한 인격살인 아닌가. 이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나쁜 놈’이 됐을 거고, 40년 명예는 산산이 부서졌을 거다. 정치권과 관계없이 규정대로 한 게 죄인가.”
이와 관련해 당시 메일을 수신한 교육부 담당자는 ‘신동아’의 확인 요청에 “메일 내용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가 (교육과정과 달리) ‘대한민국 수립’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은 맞다”고 했다. 교육과정과 달리 요청한 이유에 대해선 “용어의 차이인데 그 당시 상황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며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교육부는 당시 사건 관계자들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박 교수가 멋대로 만들었다’며 법적 책임을 운운한 꼴이 된다.
- 공문으로 시행했으면 책임 소재 논란은 없었을 거 같다. 규정에는 교육부가 수정을 요청할 경우 반드시 공문으로 하도록 돼 있는데 전화를 해서 집필진이 수정을 요청한 것처럼 하는 이유는 뭔가.
“여러 이유가 있지 않겠나. 공문으로 하면 기록이 남아 ‘부담’이 돼서인지 우리가 알아서 (수정 요청을 하는 식으로) 해주길 바란다. 집필자들이 ‘알아서’ 쓰라는 거 아니겠나. 이러니 내가 고함을 친 거다. 교육이 정치에 휘말리면 안 된다. 방패막이가 돼야 할 교육부가 책임지지 않고 ‘을’에게 미루려는 건 옳지 않다.”
2017년 8·15 경축사 직후에…
- 교육 현장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어느 정권이든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생각이 교육에 반영되길 바란다. 정권은 그렇다고 해도 교육은 다르다. 많은 토론과 연구를 거쳐 걸러진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정권의 외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가 돼 교육이 중립지대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인 나로서는 억울한 마음이다.”
그의 말처럼, 교육부 A과장도 ‘교육부가 나서 주도적으로 수정하면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언론 등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될 것이 우려돼 편찬기관이나 발행사가 자체 수정 형식을 취하려고 했다’고 검찰 공소장에 기재돼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2017년 9월 교육부가 수정을 ‘요청’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말한 직후였다. 대통령과 여권 핵심 인사들은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 아니라 임정(臨政) 수립 시점인 1919년이라고 강조해왔다. 교과과정과 다른 교과서를 2년간 아무 말 없이 써오던 교육부가 2017년 9월에 갑자기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라고 ‘요청’하고 대거 수정한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8년도 교과서 내용이 ‘몰래’ 바뀌었다는 건 언제 알았나.
“2018년 3월 초 한 기자가 전화해 코멘트를 요청했다.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 사이트에 내가 213곳을 정정 요구한 걸로 올라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사람아. 내가 한 적 없이 없는데 무슨 말이냐’고 했지만 사실이었다. 경악했다. 2017년 9월 교육부는 ‘정부 수립’ 한 군데만 바꿔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교과서를 213군데나 바꿔놓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박 교수가 배제된 채 진행된 교과서 수정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소속 교수 등이 새로 참여했으며, 교육부 담당 과장은 ‘박근혜 정부 입장과 달리 새 정부 입장에 맞춰 교과서를 수정했다’는 비판을 우려해 박 교수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교수와 협의할 것을 지시하고, 내용 수정에 참여한 9명의 심의위원 명단은 빼고 기존 심의위원 명단을 그대로 두라고 지시했다. 교육부의 구체적인 ‘조작 지시’에 박 교수는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초등 교과서에 처음 등장한 ‘위안부’
- 교과서는 어떻게 바뀌었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단순 오탈자 수정도 있었지만 초등 교과서 역사상 처음 ‘일본군 위안부’가 사진과 함께 실렸고, 유신체제를 ‘유신독재’로 수정하고, 새마을운동 부분은 설명과 사진이 사라졌다. (3·15 부정선거 시위 때 사망한) ‘김주열 학생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쓰여 있는 등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박 교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들이마셨다. 박 교수 ‘몰래’ 작성된 ‘교과서 수정 대조표’에는 임신한 몸으로 괴로워하는 위안부 여성들 옆에서 웃는 군인이 찍힌 사진과 함께 ‘식민지 한국 여성들뿐 아니라 일제가 점령한 지역의 여성들까지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하였다’고 설명돼 있었다(아래 사진 참고). 이어지는 박 교수의 말이다.
“예전 교과서에는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고 기술돼 있었다. 이걸 바꿔 사진을 싣고 위안부라고 표기했다. 그동안 초등 교과서에는 ‘근로정신대’라는 표현은 나왔지만 위안부는 처음이었다. 내가 관여할 것은 아니지만 올해(2019년도) 교과서에는 ‘수요집회’ 사진도 나오고 더 노골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에게 살해당했다’고 표현한다. 초등학생 교과서에 말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건 교육의 적절성 문제다.”
