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학

[재미있는 과학] 패딩, 왜 닭털은 안 쓰고 오리·거위털만 찾을까요?

Shawn Chase 2019. 3. 27. 16:15


입력 : 2018.12.06 03:00


[패딩 충전재]
물새들 체온 유지해주는 '솜털' 필요… 닭은 솜털이 없고 깃털도 억세죠
패딩 한 벌에 물새 20~30마리 희생… 동물 대신할 인공충전재 개발됐어요

오는 7일은 한 해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이에요. 날씨가 추워지면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스웨터나 재킷 위에 패딩 점퍼를 입고 다녀요. 구스와 덕 다운 패딩은 각각 거위와 오리의 솜털을 채운 점퍼죠.

패딩은 옷을 만들 때 솜이나 오리털 같은 충전재를 넣어 누비는 방식을 말해요. 충전재로는 거위나 오리의 털이 많이 쓰이죠. 그런데 왜 거위나 오리의 털이 많이 쓰일까요? 덩치가 큰 타조의 털을 쓸 수도 있을 텐데요?

◇물새들의 비밀무기 '솜털'

충전재로 사용되는 오리나 거위의 솜털 또는 깃털 밑에 나는 잔털을 '다운(down)'이라고 해요. 주로 가슴에서 배에 걸쳐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는 털을 가리키죠. 패딩 점퍼 안에는 보통 솜털과 깃털이 섞여 들어가는데, 솜털 함량이 75% 이상인 것만 다운 제품이라고 표시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과학] 패딩, 왜 닭털은 안 쓰고 오리·거위털만 찾을까요?
▲ /그래픽=안병현
닭이나 타조 같은 새들은 솜털이 없을 뿐 아니라 깃털도 억세서 점퍼의 충전재로 쓸 수 없어요. 닭과 타조는 육지에서 주로 생활하는 반면 오리와 거위는 연못이나 저수지, 시냇가 부근에서 살아가요.

닭이나 타조와 달리 물속에 몸을 담그는 오리와 거위는 쉽게 체온을 빼앗길 수 있어요. 그래서 오리와 거위는 목 아랫부분과 가슴, 배 아랫부분, 날개 아랫부분에 솜털이 돋아나 있어요. 깃털은 한가운데 단단한 재질의 심지가 있지만 솜털은 모든 털이 가늘고 가벼워요. 솜털은 마치 수많은 보푸라기가 뻗어 나와 민들레 씨처럼 동그란 모양을 이룬 것처럼 생겼어요. 보푸라기들이 공기를 머금어서 체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지요.

패딩의 보온 정도는 털이 부풀어 오른 정도인 '충전도(한국산업표준·KS)'로 판단하는데, 충전도가 높을수록 솜털 사이에 형성된 공기층이 많아 보온 효과가 커요.

최근에는 다운 패딩 점퍼를 만드느라 살아 있는 거위와 오리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솜털을 채취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와요. 솜털은 거위와 오리 몸 전체에 난 털의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패딩 한 벌을 만들려면 거위나 오리 20~30마리가 희생돼야 해요. 마취도 하지 않고 털을 뽑고, 털이 다시 자라나면 또 뽑아요.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새의 털이 아닌 화학섬유 소재를 활용하는 인공 충전재 개발이 주목받고 있어요.

◇오리털에 도전하는 '4공 중공섬유'

2년 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화학섬유의 단면에 구멍이 있는 '중공(中空)섬유'를 충전재로 내놓았어요. 섬유 내부에 구멍을 만드는 이유는 보온성, 단열성, 부피감, 탄성을 높이고 무게를 낮추기 위해서예요.

이러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섬유 안에 구멍이 4개인 '4중 중공섬유'를 개발했어요. 구멍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훨씬 푹신해지고 안쪽에 들어 있는 공기로 인해 보온과 단열 효과도 높아져요. 인공섬유의 시제품은 대개 새끼손톱보다 작게 말린, 동글동글한 솜뭉치처럼 생겼어요. 거위 털을 모방해 일부러 동그랗게 말아 놓은 거예요.

아직은 인공 충전재가 천연 솜털만큼 복원력이 좋진 못해요. 복원력은 '필파워(FP·Fill Power)'라고 표시하는데, 복원력이 뛰어나면 공기층이 더 잘 형성돼 보온성, 단열성, 부피감 등이 뛰어나다고 해요. 인공섬유의 FP는 600~700 정도지만, 최상급 거위·오리 솜털의 FP는 800~850 정도 돼요. FP는 가슴 솜털 1온스(28g)를 24시간 동안 압축한 뒤, 다시 부풀어 오르는 정도를 나타낸 단위랍니다.

◇한국인의 '시베리아 복장'

러시아, 미국 중북부, 캐나다, 몽골, 북유럽은 겨울철 최저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요.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이 정도의 극한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후드가 있는 파카, 두 겹의 바지, 내복, 스웨터, 양모장갑 등이 필요하다고 해요.

하지만 한국은 가장 추운 1월 강원도의 평균 기온도 영하 5도 아래로 잘 내려가지 않아요. 전문가들은 한국 겨울철을 나는 데는 FP 650~700 정도면 충분하다고 봐요. 굳이 거위·오리 솜털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도 한국인의 겨울 복장은 바지만 한 겹 더 입으면 시베리아 복장이 되곤 하지요.

의류의 보온성은 '클로(Clo)'라는 단위로 나타내요. 바람이 초속 0.1m로 불고 주위 온도가 21도일 때 사람이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보온 상태를 1클로로 정의해요. 0클로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를, 2클로는 영하 10도에도 따뜻한 의복을 입은 상태를 말해요. 두꺼운 패딩의 보온력은 그 자체로 1클로가 넘어요.

평소 가볍게 옷을 입는 사람은 추위에 맞설 수 있는 체온 조절 능력이 강화되죠. 반면, 어려서부터 과도하게 두꺼운 옷을 입으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요. 실제로 이웃 나라인 일본은 겨울 교복도 반바지인 경우가 많아요. 추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지요.

2015년 이주영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팀이 손가락 끝의 혈관 확장을 통해 추위를 참는 능력을 조사해보니, 고령의 제주 해녀들이 20대 도시 여성들보다 추위를 더 잘 참아냈어요.

날씨가 춥다고 무작정 패딩을 찾기보다 옷은 얇게 입고도 추위를 덜 느낄 수 있게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열손실이 적은 몸통 부위는 두껍지 않게 옷을 입고 공기와 접촉면이 넓은 얼굴과 손발을 따뜻하게 하면 옷을 얇게 입어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요. 평소 추위도 더 잘 참아낼 수 있게 돼 몸도 건강해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