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Why] 춤도 노래도 못하는 일본 걸그룹… 원조의 진화는 멈췄는가

Shawn Chase 2018. 7. 21. 19:08

조선일보

  • 권승준 기자

  • 입력 2018.07.21 03:00

    '프로듀스48'서 일본 아이돌 완패


    이미지 크게보기
    한국과 일본 아이돌 가수와 연습생이 경쟁하는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의 한 장면. 조를 짜서 겨루는 미션에서 일본 최고의 인기 걸그룹 AKB48에서 가장 인기 많은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왼쪽 둘째)는 춤과 노래 실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고 중심(센터)에 서지 못했다. / CJ ENM


    "청출어람" "원조보다 나은 아류" "수출용과 내수용의 품질 차이"…. 지난달부터 매주 금요일 밤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케이블 엠넷의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을 본 시청자들의 감상평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가수 또는 가수 연습생들 96명이 출연해 춤과 노래 실력으로 경쟁을 펼친다. 시청자 투표로 그중 12명을 뽑아 새 아이돌 그룹을 결성해준다. 아이돌 가수 간 한·일전이 펼쳐진 셈이다. 지난 20일 6회까지 방영된 현재, 실력 면에서 한국 출연자들이 아이돌 종주국인 일본 출연자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런 감상평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 연습생들만 출연했던 '프로듀스 101' 시즌 1·2는 가요계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팬 투표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나 무대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일본 최고 인기 걸그룹인 'AKB48'과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자 제작사인 엠넷은 시즌3를 만들면서 AKB48 소속사와 손잡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AKB48로 활동 중인 일본 아이돌 가수 39명과 한국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 가수 연습생 57명이 나란히 출연해 경연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은 현역 가수이고, 한국은 데뷔 전인 연습생들이라 일본의 일방적 우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아이돌은 서비스업이다?

    AKB48 멤버들에게 '프로듀스48' 출연은 재앙에 가까웠다. 첫 방송부터 음정·박자 등 기본적 노래 실력이 모자랐고, 음 이탈 같은 실수도 잦았다. 춤도 한국 아이돌에 비해 난도가 낮은 율동 수준의 군무(群舞)였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소화 못하는 이도 많았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실력을 등급별로 나누었는데, 상위권인 A·B등급을 받은30명 중 일본인은 8명뿐이었다. 엠넷 관계자는 "처음 녹화 때는 일본 출연자들의 실력이 한국 출연자에 비해 모자란 편이라서 방송을 내보내도 되는 건지 걱정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의외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K팝 성공의 1등 공신은 아이돌그룹이다. 그런데 그 공신의 고향은 사실 일본이다.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이 아이돌그룹을 제작하고 마케팅하는 방식 대부분이 일본의 아이돌그룹 제작 방식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 다수를 선발해 훈련시키고, 군무 중심의 댄스음악으로 활동하는 건 '스맙', '아라시' 등 일본 최고의 아이돌그룹을 키워낸 일본 최대의 연예기획사 '자니스 사무소'가 확립한 사업 모델이다. 그런데 막상 원조를 보니, 아류인 한국 아이돌에 비해 가수로서 실력이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엠넷 제작진과 음악평론가 등 전문가들은 "일본 대중음악 시장의 특성을 안다면 왜 일본 아이돌이 한국에 비해 실력이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대중음악 시장은 크게 '아티스트'로 불리는 가수들과 아이돌로 나뉜다. 전자는 실력과 음악적 완성도로 승부하는 가수들인 반면, 일본의 아이돌은 실력 유무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봉사 정신'이 더 중요한 일종의 서비스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노래나 춤 실력은 모자라도 외모가 뛰어나거나 애교나 친근함, 재치 있는 말솜씨 같은 다른 자질이 있으면 스타로 등극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의 편집장 미묘는 "실력 면에서 완성된 상태로 시장에 나오길 바라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아이돌이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존재"라며 "게다가 여성이 '봉사하는 존재'라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가 아이돌 가수에게 투영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내수의 역설

    그렇다면 일본의 아이돌은 왜 진화를 멈춘 것일까. 전문가들은 "내수시장이 큰 일본의 역설"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은 음반 판매량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대중음악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 어떤 음악 장르라도 고정 팬층이 두꺼운 편이다. 덕분에 이른바 '실력은 없어도 팬들에 대한 봉사 정신은 투철한 아이돌 가수'에 대한 수요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존재한다. 내수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외부와의 경쟁 없이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있는 셈이다.

    반면에 한국은 대중음악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디지털음원 시장이 성장하면서 실물 음반 시장은 붕괴 직전이다. 국내 시장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아이돌그룹은 생존을 위해 해외 진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까지 '아이돌 수출'을 모색하면서 해외 대중음악가들과의 경쟁에 노출된 것이다. 이런 경쟁 덕분에 한국의 아이돌그룹은 해외 주류 대중음악 수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엄격한 훈련을 받은 상태로 시장에 등장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한국 역시 1990년대 아이돌그룹 초창기에는 '립싱크' 논란 등 실력 면에서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국내외 대중음악 시장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향 평준화가 됐다. 반면 일본 아이돌 가수들은 일종의 '갈라파고스(고립된 섬)'처럼 홀로 독특한 아이돌 문화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7/20/20180720016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