- 교육의 적절성 문제?
“이런 용어가 어른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도 초등학생들에게는 각인이 된다. 그래서 잔인하고 폭력적인 단어는 순화해서 쓰고 에둘러 표현한다. 이 정도 표현의 교과서는 중·고등과정에서 다룰 수 있겠지만 초등과정은 아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歸鄕)’도 만 15세 이상 관람가다. 나 몰래 이런 책을 만들어놓고 내가 대표저자로 수정했다고 도장 찍고 기록에 남겼으니…이건 범죄행위다.”
- 2018학년도 교과서 ‘수정·보완 대조표’에는 박 교수가 대표저자로, 편찬기관(진주교대)이 정정을 요구한 걸로 돼 있다.
“그러니 내가 뒤늦게 알고 경악한 거다. 보통 책이 발행되면 ‘교과서민원처리센터’를 통해 오탈자나 띄어쓰기 등 매년 교과서 민원이 들어오고, 출판사가 이를 ‘스크린’ 하다가 집필자에게 보내준다. 이후 이를 확인하고 협의록에 도장을 찍고 수정보완 대조표를 만들어 정정 요청을 하는데, 여기에 내 도장이 찍혀 있었다.”
담당 과장은 해외 원장 발령…특혜 의혹
- 직접 찍은 건 아닌가.
“전혀. 보통 집필진 도장은 출판사에 맡겨놓는다. 수정 사항을 보내준 걸 우리가 ‘오케이’ 하면 출판사에서 우리 도장을 찍어 교육부에 승인 요청을 한다. 이번에는 출판사가 수정한 내용을 내게 보내주지도 않고 내 도장을 찍었다. 허위다. 이런 사실을 알고 바로 교육부에 전화해 ‘정정 요구자는 편찬기관이 아니라 교육부로 바꿔라’고 요구했다.”
기가 막힌 영화 같은 사건을 인터뷰하면서 기자의 미간도 차츰 굳어갔다. 심의용, 결재본 교과서와 대조표, e메일 문건 등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진술은 일관됐고, 검찰의 공소장 내용과도 일치했다. 교육부의 과장이 이런 일을 주도하고 조작을 지시했을까. 교과서 조작 혐의를 받는 교육부의 담당 과장은 사건이 불거지기 한 달 전인 지난해 2월 3년 임기의 해외 한국교육원장으로 파견됐다. 교육부가 논란을 숨기기 위해 특혜성 인사로 꼬리 자르기에 나선 거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교육기본법 제6조(교육의 중립성)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interview | 교육부 관계자
“박 교수 ‘증거’ 있다면… 학자적 양심 지킨 것”
교육부 관계자는 7월 12일 전화 통화에서 “(2016년 1월) 교육부가 직권으로 수정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박용조 교수는 학자적 양심을 지켰고, (교육부는) 과정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2018년도 교과서 수정 작업에 책임자(박 교수)를 배제한 이유는.
“수정 요구에 ‘못하겠다’고 거절하니 그랬다. 교과서는 나와야 하고, 그래서 집필진 중 6학년 집필 교수와 얘기하다가 그분이 ‘전문가들 의견을 받아주면 수정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해서 외부 전문가들을 모셨다.”
- 교육부의 ‘정당한 수정 요구’였다면 공문으로 시행하고, 계약을 어긴 집필책임자를 교체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부분은…다른 교수가 대리할 수 있다니 대리한 거로 볼 수 있다.”
- 교육부 말대로 집필진이 임의로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고쳤다면 2017년도 교과서에선 교육부가 나서 수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정책적 판단’이 있었는지, 내부 검토가 어땠는지 모르겠다. 교육부가 (교육과정에 맞지 않게) 교과서 내용을 바꾼다면 박 교수는 끝까지 반대했어야지….”
- 박 교수는 교육부 담당자에게 e메일로 ‘편찬위 입장’을 발송해 ‘모든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고 지적하며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 문건이 진짜 있나?”
- 그렇다. 직접 확인했다.
“박 교수가 끝까지 반대했다면 ‘교육부가 잘못 고쳤기에 나보고 고쳐달라고 하면 안 된다. 2018년도 교과서도 교육부가 고쳐라’라는 그의 주장이 맞다. 교수 등 집필진이 2016년 1월에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끝까지 반대했고 교육부가 직권으로 수정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박 교수는 학자적 양심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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