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및 연예

“신중현 히트곡 모아 30년대 청춘의 열정 그렸죠”

Shawn Chase 2018. 6. 10. 12:11


[중앙선데이] 입력 2018.06.09 02:00 수정 2018.06.09 08:46 | 587호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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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미인’ 홍승희 프로듀서 & 이희준 작가  

Musical 미인

Musical 미인

신작 가뭄을 겪고 있는 대극장 뮤지컬 무대에 창작 뮤지컬이 오랜만에 단비를 뿌린다. 지난해 데뷔 60주년을 맞은 한국 대중음악의 대부 신중현(80)의 음악으로 만든 최초의 뮤지컬 ‘미인’(6월 15일~7월 22일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K팝 메들리 음악으로 선택된 ‘미인’, 3차례 평양 공연에서 모두 불려진 ‘아름다운 강산’ 등 23곡의 주옥같은 명곡으로 엮은 주크박스 쇼뮤지컬이다.  
 

이희준 작가(왼쪽)·홍승희 프로듀서

이희준 작가(왼쪽)·홍승희 프로듀서

잘 알려진 노래들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가사와 삐걱대는 엉뚱한 장면이나 어딘지 합이 안 맞는 편곡으로 되레 비난의 화살을 맞기 일쑤다. ‘미인’은 신중현 특유의 선 굵고 남성적인 음악을 1930년대 일제강점기 청년들의 뜨거운 우정과 사랑 이야기로 펼쳐낸다. 시적인 가사와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승부수를 던진 ‘미인’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홍승희(50) 프로듀서와 이희준(49) 작가를 만나 살짝 미리 맛봤다.  


4년 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개막을 앞두고 있는 ‘미인’은 1990년대부터 뮤지컬계에서 기획과 제작일로 내공을 다져온 홍승희 프로듀서의 입봉작이다. 평소 ‘맘마미아’ ‘저지 보이스’처럼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제작을 꿈꾸던 그는 15년지기인 이희준 작가와 오랜 탐색 끝에 ‘신중현’으로 소재를 정했다.  

 
“선생님 자서전을 작가님과 같이 읽었어요. 음악 인생이 참 재밌고 드라마틱하더군요. 전쟁 때 가족 잃고 떠돌던 이야기부터 음악이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고, 무대에 임하는 가치관에도 존경심이 생겼죠. 이 분이라면 의미도,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어요.”(홍)  

 

신중현

신중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라는 책인데, 국민 필독서로 지정해야 한다 생각해요.(웃음) 내용이 정말 좋거든요. 중고생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취직을 앞둔 사람이나 회사 다니는 사람이나 은퇴 앞둔 사람에게도 좋아요. 각자 자기 삶의 단계에서 크게 받는 느낌이 있을 거예요.”(이)  

 
그렇다고 뮤지컬이 신중현의 인생 스토리는 아니다. “내 이야기는 재미없으니 거기서 벗어나 전문가들이 실험적인 뮤지컬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신중현의 단 한가지 요구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연연하지 말고 자유롭게 실험하라. 나는 체구는 작아도 큰 사람이다. 큰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는 어려운 주문을 주셨어요. 물량공세는 못하지만, 스케일이 크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홍)  
 

강산 역의 김종구, 이승현

강산 역의 김종구, 이승현

그래도 신중현과 닮은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던 이 작가는 2년 간의 집필과정을 통해 1930년대 무성영화관을 배경삼은 대본을 완성했다. “책에는 선생님의 정신과 근성, 음악에 대한 열정이 오롯하죠. 하지만 선생님이 활약하시던 70년대로 가면 불필요하게 정치적 대결구도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뭔가 부딪칠 큰 적이 있는 일제 강점기로 가서 다같이 공감할 내용을 찾았죠. 선생님도 서슬이 퍼런 시대에 금지곡을 당하며 싸웠던 건데, 그런 근성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 아닐까 해요.”(이)  

 

강호 역의 김지철, 정원영

강호 역의 김지철, 정원영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무대

무성영화관 ‘하륜관’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변사 강호는 우연히 만난 시인 병연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준비하던 형 강산과 친구 두치, 병연을 의도치 않게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 불굴의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펼치는 한바탕 모험 활극에 타이틀곡 ‘미인’을 비롯해 ‘봄비’ ‘커피 한 잔’ ‘늦기 전에’ ‘빗속의 연인’ ‘아름다운 강산’ ‘리듬 속에 그 춤을’ 등 60~80년대를 풍미한 명곡들이 녹아든다.  

