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르포]'방탄 굿즈' 大亂…24시간 밤새워도 못샀다

Shawn Chase 2018. 8. 28. 07:21
사회 고성민 기자 
입력 2018.08.27 16:08수정 2018.08.27 16:39

입력 2018.08.27 16:08수정 2018.08.27 16:39
올림픽주경기장 ‘방탄굿즈’ 대란
‘한정판 기념품’ 사려 4700명 노숙
24시간 꼬박 기다려도 못 샀다
한밤 걱정돼서 나온 ‘학부모’들도

"밤새 기다렸는데 굿즈(Goods·상품) 못 사고 콘서트도 못 보게 생겼다."
"야 XX, 왜 닫아. 빨리 일해라! 이거 소송감이야!"

주말인 지난 25일 오후 6시 30분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앞은 원성(怨聲)으로 가득했다. 이날 올림픽주경기장에서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콘서트는 100% 지정좌석제. 표를 사기 위해 줄 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방탄 굿즈(방탄소년단 관련 상품)’를 사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열린 지난 25일 오전 10시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5000여 명 팬들이 ‘방탄 굿즈’를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고성민 기자

당초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물건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팬이 몰리자, 제품 판매가 지연됐고 결국 콘서트 시작 시간을 넘겼다. 그때까지 물건을 사지 못한 팬 1000여 명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올림픽주경기장 안에서 방탄소년단의 첫 곡이 울려 퍼지자, 일부 팬은 철제 펜스를 밀치고 판매대로 달려가 "당장 굿즈를 팔라"고 따졌다. "지금까지 24시간을 기다렸다"는 고함도 들렸다.

주최 측은 "공연이 끝난 다음 우선 구매권을 주겠다"면서 격앙된 팬들을 달랬다. 결국 번호표를 나눠주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방탄 굿즈’만 사러 왔다는 김모(16)양이 울음을 터트렸다. 김양은 물건을 사러 전북 군산에서 전날 올라왔다. "어젯밤부터 밤새 기다렸어요. 이틀 밤샘은 부모님 허락을 못 받아서 빈손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팬들도 불만이었다. 직장인 허모(28)씨는 "굿즈 기다리느라 콘서트 시작 부분을 몽땅 놓쳤다"며 "티켓 값은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말했다. 25~26일 이틀간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는 4만 5000석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경매사이트에서는 일부 좌석의 티켓은 정가보다 30배 비싼 금액인 최고 3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24시간을 꼬박 기다려도 못 샀다…수수료 받은 구매대행도
방탄 굿즈 구매행렬은 콘서트 시작 48시간 전부터 있었다. 25일 자정을 넘어서자 4700여 명의 팬이 오직 물건을 사기 위해 몰렸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온 팬이 많았는데, 대개 이 안에서 돗자리·담요·외투 같은 물건이 나왔다. "캐리어의 나머지 공간은 방탄 굿즈를 넣으려고 비워놨어요." 기다리던 여고생이 귀띔했다.

준비된 굿즈는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간 휴대전화 케이스, 보조배터리, 티셔츠 등 74종류였다. "방탄 굿즈는 이번 공연인 ‘러브유어셀프’를 기념해 제작된 ‘한정판’이어서 희소성이 있다"는 게 팬들의 생각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자가 많은 데다 선착순 구매가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구매 대리인도 많았다. 방탄소년단 콘서트 전부터 이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대리구매 해드린다"는 취지의 글들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한 명의 구매 대리인이 의뢰인들을 모집하는 식이다. 수수료 시세(時勢)는 굿즈 개 당 3000~4000원. 그러나 인기멤버 ‘프리미엄 포토(특별촬영 사진)’는 개당 수수료가 1만 5000원 이상에서 흥정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왔다는 남모(17)양은 굿즈 행렬 앞자리를 차지했다. 제19호 태풍 ‘솔릭’으로 휴교하는 바람에 일찍 도착해 줄을 섰다고 했다. 남양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아 SNS로 구매대행 의뢰인들을 모집했다. "대리구매 해드립니다. 수고비 4000원. 디엠(다이렉트 메시지·쪽지)주세요." 물건을 사겠다는 의뢰인들이 즉각 남양에 메시지에 반응했다.

콘서트 시작이 임박하자, 굿즈 구매에 성공한 구매 대행인 주변으로 의뢰인들이 우르르 몰렸다. 구매 대행인이 SNS에 △구매한 굿즈 인증사진 △현재 자신의 위치 △옷차림(인상착의 파악용)을 게재하면 의뢰인들이 찾아가는 식으로, 거래는 대부분 ‘계좌이체’로 이뤄졌다.

부산에서 온 김모(18)양은 이날 모두 44만원의 굿즈를 사들인 뒤, 이 중 일부는 수수료를 얹어 되팔았다고 했다. 구매 대행에 나선 신모(14)양은 "아르바이트 한다는 생각으로 굿즈 대리구매를 시작했다"면서 보통 밤 새워서 기다리면 20만원 정도 버는데, (방탄 굿즈의 경우)구매 대행인끼리도 경쟁하면서 10만원밖에 못 벌었다"고 했다.

◇잠실주경기장 앞에서 4700여명 노숙, 걱정돼서 나온 일군의 ‘팬부모’도
대리 구매인 대다수는 ‘열혈 팬’이었다. 굿즈를 사는 김에 ‘일석이조’로 용돈벌이한다는 것이다. 경기 부천에서 온 김모(14)양은 "굿즈를 ‘중고나라(인터넷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에 되팔면 몇 배 더 비싸게 팔 수 있지만, 팬들끼리 웃돈을 붙이는 건 ‘의리’가 아니다"면서 "어차피 좋아서 밤새우는 건데, 같은 방탄 팬들에게 수고비만 좀 더 받고 싸게 판다"고 했다.

‘대리 구매’ 이용자들은 기다릴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 많았다. 대리구매로 방탄 굿즈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직장인 장모(28)씨는 "대리구매해주는 중딩·고딩(중고교생)이 너무 고맙다"면서 "요즘 최저임금이 얼만데, 고작 수고비 몇천원만 받고 나 대신 밤새워 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정을 넘어가자, ‘방탄 굿즈’ 행렬 4700여 명이 하나둘씩 노숙하기 시작했다. 구매 행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중년남녀 30여 명이 서성였다. "방탄소년단 팬이시냐"고 물으니 "팬의 부모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모(50)씨는 "새벽에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줄을 체크하는 걸로 아는데, 그 사이라도 딸아이 쪽잠 재우려고 차를 가지고 나왔다"면서 "내 딸이지만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기 구리시에서 온 학부모 임모(51)씨는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말리겠냐"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나왔다는 김모(48)씨도 "무사히 자기가 사고 싶은 거 다 샀다고 해서 다행이다. 공부를 저 정성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