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언론인
입력 2018.09.04 03:17
사법부 '코드 人事' 논란 속에 이념적 쏠림 현상 우려 커져
'北과 평화협정' 운운한 판결문… '司法 진보주의'를 연상시켜
균형 잃고 재판이 정치화되면 베네수엘라 같은 最惡 사태 직면
류근일 언론인
최근의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사법 권력의 혁명적 변동에 관한 것이다. 권력화된 이념이 행정부·공권력·문화·교육·사회·경제 부문을 잇따라 틀어쥐었다. 요즘은 사법부가 그 권력 이동 태풍의 눈이다.
이 과정에서 "김명수 사법부가 코드 인사(人事)를 한다. 각급 법원 요직을 민변(民辯), 우리법, 국제인권법 연구회 출신들이 메웠다. 사법부 하나회 같다"는 비난이 일었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얼굴이 바뀐다. 문제는 얼굴만 바뀌느냐, 이념도 바뀌느냐 하는 것이다.
일부 여론은 김명수 사법부가 이념도 바꿀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지는 더 가보면 안다. 그러나 지금도 사법부 이념 교체와 사법 진보주의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둘 필요는 있다. 알고 겪는 것과 모르고 겪는 데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법 진보주의는 197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있었던 법학도들의 한 모임에서 비롯했다. 1960년대 반전(反戰) 운동, 인종 갈등, 페미니즘, 빈곤 문제, 성(性) 소수자 문제를 접했던 진보 법학도들이 CLS(critical legal studies·비판 법학) 운동을 시작했다. 법은 객관적·보편적 진리를 대표하지 않고 그때그때 지배 권력, 당시로선 백인 권력, 남성 우월주의, 가진 자, 가부장(家父長)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CLS 운동은 '사법 행위는 정치 행위'라고 선언했다. 보수가 법을 '보수 입맛대로' 써먹었다면 진보도 법을 '진보 입맛대로'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진보 판사 개개인 입맛대로. 법 해석엔 받들어 모셔야 할 꼭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불확정성)는 식이다.
이래서 그들은 법조문 자체보다 진보 사회과학·사회철학·문화이론의 잣대로 법을 해석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네오(新)마르크스주의, 현대 프랑스 철학 포스트 모더니즘(근대 합리주의와 기술 발달, 자본주의 관리 사회는 대량 살상과 지구 파괴·억압 구조였다는 주장) 같은 게 그것이다.
이들은 기성 사회의 편견에 저항한다는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반면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법을 정치적 당파성에 매이게 한다'와 '자유주의 법치에 대한 실패한 공격이다' '법리(法理)적이지 않고 과장되고 모호하다'는 식의 비판이었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나라의 사법부에선 보수로든 진보로든 한쪽 쏠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에선 1969년부터 트럼프 대통령 때까지 공화당 대통령들이 모두 13명의 연방대법원 판사(종신직)들을 임명했다. 이 13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민주당 대통령들이 임명한 연방대법원 판사(정원 9명)를 대체했다. 그런데도 미국 대법원 판결은 중도 우(右)에 머물렀다. 진보 판결이 보수 판결보다 많았다. 판사들이 알아서 '셀프 절제' '셀프 균형'으로 임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대로 안 된' 나라의 사법부에선 한쪽 쏠림이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 차베스와 마두로 두 좌익 대통령이 거덜낸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그랬다. 그들은 대법원을 자기 패거리로 채웠다. 그 대법원이 야당 다수(多數)의 국회를 '불법'이라 판결했다. 사법 행위는 곧 정치 행위였고, 이는 사법 쿠데타이자 좌익 독재였다. CLS가 이념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명수 사법부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지금 치고 들어오는 쪽은 CLS를 꼭 집어 공언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판결문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병역 의무만 강요하는 건 국가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국가는 군(軍) 정예화, 인권 개선, 대북 평화협정 체결로 안보 우려 해소해야.' '5·18 당시 민주공화국을 수호한 것은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계엄군이 아니라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위험을 무릅쓴 택시 운전사였다.'
판결문이 상업 영화를 상기시킨다? 북한과 평화협정만 체결하면 그만인데 웬 병역 강요냐? 아예, 태평성대만 이루면 그만인데 웬 입대(入隊)냐 하는 편이 더 '세지' 않을까? "재판이 곧 정치라 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판사 개개인은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 속에서 저마다 법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법관도 있다. CLS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중요한 건 균형 잡기다. 이쪽저쪽 의견이 엇비슷이 맞물려야 베네수엘라 대법원 아닌 미국 대법원처럼 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을 문제 삼은 고영주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그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김명수 사법부가 한쪽 쏠림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입력 2018.09.04 03:17
사법부 '코드 人事' 논란 속에 이념적 쏠림 현상 우려 커져
'北과 평화협정' 운운한 판결문… '司法 진보주의'를 연상시켜
균형 잃고 재판이 정치화되면 베네수엘라 같은 最惡 사태 직면
류근일 언론인
최근의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는 사법 권력의 혁명적 변동에 관한 것이다. 권력화된 이념이 행정부·공권력·문화·교육·사회·경제 부문을 잇따라 틀어쥐었다. 요즘은 사법부가 그 권력 이동 태풍의 눈이다.
