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 씨 광주 정착 이유

Shawn Chase 2019. 5. 3. 17:29
“아픈 사람 안아준 곳, 
시민들 노란리본에 위안”
서구청서 강연 ‘4·16 그리고 
생명과 인권’ 주제로

김우리 ur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9-05-03 06:05:01

▲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2일 광주 서구청에서 ‘4·16 그리고 생명과 인권’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제가 광주에 내려온 이유는 딱 하나에요. 광주는 아픈 사람들을 안아준 곳입니다.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전국을 돌았어요. 그때마다 광주시민들이 가장 많이 나와 주시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서구청의 초청으로 마련된 강연 자리에서 1년 8개월 전 광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광주에서 생활해보니 마음도 편하고 위안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식들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는 막말에 상처를 받다가도 노란리본을 보면 큰 위안이 됩니다. 많은 학생들이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고, 가게에도 노란리본을 걸어놓으셨더라고요.”

 그는 2일 오전 서구청 2층 대회의실에서 ‘4·16 그리고 생명과 인권’을 주제로 특별초청 강연에 나섰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자 서구 주민으로서 연단에 서서 “아직도 싸움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이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조사가 끝난 것 아니냐’고, ‘충분히 보상받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1기 특별조사위가 강제 종료된 이후 2기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여전히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어 진상규명에 대한 전망이 어둡다고 했다. 
 
▲“가짜뉴스·사찰 등 고통”

 그럼에도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유민이가 아빠에게 남긴 두 가지 깨달음이 있어서다. 

 유민이를 다시는 안을 수 없게 만든 이유가 사회, 정부, 국가일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사회에서 고통을 겪는 이가 혼자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유민아빠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지지부진하던 지난 2014년 7월14일부터 목숨 건 46일간의 단식을 하며 투쟁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단식 도중 쓰러지고 다음날인 그해 8월23일부터 일부 커뮤니티와 언론을 통해 그에 대한 비난과 조롱, 폄하 보도 등이 동시 다발로 벌어졌다. 

 “저는 땀 흘리며 일하던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왜 아이가 죽었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단식을 시작했는데 정부는 조직적으로 비난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렸어요. 제가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았고 딸을 고아원에 보내려고 했다는 말이 사실처럼 퍼졌죠.”

 악의적인 소문이 언론을 통해 사실처럼 보도되면서 sns등을 통해 해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딸 유민이와 카톡을 주고받은 내용, 통장 입출금 내역까지 첨부해가며 사실을 증명했다. 

 “단식 이후 그해 10월8일까지 복식 치료를 마치고 충남 아산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사찰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제 주치의와 병원을 사찰하고, 고향집인 정읍에서 저의 개인 정보를 샅샅이 털어갔어요.”

 그는 2017년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일지가 공개되면서 정부의 사찰 의혹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도 컸지만, 더 큰 고통은 진실규명에 한 발도 다가서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유가족들을 끝나지 않은 싸움으로 내몰고 있다. 

 “저희는 아직도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모릅니다. 1년이 넘는 선체 조사에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어요. 외부의 힘이 가해져 침몰했다는 외력설이 제기됐어도 확실한 원인은 아직 미궁 속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2일 광주 서구청에서 ‘4·16 그리고 생명과 인권’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구조 못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또 다른 질문도 그의 가슴을 무너뜨린다. ‘구조를 못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참사 당일 어민이 진도VTS 관제사와 통화한 내용의 녹취록을 들어보면 기가 막힙니다. 1기 특조위에서 녹취록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해경이 철저하게 막았고, 2기에서 확보했지만 원본 그대로일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가 강연 자리에서 공개한 녹취 파일에는 어민의 다급한 구조 요청에도 VTS에선 대응이 아닌 신고자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등 비상식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시간이 지체되던 사이 세월호는 물에 잠겼다. 

 “듣기로 2기 특조위에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기 때문에 1기의 조사를 재검토하는 수준이라고 해요. 검찰 조직으로 구성되는 특별수사단의 전면 재조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영오 씨는 진실규명을 위해 필요한 특별수사단 구성을 재차 강조했다. 

 “제대로 진실규명 해야만, 생명이 존중 받는 사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다시는 누구도 우리 유가족들처럼 길 위에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요. 앞으로도 참사는 일어날 수 있겠지만, 억울함을 길에서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위해 계속 싸우겠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청중들은 노란리본 배부대에 들러 노란리본 하나씩을 손에 꼭 쥐고 문을 나섰다.
김우리 기자 uri@g 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