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이슈

[Why] 캠퍼스엔 잡초, 거리엔 노인… 최하위 대학촌의 미래인가

Shawn Chase 2018. 9. 8. 18:40

조선일보

  • 남원=권승준 기자


  • 입력 2018.09.08 03:00

    폐교된 전북 서남大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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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문을 닫은 서남대 캠퍼스(왼쪽). 6개월이 지나 운동장이었던 곳엔 사람 허리 높이까지 잡초가 자라 있다. 학생 수천 명이 고객이었던 인근 상점가도 폐교와 함께 모두 폐업했고, 몇몇 가게는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 /남원=권승준 기자


    "캠퍼스에 그 흔한 길고양이 한 마리 없어요."

    동네 주민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개강 시즌을 맞아 전국 대학가가 시끌벅적한 지난 4일, 전북 남원시 서남대 캠퍼스는 적막했다. 2시간 동안 약 17만㎡(5만여평) 넓이의 캠퍼스를 구석구석 훑었지만 움직이는 생명체는 잠자리가 유일했다. 버려진 운동장엔 잡초가 사람 허리 길이까지 자랐고, 하수도가 막혀 기숙사 건물 앞에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이 학교는 전북 지역에서 원광대와 함께 의대가 개설된 유이(有二)한 사립대였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설립자 이홍하 전 재단 이사장이 교비 330여억원을 횡령하는 등 심각한 재단 비리가 드러났다. 2011년부터 부실 대학으로 지정돼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며 직원 임금이 200억원 가까이 체불되는 등 정상 운영이 불가능했다. 교육부는 대학을 인수할 곳을 찾았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다. 결국 작년 12월 폐교 명령이 내려졌고, 지난 2월 모든 학생과 직원이 떠나며 문을 닫았다.

    서남대가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 비슷하게 폐교 위기에 몰린 대학교가 전국에 여럿이고, 별다른 대책이 없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3일 발표한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 따르면 전국의 323개 일반대·전문대 중 11곳이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신경대, 부산장신대, 한려대, 제주국제대 등으로 경기도, 전라도, 부산광역시,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 분포된 학교들이다. 이 등급을 받으면 정부 재정 지원과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이 전면 제한된다. 서남대 역시 3년 전 같은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뒤 결국 폐교됐다. 폐허 같은 서남대의 풍경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학교가 먹여 살리던 인근 지역 직격탄

    "젊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나. 그러면 원룸이나 가게 하던 사람들도 떠나고, 남는 건 우리 같은 노인들뿐이야."

    서남대 앞 율치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두 70대였다. 평범한 농촌이었던 이곳은 서남대가 들어서면서 대학가로 변신했다. 많은 주민이 빚을 내 집을 개조하거나 아예 원룸 건물을 새로 올렸다.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원룸을 운영했던 김모(61)씨는 "한때는 방이 모자라서 학생 2명이 원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할 정도였다"며 "작년 폐교가 결정된 뒤에 학생뿐 아니라 원룸을 하던 사람들도 줄줄이 문 닫고 마을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원룸 58개동, 옆 마을인 덕원마을에 30개동의 원룸이 2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대부분 폐업했거나 폐업 위기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 일용직 노동자나 택시 운전사들이 들어왔지만, 두 마을 합쳐 1700여 개의 방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22개의 방이 있는 원룸을 운영한다는 한 주민은 "지금 세 놓은 방은 딱 2개인데 보증금 없이 한 달에 10만원만 받는다"며 "학교가 아니라면 누가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여기까지 와서 방을 구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원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식당, PC방 등 학교 인근의 자영업은 그야말로 전멸했다. 남원시에 따르면 서남대 폐교 후 인근 가게 40여 곳 중 35곳이 폐업했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날 서남대 인근 가게 중 문을 열고 영업 중인 곳은 율치마을의 마트 한 곳뿐이었다. 상가 건물 7개동 중 3개동은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것이다.

    학생은 흩어지고, 교직원은 거리로 내몰리고

    "한국처럼 학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폐교된 대학교 출신이라는 꼬리표만큼 큰 상처가 있을까요."

    폐교는 무엇보다 학교 구성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학생들은 모교가 사라진 채 다른 대학으로 흩어졌고, 교직원은 임금을 못 받은 채 거리로 내몰렸다. 폐교 당시 재학 중이던 학생 1300여 명은 전북·충남 지역 대학으로 편입이 허용됐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특히 의대가 문제였다. 교육부는 서남대 의대생을 인근 전북대와 원광대에 배정하려 했지만, 해당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기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원치 않게 경쟁이 심해진다"며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남대 의대생들의 편입이 허가됐지만, 갈등의 소지는 남아 있다. 서남대 의대생이었던 B(22)군은 "서남대 의대생 중 몇몇은 성적이 안 되는데 의대에 가려고 일부러 서남대에 지원한 경우가 있었다"며 "폐교가 되면 구제 절차를 통해 더 좋은 의대에 편입할 수 있을 거라고 계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앞으로 폐교되는 대학교 수가 점점 증가할 경우 이처럼 편법을 통해 학력 세탁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원들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대부분의 교직원들이 1년 이상 임금을 못 받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체불 임금만 1억원이 넘는다는 A 교수는 "빚을 내 겨우 버티는 생활도 문제지만 망한 학교 교수라는 타이틀이 더 낙인"이라며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 재입학 기회라도 줬지만 교직원들은 그런 배려도 없어 더 궁지에 몰렸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서남대의 잔여 재산 청산 절차를 통해 직원들의 체불 임금을 지불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시간이 걸린다.

    올해 교육부 평가에서 서남대처럼 최하위 등급을 받은 11개 학교뿐 아니라, 그 상위 등급을 받은 학교 중에서도 위험한 곳이 많다. 교육부는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2021년까지 3 8개 대학교가 폐교될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예측 수치를 두고 논란도 있었지만, 이 예측이 실현된다면 수만명에 이르는 학생과 교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산법인 청산 지원, 폐교 교원 연구활동 지원 등을 위해 '폐교 대학 종합관리센터'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통해 폐교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07/20180907016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