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선임기자
청와대 참모 누구도 "이건 바보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더 이상 왕따로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헌법재판관 후보인 이석태씨는 소위 '스펙'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다. 요즘 공직에 가장 잘 팔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회장을 지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 인연까지는 아니어도 또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세월호사건특별조사위원장을 했고,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팽목항을 방문해 방명록에 '얘들아 고맙다'라는 문구를 남긴 적이 있다.
그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말을 듣는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민변과 우리법의 만남이다. 현 정권에서 주요 인사는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 인사청문회에서 이석태씨는 무슨 소리인지 모를 모호한 답변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대통령은 자신 밑에서 근무했던 그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할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 사람들이 헌재(憲裁)의 독립성까지 따질 리 없다.
인사 문제는 과거 정권에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때는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살아 있었고 그 약발은 좀 먹혔다. 최고 권력자라도 정실·측근·코드 인사를 하려면 이리저리 여론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특급 정권'이다. 제멋대로 면허증을 발급받은 것처럼 인사에서 전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아주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기 패거리를 꽂아 넣어왔다.
이미 청와대는 비슷한 이념 성향의 운동권 선후배들의 집합체가 됐다. 이들끼리는 청와대 내 직급보다 운동권 시절의 위계를 더 따진다고 한다. 직급 낮은 운동권 행정관이 공무원 비서관보다 힘이 더 세다. 청와대 안에서 비(非)운동권은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다. 한 공무원 출신이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 인사들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제안했다가 찍혔던 일을 털어놓은 적 있다. 그 뒤로 그는 그런 '왕따 짓'을 다시 할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죽을 지경이라고 서민들은 아우성을 치는데도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운동권에 장악된 청와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청와대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은 이념과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에 상관하지 않는다. 서민층을 위한 정권이라는 현 정권에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 살기 더 어려워졌다는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은 실험 대상이 된 것처럼 "연말까지 기다려보면 효과가 나타날 것" "내년 하반기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허망한 말만 계속 듣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오히려 악화된 소득분배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통계 방식이 잘못됐다"며 분개하는 쪽이다. 대통령에게는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를 들고 와 양극화는 개선되고 서민 살림은 나아졌다는 믿음을 심어 넣었다. 그런데 또 최악의 소득분배지표가 발표됐다.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통계청 발표가 나오고 사흘 만에 통계청장은 교체됐다.
이들은 위력(威力)으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통계청 발표마다 현 정권에 유리하도록 분칠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통계청장 한 명 잘라서 얻는 순간의 이득보다 그런 불신이 정권에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이건 정말 바보짓"이라고 청와대 참모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더 이상 왕따로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떨 때는 '국회청문회' 제도라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요란하기만 했지, 사실상 국정을 움직이는 것은 청문회 대상이 안 되는 이런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 머릿속에는 공직을 수행할 만한 국가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참모들이 정부 부처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며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비슷한 패들에게 장악된 것처럼, 행정 부처와 권력 기관, 사법부도 저네들끼리 요직을 나눠 가졌다. 심지어 눈에 덜 띄는 공공 기관까지 그렇다. 바른미래당이 공공 기관 340개의 인사 현황 전수(全數)조사를 해보니 새로 임명된 1651명 중 365명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이었다. 그 당의 이언주 의원이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서 구석구석 찔러 넣을까"라고 촌평한 것처럼, 자기들만의 잔치판이다.
현 정권의 장악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 사람들의 입은 장악할 수 없다. 요즘 세상의 바닥에서는 "보자 보자 하니 이놈의 정권은 눈에 뵈는 게 없구나" 하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온전할까 걱정은 넘쳐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지속적인 적폐 청산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하고, 여당 대표는 '민주 정부 20년 집권 플랜'을 떠들고 있다.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헷갈린다.
청와대 참모 누구도 "이건 바보짓"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더 이상 왕따로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헌법재판관 후보인 이석태씨는 소위 '스펙'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다. 요즘 공직에 가장 잘 팔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회장을 지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 인연까지는 아니어도 또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세월호사건특별조사위원장을 했고,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팽목항을 방문해 방명록에 '얘들아 고맙다'라는 문구를 남긴 적이 있다.
그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한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하나회'라는 말을 듣는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민변과 우리법의 만남이다. 현 정권에서 주요 인사는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 인사청문회에서 이석태씨는 무슨 소리인지 모를 모호한 답변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대통령은 자신 밑에서 근무했던 그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할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세상 사람들이 헌재(憲裁)의 독립성까지 따질 리 없다.
인사 문제는 과거 정권에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때는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살아 있었고 그 약발은 좀 먹혔다. 최고 권력자라도 정실·측근·코드 인사를 하려면 이리저리 여론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특급 정권'이다. 제멋대로 면허증을 발급받은 것처럼 인사에서 전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아주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기 패거리를 꽂아 넣어왔다.
이미 청와대는 비슷한 이념 성향의 운동권 선후배들의 집합체가 됐다. 이들끼리는 청와대 내 직급보다 운동권 시절의 위계를 더 따진다고 한다. 직급 낮은 운동권 행정관이 공무원 비서관보다 힘이 더 세다. 청와대 안에서 비(非)운동권은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다. 한 공무원 출신이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보수 성향 인사들의 의견도 들어보자"고 제안했다가 찍혔던 일을 털어놓은 적 있다. 그 뒤로 그는 그런 '왕따 짓'을 다시 할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죽을 지경이라고 서민들은 아우성을 치는데도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운동권에 장악된 청와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청와대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은 이념과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에 상관하지 않는다. 서민층을 위한 정권이라는 현 정권에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이 살기 더 어려워졌다는 현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국민은 실험 대상이 된 것처럼 "연말까지 기다려보면 효과가 나타날 것" "내년 하반기에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허망한 말만 계속 듣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오히려 악화된 소득분배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통계 방식이 잘못됐다"며 분개하는 쪽이다. 대통령에게는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를 들고 와 양극화는 개선되고 서민 살림은 나아졌다는 믿음을 심어 넣었다. 그런데 또 최악의 소득분배지표가 발표됐다.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통계청 발표가 나오고 사흘 만에 통계청장은 교체됐다.
이들은 위력(威力)으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통계청 발표마다 현 정권에 유리하도록 분칠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통계청장 한 명 잘라서 얻는 순간의 이득보다 그런 불신이 정권에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이건 정말 바보짓"이라고 청와대 참모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더 이상 왕따로 찍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떨 때는 '국회청문회' 제도라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요란하기만 했지, 사실상 국정을 움직이는 것은 청문회 대상이 안 되는 이런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 머릿속에는 공직을 수행할 만한 국가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참모들이 정부 부처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며 장관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비슷한 패들에게 장악된 것처럼, 행정 부처와 권력 기관, 사법부도 저네들끼리 요직을 나눠 가졌다. 심지어 눈에 덜 띄는 공공 기관까지 그렇다. 바른미래당이 공공 기관 340개의 인사 현황 전수(全數)조사를 해보니 새로 임명된 1651명 중 365명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이었다. 그 당의 이언주 의원이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서 구석구석 찔러 넣을까"라고 촌평한 것처럼, 자기들만의 잔치판이다.
현 정권의 장악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 사람들의 입은 장악할 수 없다. 요즘 세상의 바닥에서는 "보자 보자 하니 이놈의 정권은 눈에 뵈는 게 없구나" 하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온전할까 걱정은 넘쳐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지속적인 적폐 청산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하고, 여당 대표는 '민주 정부 20년 집권 플랜'을 떠들고 있다.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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