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국민 82%가 洑 철거 찬성' 환경단체 여론조사 뜯어보니...

Shawn Chase 2019. 5. 12. 12:58

손덕호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2/2019051200332.html


입력 2019.05.12 10:42 | 수정 2019.05.12 10:46


4대강 보 철거 장점만 나열한 채 '보 철거 어떻게 생각하나?' 물어
보 철거 반대론자들 "전제조건 달지 않거나 장·단점 모두 나열하게 물었어야"
이메일로 설문조사 방식...전화 여론조사보다 신뢰도 낮고 진보 성향 높다는 지적도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정부의 보(洑) 처리안에 대해 과장해서 비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대다수가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안숙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1층 회화나무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씨가 '국민 대다수 지지'의 근거로 든 것은 대한하천학회와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였다. 전체 응답자의 81.8%가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 가운데 3개를 해체하고, 3개를 상시 개방한다는 정부의 보 처리 안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안숙희(오른쪽) 환경운동연합 활동가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 기자회견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일각에서 이 조사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여론조사 설문지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됐고 보 철거를 추진하는 환경부 주장을 전제 조건으로 달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조사의 조사 방식도 조사 결과가 전체 국민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라고 했다.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4대강 보 해체 방안 발표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는 지난달 17∼22일 지역·성·연령별 인구비례 할당에 따라 무작위로 선발된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메일을 통한 설문조사였다. 응답자가 모든 문항에 답변해야 제출될 수 있도록 설문이 설계됐고, '모름' 등 유보 응답은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사기관은 '마크로밀 엠브레인'으로,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설문 문항, 정부 주장만 소개한 뒤 질문해

이 조사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환경운동연합이 "국민의 대다수가 정부의 보 처리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은 4번 문항이 근거다. 이 문항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2월 환경부에서는 보 가운데 3개를 해체하고, 2개의 보를 상시 개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 근거로 △보의 효용성이 부족하고, △보가 없어도 물 이용에 어려움이 크지 않으며, △수질·생태계가 개선되고, △유지·관리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는 내용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귀하께서는 이 처리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 문항.


조사 결과 '동의한다'는 응답이 81.8%,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18.2%로 나타났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를 근거로 "정부에서 발표한 금강, 영산강의 보 처리방안에 대한 의견을 살펴 본 결과 보 처리방안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설문문항에 대해 환경부가 주장하는 4대강 보 해체 논리만 죽 나열한 뒤,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므로 잘못 작성됐다는 지적이 보 철거 반대단체들에서 집중 제기했다.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되려면, '4대강 16개보 해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식으로 어느 한쪽의 논리를 달지 않거나, 찬반 양쪽 논리를 모두 제시하고 의견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4대강 보 해체에 반대하는 단체인 4대강 국민연합 공동대표인 이재오 전 의원은 "만약 '보 해체는 4대강 지역주민이 대부분 반대한다. 보 해체는 단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 보 해체에 수천억원의 혈세가 낭비된다. 보 설치 이후 4대강 수질이 상당히 개선됐다. 4대강 보는 가뭄과 홍수조절에 매우 효율적이고 수자원 확보에도 꼭 필요하다. 4대강 물은 농민들의 생명수다'라는 설명을 제시하고 조사하면 결과가 정반대로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결과가 지난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가 금강·영산강 5개 보 중 2개를 철거하고 3개는 상시 개방하는 안을 내놓을 때 제시한 여론조사 결과와도 차이가 컸다. 당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4.3%로 '보가 필요 없다'는 응답(36.9%)을 앞섰다. 이 때문에 당시 4대강 기획위는 "찬반 여론이 오차 범위 내로 비슷했다"고 발표했다. 석 달 만에 국민 여론이 확 바뀌었다는 것이다.

4번 문항에 앞서 4대강 보의 필요성을 물은 질문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은 이 4번 문항에 앞서 3번 문항에서 보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2%가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16개 보에 대해 '불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문항의 질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4대강사업을 통해 16개의 보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귀하께서는 이들 보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유역을 정비한 사업으로, 당시 16개의 보(하천에서 관개용수를 수로에 끌어들이려고 둑을 쌓아 만든 저수시설)를 설치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여론조사 문항.


4대강 사업을 설명하면서, '이명박 정부' 사업이란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가 신뢰성을 얻으려면 설문 문항을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한다"며 "현재 투옥돼 있는 이 전 대통령이 한 사업이란 점이 부각되면 4대강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높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 문항에 이어 현 정부의 보 처리 방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4번 문항이 나왔으므로 이 문항 응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사를 실시한 마크로밀 엠브레인 관계자는 "설문 문항 설계는 의뢰인과 협의해서 작성한다. 설문 문항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을 경우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다만 최종적인 설문 문항 결정은 의뢰인이 한다"고 말했다.

이메일로 설문…진보 성향 여론 더 많이 반영돼

이 여론조사는 이메일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론조사업체가 확보한 '패널' 중 성별과 연령을 기준으로 선별해 무작위로 설문조사지를 보내고 응답을 받는 방식이다. 이 여론조사를 실시한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150만명의 패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널들은 여론조사에 참여할 때마다 설문 문항의 길이에 따라 수백~수천원의 적립금을 받을 수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4대강 보 해체 저지 투쟁 제1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임이자, 이은재 의원, 이재오 4대강 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 공동대표, 자유한국당 김무성, 권성동 의원(왼쪽부터)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여론조사 전문가들 중에는 환경운동연합의 여론조사가 이메일 조사라는 점 때문에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전화 여론조사는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지만, 온라인 조사는 이메일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메일 조사는 이미 설문조사 대상이 1차로 걸러진 상태이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대표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조사는 통상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보통 온라인 여론조사는 진보 성향이 강한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전화 여론조사보다 더 많이 참여한다"며 "블루칼라나 자영업자는 바빠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길게는 10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 설문조사에 응답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고 컴퓨터를 많이 쓰는 화이트칼라 계층이 이메일 설문조사에 더 많이 응하는 편"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전화 조사 방식으로 지난 7~9일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해 10일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여론조사와 비교해봐도 환경운동연합의 여론조사의 화이트칼라 비중이 더 높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자신의 직업을 '화이트칼라'라고 밝힌 응답자가 32%였지만,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실시한 환경운동연합 여론조사에선 화이트칼라에 해당하는 전문직(9.7%), 경영·관리·사무직(41.6%), 판매·서비스직(5.2%)의 비중이 56.5%에 달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블루칼라와 농·임·어업 종사자 비율은 18%에 달했지만, 환경운동연합 조사에선 6.3%에 불과했다.

화이트칼라 가 블루칼라보다 진보적 성향을 띤다는 것은 1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화이트칼라는 48%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자유한국당은 13%만 지지했지만, 블루칼라는 39%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29%가 한국당을 지지했다. 화이트칼라 비중이 높게 반영된 환경운동연합의 여론조사가 실제 여론과는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2/2019051200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