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사회주의 3시간, 자본주의 5시간

Shawn Chase 2018. 9. 6. 03:37
북한의 가장 유명한 종합편의시설 창광원에서 머리를 깎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회주의 방법’은 새벽 5시 이전에 창광원 매표소에 가서 줄 서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운행 전부터 창광원 매표소 앞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오전 7시가 넘으면 표를 살 수 없다.

이렇게 표를 사면 북한돈 800원(한화 약 100원)에 머리를 깎을 수 있다. 여성의 미용 요금은 스타일에 따라 북한돈 수천∼수만 원 사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정 가격이다.

두 번째 ‘자본주의 방법’은 아무 때나 창광원에 가서 접수원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들어간 뒤 이발사에게 북한돈 1만 원 정도 직접 주는 것이다. 그러면 더위와 추위, 어둠 속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줄 서도 표를 못 사는 일도 없다.

창광원 이발사들은 북한 최고 수준이다. 독립해 미용실을 차리면 창광원 커리어만 내세워도 큰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800원짜리 머리를 깎는 비밀은 따로 있다.7


자본주의 시간에는 돈을 더 많이 주거나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이 우선이다. 단골은 이발사가 접수원에게 말해 놓기 때문에 통과세인 담배를 주지 않아도 되고, 휴대전화로 예약도 받는다. 창광원은 물론 다른 고급 종합편의시설도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평양에는 국영 이발소가 아닌 봉사소 간판을 내건 고급 독립 미용실이 많다. 남성 이발 가격이 대개 2∼5달러(북한돈 약 1만7000∼4만2000원)로 창광원보다 더 비싸지만 부분 안마와 미안(얼굴 케어)까지 해준다.

여성 미용 요금은 천차만별이다. 동네 평범한 미용실에선 1만∼2만 원 정도 받는다. 하지만 50달러 이상(북한돈 40만 원 이상) 받는 고급 미용실도 많다. 최근 평양에는 1회에 200달러를 받는 미용실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런 미용실은 최상의 미용 재료를 쓰고, 머리 스타일도 매우 다양하며, 미안과 안마도 최고 수준이다.

몇 년 전 나도 북한 정보원에게서 뜻밖의 ‘사례’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 제호까지 언급하며 남쪽 최신 헤어 잡지 몇 개를 보내 달라는 것이다. 나에겐 낯선 제호라 검색해 보니 그 분야에선 상당히 유명한 잡지였다. 왜 필요하냐고 묻자 “친척이 모 지방 도시에서 미용실을 하는데, 고객에게 몰래 남쪽 잡지를 보여주며 이 모양대로 해준다고 하면 돈을 3배로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평양의 최고급 미용실에는 모름지기 고객에게 몰래 보여주는 세계 여러 선진국의 헤어 잡지가 다 있으리라 추정된다.

요즘 북한에선 이발사나 미용사는 굶을 걱정이 없다고 한다. 먹고살 만하니 꾸미는 데 신경을 쓴다는 의미다. 유명 미용실에서 경력을 쌓고 개인 미용실을 차린 뒤 머리 잘한다는 소문을 만들거나, 홍보를 잘하고 사은품을 듬뿍 주는 등 영업을 잘하면 고객이 많아진다. 물론 자기 명의의 미용실을 열 순 없고 국가 기관 소속으로 등록한 뒤 월마다 입금한다. 공식적으론 기관 소속의 전문 미용사이지만, 실제론 사장이다. 이렇게 해서 월 2000달러 이상 벌면 상위 1%미만의 ‘미용사 갑부’가 될 수 있다.

이발과 미용을 사례로 들었지만, 요즘 북한의 대다수 서비스업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많은 서비스업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들이는 시간 비율이 절묘하게도 거의 3 대 5 비율을 유지한다. 기관 소속인 경우, 입금액과 자기가 갖는 돈의 비율도 대개 이 정도 비율을 유지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엔 사회주의에 바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자신이 갖는 몫이 커져왔고, 지금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넘어섰다. 지금은 5 대 3 비율이지만, 6 대 2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본다. 7 대 1까지 넘는다면 매우 어리둥절해질 것 같다. 진짜 자본주의에 사는 나도 소득의 2할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데 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