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재미있는 과학] 전 세계 과학자 모여 지구상 모든 생물 유전 지도 그려요

Shawn Chase 2019. 3. 27. 16:17


입력 : 2018.11.22 03:00

[지구 바이오 게놈 프로젝트]
생명체 이루는 유전정보 '게놈'… 인간의 경우 해독하는 데 13년 걸려
10년간 5조원 들여 모든 생물 분석… 멸종한 동물 되살려낼지도 몰라요

지난 1일 영국 런던에서 '지구 바이오 게놈 프로젝트(EBP)'가 시작됐어요. 세계 10개국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유전지도를 그리겠다는 야심 찬 과학 공동 작전이에요. 사람이 사는 대륙뿐 아니라 극지방, 해저, 사막, 산꼭대기 등 지구 곳곳의 생물종을 싹 훑어야 하는 일이죠. 이 작업에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어요.

여기에 10년간 5조원이란 엄청난 돈을 들일 거라고 해요. 현재 참여하는 과학자 수는 수십 명이지만, 앞으로 세계 각국 기관과 과학자들이 속속 참여할 예정이라 계속 수가 늘어날 거예요. 우리나라도 남극 생물과 우리나라 고유 생물의 게놈을 분석하는 걸로 힘을 보탠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긴 시간과 큰돈을 써가며 생물의 게놈을 분석하는 걸까요? 그건 게놈 속에 무한한 정보와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에요.

◇생명을 이루는 초미니 도서관

우선 '게놈(Genome)'이란 정확히 뭔지부터 알아볼까요?

모든 생물의 세포 속에는 유전자가 들어 있어요. 유전자는 여러 개의 염기쌍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 염기쌍들이 모여 이중 나선 구조를 가진 DNA를 구성하지요. 게놈은 그런 염기쌍 전체를 가리켜요. '어떤 생명체를 이루는 모든 유전정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재미있는 과학] 전 세계 과학자 모여 지구상 모든 생물 유전 지도 그려요
▲ /그래픽=안병현
게놈은 요컨대 한 생물을 이루는 방대한 정보가 압축되어 있는 초미니 도서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심장의 생김새부터 눈동자 색까지,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모든 정보가 촘촘하게 담겨 있답니다. 게놈 해독은 그 도서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는 과정이에요.

거대하고 복잡한 도서관에서 꼭 필요한 책을 찾아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책이 어느 서가에 분류되어 있는지부터 검색해야겠죠? 그 서가가 도서관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도 봐야 하고요. 유전자 연구도 비슷합니다.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유전자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 알아야 해요.

과학자들은 이미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3년에 걸쳐 인간 게놈을 해독했어요. 무려 31억개에 달하는 염기쌍 모두를 살펴보는 엄청난 작업이었죠. 연구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공개됐어요. 덕분에 2003년 이후에는 인간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그전에 비해 수백 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밀, 예쁜꼬마선충, 초파리, 박테리아 일부 종도 게놈 해독이 마무리됐죠. 하지만 지구 상에는 인간이 게놈 해독을 마친 생물종보다 그렇지 않은 생물종이 훨씬 더 많아요. 지구 바이오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이 생물종들의 정보를 모으고 검색 시스템과 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다음 세대 과학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게놈을 통해 생물을 보존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생리작용과 질병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우리는 사람의 몸뿐 아니라 생각과 행동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각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의 구조와 돌연변이들도 속속 밝혀지고 있어요. 이런 연구는 유전자와 그 돌연변이가 일으키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요.

그뿐만 아니에요. 생물 유전자에는 진화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어요. 우리가 지금껏 모르고 있던 생물들 사이의 연관관계도 알 수 있지요. 현재 살고 있는 생물의 게놈을 많이 해독하면 해독할수록, 여러 생물 사이의 유사점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해져요. 이미 사라진 생물을 되살리는 연구도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은 일찌감치 게놈 해독이 완료됐어요. 그 결과가 인간 유전자 연구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요. 인간과 비교했을 때 초파리 유전자는 약 60%, 예쁜꼬마선충은 80%가 비슷하거든요.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은 둘 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명이 짧고 후손을 많이 낳는 게 특징이에요. 유전자 조작을 하기 쉽고, 결과도 빨리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로 직접 실험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연구를 이 두 생물을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은 지금까지 인간 돌연변이나 질병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워왔답니다.

게놈 해독 덕분에, 멸종된 생물에 대한 연구도 발전하고 있어요. 매머드의 DNA를 분석해 지금 사는 코끼리와의 유사점을 찾아낸 연구가 대표적이지요. DNA 분석을 통해 매머드와 코끼리가 언제 서로 다른 종으로 갈라졌는지도 알아냈지요. 심지어 매머드와 가장 닮은 아프리카코끼리의 DNA를 이용해 매머드를 되살리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답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거나, 서로 다른 두 고인류가 함께 어울려 살며 자손을 만들었다는 최근 연구들도 게놈 해독 덕분에 가능했어요.

지구 바이오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가 나오면 유전자 연구와 활용 범위가 훨씬 넓어질 거예요. 각 동식물이 가진 유전병을 알아내고 치료해, 자연적으로 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기존 작물을 개량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은 신품종을 만들어낼 수도 있죠.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한 생물종을 보존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매머드처럼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 생물들의 DNA를 분석해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요. 의학자나 유전학자뿐만 아니라 생태학자부터 에너지 전문가까지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이유랍니다. 10년 뒤 150만 종의 게놈이 모두 해독되는 순간이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