병연 역의 스테파니, 허혜진

병연 역의 스테파니, 허혜진

 
뮤지컬로서는 최초로 무성영화관을 무대화하기 위해 실제 무대에서 상영할 단편영화도 두 편이나 찍었다. 영상과 오버랩되는 실제 배우의 연기,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무성영화, 신중현이 추구했던 퍼포먼스 정신이 담긴 안무 등 색다른 재미를 가득 담아낸다. “선생님 노래를 부른 펄시스터즈나 김추자씨를 보면 엄청 멋있잖아요. 독특한 춤이 지금 보아도 재미있어요. 선생님은 무대에서 가수가 퍼포먼스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두고 늘 고민하셨죠. 우리도 그 스피릿을 작품에 녹여내 쇼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무대로 만들었어요.”(이)  

 

마사오 역의 김찬호, 김태오

마사오 역의 김찬호, 김태오

‘모두가 사랑한 그 남자 뮤지컬 미인’이라는 카피는 중의적이다. 아름다운 여자를 떠올리게 되는 ‘미인’이란 단어에 반전의 뜻까지 담았다고.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청춘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건 강호일 수도 있고 신중현 선생일 수도 있죠. 등장인물들이 다 청춘이고, 그중 하나가 내 마음의 주인공인 그 남자인 거죠. 그 수수께끼의 해답은 관객이 내주셔야 할 것 같아요.”(홍)  
 

질의 :쥬크박스 뮤지컬 만드는 게 완전 창작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응답 :  음악에 익숙하다는 게 굉장한 잇점인데 독도 될 수 있죠. 주크박스의 해답이 뭘까 고민했는데, 일단 저는 작가의 힘을 믿었어요. 음악을 잘 풀어줄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한 거죠. 15년동안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작가님은 브로드웨이에 자주 가서 몇 주씩 지내며 공부하거든요. 브로드웨이가 정답은 아니지만, 성공작들이 어떻게 쓰여졌나 구조를 빨리 알 수 있는 곳이죠. 그런 작가님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주크박스는 처음이에요. 일단 노래가 주인공이잖아요. 이야기를 담는 노래를 만들 수 없고 노래를 담는 이야기를 만들어 깔아야 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음악이 이미 있으니 들으면서 음악 자체가 이미 주는 분위기나 영감을 얻기도 했죠.  
두치 역의 권용국

두치 역의 권용국

 

질의 :기성곡을 담는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한계도 있을텐데.  
응답 :  선생님 가사가 운율이 잘 맞고, 후렴구도 중독성 있고, 쉬운 단어로 쓰여져서 뮤지컬과 케미가 좋아요. 창작에 자유도 주셨죠. ‘주크박스’하면 추억이나 시대정서 반영이란 게 정석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는 시대를 뛰어 넘으면서 그걸 지금의 정서로 이해시키는 게 목표예요. 공연을 보시면 작가님이 음악에 따라 드라마가 진전되어 가게 만들어 놓은 걸 느끼실 겁니다.

 곡 배치가 고민의 핵심이었죠. 일단 히트곡 위주로 시작했어요. 들어보니까 제가 그 세대가 아닌데도 아는 노래가 많더군요. 제가 익숙한 정도면 엄청난 히트곡인 거니, 히트곡 위주로 계속 들으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에 맞는 노래 배치로 들어갔죠. 사랑에 대한 노래가 많지만, 작고 단단한 것보다 호연지기 쪽이거든요. 선생님의 삶 자체도 그렇고. 사랑 노래라도 대상을 중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걸 찾으려 노력했어요.  

 

“신중현 팬에겐 공연 자체가 잔칫상”

신중현다운 스케일을 살리기 위해 편곡에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록 스피릿 충만한 김성수 음악감독이 세련되고 풍성한 음악으로 채우기 위해 3가지 컨셉트로 접근했다. 극중극 무대는 30년대 시대극 느낌을 살리지만, 드라마적으로는 정통 뮤지컬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브릿지성 음악은 영화음악처럼 폭넓게 확장했다.  
 


뮤지컬 팬인 젊은 층이 좋아할 콘텐트일까요.  

응답 :  젊은 층은 신중현 음악을 잘 모를 수 있지만 일단 호기심 갖고 기대해 주고 계시고, 저희도 낯설지 않게 만들고 있어요. 1차 타깃이 20~30대니까요. 젊은 층이 좋아할 요소와 신중현 팬들이 좋아할 요소를 같이 담고 있으니, 우리 바램은 젊은 친구들이 부모님 모시고 보러 오는 거예요.

 신중현 노래를 알고 기억하는 분들에겐 공연 자체가 잔칫상이죠. 하지만 젊은 관객층은 노래를 몰라도 그냥 뮤지컬로 재밌게 보도록 했어요. 사실 주크박스가 아니라면 뮤지컬은 어차피 다 모르는 노래들이잖아요. 주크박스의 잇점을 젊은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할 수 있지만, 노래가 극에 잘 녹아드는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로 승부할 겁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홍 컴퍼니