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탈북 아주머니를 만나다

Shawn Chase 2015. 7. 11. 17:06
탈북 아주머니를 만나다
김선경  김선경 보나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0.11.19 10:11

지난 주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주차장 앞에서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4개월여 전, 우리 앞집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

그 때 그 일을 계기로 알게 되었었다.

 

“안녕하세요?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네. 좀 쉬었어요.”

아주머니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건강은 괜찮으시죠?”

“네. 좋아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신다.

빠져 있던 앞니도 해 넣으셨다.

이제 50대쯤으로 보인다.

 

아주머니는 탈북여성이다.

4개월여 전, 개에게 물리는 사건이 있던 때,

아주머니는 우리 아파트에 출근한 지 일주일 되었다고 했었다.

이북에 아직도 가족이 많이 남아 있고,

일을 해서 그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 주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돈을 부치는데, 중간에 많이 떼인다고도 했다.

그래도 안부치는 것보다는 나아서, 아파도 쉴 수가 없다 했다.

 

다음 날, 현관에서 아주머니를 또 만났다.

“아주머니, 제가 목도리 좀 드리고 싶은데, 잠깐 우리 집에 올라가실래요?”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신다.

“저야 고맙지요... 제가 일요일에 중국에 가요. 여동생들이 중국으로 나왔대요.

동생들 줄 선물로 목도리를 살까 했었는데...“

선물 받고 쓰지 않고 두었던 목도리 두 개를 챙겨 드리니 너무 좋아 하신다.

안 입고 두었던 반코트를 꺼냈더니 입어 보며 약간 작은 듯한데도 딱 맞다 한다.

“제가 여기서는 아는 사람이라곤 여기 분(나를 가리키며)밖에 없잖아요.

오늘이 쓰레기 버리는 날이기도 해서 혹시 버리는 옷가지 있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가지 옷을 챙겼더니,

자신에게 작은 것들은 동생들 주면 된다고 한다.

이북에서 사는 동생들은 못 먹어서 말랐다며.

“그럼, 동생들도 한국으로 오나요?”

“아녜요. 중국에 잠시 나온 거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요.”

북한에서는 남한 것이라면 무슨 물건이든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한다.

상표를 떼고 들여간다고 한다.

 

출근길이 바빠 회사로 왔는데, 몇 년 전 동생이 입고 있는 것을 빼앗아서

몇 번 안 입고 걸어둔 토끼털 코트가 생각났다. 내가 갖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따뜻한.

동생에게 전화했다.

“네가 준 토끼털 코트 말이야...”

동생은 기억도 못하다가, 나중에야 아, 그거~ 한다.

“너 혹시 다시 안 입을래? 안 입으면 누구 좀 주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털코트 입으면 알레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코를 긁어야 해서 싫다고 어서 주라 한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있더니, 동생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이가 안 입은 배드민턴 동호회 파카가 있는데, 그거 택배로 보내줄까?”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서, 몇 개월 전 개에게 물린 아주머니에게 무엇을 좀 주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부탁했더니,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아주머니에게 전화해서 토요일에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동생에게 택배를 보내라 했다.

 

동생이 보낸 상자에는 파카가 두 개, 포장도 뜯지 않은 양말 박스가 두 개,

차던 시계 하나, 대일밴드 한 박스, 목도리 한 개가 들어있었다.

“남자 옷도 괜찮아요?”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이북에 남편과 다 큰 아들이 둘이나 있어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라는 아주머니는 돈 벌러 중국에 나와 불안정한 신분으로 쫓겨 살다가,

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아예 탈북자가 되었다고 한다.

학생용 시계인데도, 손목시계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비누도 몇 개 꺼내 주었더니,

“이 댁 살림살이 다 나오잖아요...” 한다.

토끼털 코트를 입어보라 했더니,

“무엇을 입고 가나 했는데, 이거 입으면 되겠어요. 거긴 무척 춥거든요...” 한다.

이틀에 걸쳐 골라놓은 옷들을 내놓으며, 필요 없는 건 버리라 했더니,

“다 가져 갈 거에요. 작으면 동생 주면 되요.”

하면서, 꺼내 놓은 배낭과 가방에 쑤셔 넣다가, 청바지를 보고 잠시 주춤한다.

“이건 안돼요. 이건 상표를 떼도 남한 거라는 표시가 나서...”

하면서도 빼놓지 않고 넣는다.

“거기서는요, 남한 거라면 인분도 좋다는 말이 있어요.”

남한 거라면 사람 똥도 먹는다고 달려든다는 이야기를 몇 번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못 사느냐며 고개를 흔든다.

 

탈북자 2만 명 시대라더니, 내가 다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북한의 소식을 언론이 아닌 구전으로 듣다니,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통일이 그만큼 가까이 온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