이 과정에서 "김명수 사법부가 코드 인사(人事)를 한다. 각급 법원 요직을 민변(民辯), 우리법, 국제인권법 연구회 출신들이 메웠다. 사법부 하나회 같다"는 비난이 일었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얼굴이 바뀐다. 문제는 얼굴만 바뀌느냐, 이념도 바뀌느냐 하는 것이다.
일부 여론은 김명수 사법부가 이념도 바꿀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지는 더 가보면 안다. 그러나 지금도 사법부 이념 교체와 사법 진보주의란 어떤 것인가를 알아둘 필요는 있다. 알고 겪는 것과 모르고 겪는 데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법 진보주의는 197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있었던 법학도들의 한 모임에서 비롯했다. 1960년대 반전(反戰) 운동, 인종 갈등, 페미니즘, 빈곤 문제, 성(性) 소수자 문제를 접했던 진보 법학도들이 CLS(critical legal studies·비판 법학) 운동을 시작했다. 법은 객관적·보편적 진리를 대표하지 않고 그때그때 지배 권력, 당시로선 백인 권력, 남성 우월주의, 가진 자, 가부장(家父長)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CLS 운동은 '사법 행위는 정치 행위'라고 선언했다. 보수가 법을 '보수 입맛대로' 써먹었다면 진보도 법을 '진보 입맛대로'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진보 판사 개개인 입맛대로. 법 해석엔 받들어 모셔야 할 꼭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불확정성)는 식이다.
이래서 그들은 법조문 자체보다 진보 사회과학·사회철학·문화이론의 잣대로 법을 해석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네오(新)마르크스주의, 현대 프랑스 철학 포스트 모더니즘(근대 합리주의와 기술 발달, 자본주의 관리 사회는 대량 살상과 지구 파괴·억압 구조였다는 주장) 같은 게 그것이다.
이들은 기성 사회의 편견에 저항한다는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반면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법을 정치적 당파성에 매이게 한다'와 '자유주의 법치에 대한 실패한 공격이다' '법리(法理)적이지 않고 과장되고 모호하다'는 식의 비판이었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나라의 사법부에선 보수로든 진보로든 한쪽 쏠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에선 1969년부터 트럼프 대통령 때까지 공화당 대통령들이 모두 13명의 연방대법원 판사(종신직)들을 임명했다. 이 13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민주당 대통령들이 임명한 연방대법원 판사(정원 9명)를 대체했다. 그런데도 미국 대법원 판결은 중도 우(右)에 머물렀다. 진보 판결이 보수 판결보다 많았다. 판사들이 알아서 '셀프 절제' '셀프 균형'으로 임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대로 안 된' 나라의 사법부에선 한쪽 쏠림이 최악의 사태를 초래했다. 차베스와 마두로 두 좌익 대통령이 거덜낸 베네수엘라 대법원이 그랬다. 그들은 대법원을 자기 패거리로 채웠다. 그 대법원이 야당 다수(多數)의 국회를 '불법'이라 판결했다. 사법 행위는 곧 정치 행위였고, 이는 사법 쿠데타이자 좌익 독재였다. CLS가 이념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명수 사법부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지금 치고 들어오는 쪽은 CLS를 꼭 집어 공언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판결문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를 허용하지 않고 병역 의무만 강요하는 건 국가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국가는 군(軍) 정예화, 인권 개선, 대북 평화협정 체결로 안보 우려 해소해야.' '5·18 당시 민주공화국을 수호한 것은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계엄군이 아니라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위험을 무릅쓴 택시 운전사였다.'
판결문이 상업 영화를 상기시킨다? 북한과 평화협정만 체결하면 그만인데 웬 병역 강요냐? 아예, 태평성대만 이루면 그만인데 웬 입대(入隊)냐 하는 편이 더 '세지' 않을까? "재판이 곧 정치라 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판사 개개인은 고유한 세계관과 철학 속에서 저마다 법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법관도 있다. CLS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중요한 건 균형 잡기다. 이쪽저쪽 의견이 엇비슷이 맞물려야 베네수엘라 대법원 아닌 미국 대법원처럼 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을 문제 삼은 고영주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그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김명수 사법부가 한쪽 쏠림으로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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