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50)
9월은 송이버섯이 나는 계절이다. 올해는 추석 명절도 9월에 있어서 송이버섯이 나는 동네엔 송이가 들어간 음식으로 향기로운 향을 함께 했을 것이다. 송이는 가격이 엄청 비싸다. 시골에 살 적 우리 집 왼쪽, 오른쪽, 뒷산은 모두 송이 산이었다. 그래서 송이가 나는 철이면 낯선 자동차의 출입도 조심스러웠고 산주들은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도시에 살던 송이 산주들도 그맘때면 동네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는 산을 지켰다.
가을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한 통 왔다. 우리 집 앞에 작은 송이산을 가진 서울 사는 지인이 남편에게 당신의 산을 사라고 하는 것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게 이럴 것 같았다. 송이가 많이 나는 산은 산주들 자기네들끼리 거래하지 외부 사람이 사는 일은 거의 없다. 금액도 싸게 말하면서 건강을 위해 그냥 오르락내리락 운동 삼아 다니시라며 선물같이 주셨다.
서울에 사시던 그분은 이곳이 고향이지만 송이철만 되면 내려와야 하는 번거로움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의 꿈에 남편이 보여서 새벽에 전화하고는 내려오셨단다. 돈이 없으면 나중에 계산해도 된다며 마치 친척같이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막 송이가 나오던 그 날 산을 들러 송이가 나오는 곳을 노끈으로 표를 하고 또 송이 캐는 시범을 보이고는 그날 딴 송이를 그대로 우리에게 건네주시며 계약하고 내려가셨다. 하느님이 보낸 수호 천사 같았다.
송이 철이 되면 산중에 살아도 송이산이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거의 바깥출입을 안 하고 조심스럽게 살았는데 산이 생긴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매우 좋아했다. 그러니 시한부 인생으로 몸이 안 좋아지려고 해도 물 좋고 공기 좋은 데다가 운동까지 하게 되니 일 년 일 년 자꾸 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봄에는 산을 일구어 삼 씨를 심으러 오르내렸고 나물을 뜯고 고사리를 꺾으며 산을 돌아쳤다. 막걸리를 가방에 짊어지고 멧돼지를 잡는다며 일 년 내내 동네 사람들과 오르내리기도 했다.
몇 년을 산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다가 떠날 때가 되었다. 그때도 9월이었다. 그해에도 올해처럼 명절이 9월 초순에 있어서 가을이 빨리 왔다. 마지막 한 달을 호스피스 병동에 있으면서도 온갖 음담패설과 농담으로 주위에 웃음과 즐거움을 주던 사람이었고 건강에 안 좋다지만 마지막 가는 날까지 좋아하는 담배와 술을 잊지 않고 챙기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시골 생활 십년간 주치의가 되어주신 담당 의사가 나를 부르더니 말씀하셨다. “이제 준비하세요…. 3일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연명술을 하지 않으면 가는 날이 깨끗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갑자기 3일 후에 떠난다니. 마음의 준비와 헤어지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지만 순간 너무 무섭고 두려워 의사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열흘만 더 살려 주실 수 없나요? 딱 열흘만. 더는 욕심 안 부릴게요. 열흘만이라도….” 횡설수설하며 매달리고 있으니 그럼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겨야 한다며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남편에게는 집중적으로 치료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상황을 짐작하고는 말없이 중환자실로 실려 들어갔다. 추석날엔 멀리 있던 아들도 들어오고 가족 형제 친지들과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나누었다.
열흘째 되는 추석이 지난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나에게 산에 송이가 날 때가 되었으니 한번 다녀오라고 했다. 그날 아침에 산 입구까지 갔지만 어수선하고 무거운 발걸음은 산으로 향하지 못했다. 돌아오며 송이를 파는 지인에게 들러 1kg을 샀다. 그때 가격이 40만원이 조금 넘었다. 남편에게는 산에서 땄다고 했다. 저녁 면회시간에 남편은 송이를 다 다듬어서 환자용 밥상에 펴놓고는 먹을 수 있고 정신이 있고 대화가 되는 모든 중환자에게 조금씩 갖다 드리라고 했다.
그날 저녁 중환자실은 은은한 송이 향이 감쌌다. 오가며 의사와 간호사도 모두 맛을 보며 “어찌 이런 추석 선물이~”라고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에게 더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소주 한잔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부리나케 지하에 있는 주차장으로 달려가 트렁크에 있던 백세주를 요구르트병에 옮겨 붓고 빨대를 꽂아 올라왔다.
남편이 빨대를 쭉 빨아 한잔하고 말했다. “역시 내 마누라가 최고다….” 그러면서 선물이라며 내 손에 입을 맞춰주었다. “좋은 안주에 맛있는 술도 한잔했으니 정말 좋다. 이젠 자고 싶으니 당신도 나가서 푹 자고 내일 보자”라고 했다. 그런데 3시간 뒤에 간호사가 불러서 가니 하늘로 떠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목놓아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포옹을 하며 귓속말을 했다.
“긴 세월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나도 곧 가게 되는 그 날까지 잘 지켜봐 줘.”
친정아버지도 남편도 낯선 다른 우주를 향해 가는 중에도 주위에 농담과 웃음을 주고 떠나 죽음이란 것이 두렵거나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할 나이에 접어들었다. 보람있게 살다가 떠나는 그 날 그렇게 가벼운 몸으로 떠나고 싶다. 기일도 추석 다음 날이라 좋은 계절에 떠났지만 송이가 나는 가을이 오면, 그래도 마음 한구석 싸한 바람이 불고 문득문득 그 사람이 생각난다. 송이 축제나 다녀와야겠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출처: 중앙일보] 마지막까지 송이버섯 안주삼아 한 잔하고 떠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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